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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산톡톡 Jun 01. 2023

모스크바의 신사

혁명 속에서 빛나는 인간의 존엄성!

이틀 전 코로나에 걸렸습니다. 목감기 증세가 계속되어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자가진단 및 PCR 검사를 진행하니, '확진' 판단을 받았습니다. 오늘부터 코로나 방역조치가 경감된다고는 하지만, 회사에 출근하면 그야말로 민폐겠죠. 그래서 집에서 '자가격리' 중입니다.

할 일이 없을 때는 두꺼운 책이 제격입니다. 제가 '격리' 중이니, 비슷한 처지의 주인공을 찾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재미와 교훈도 있어야겠죠. 그래서 찾은 소설, 에이모 토울스의 '모스크바의 신사'입니다.

1922년 러시아 혁명 이후, 서른세 살의 알렉산드로 로스토프 백작은 모스크바의 메트로폴 호텔을 벗어날 경우 총살형에 처한다는 종신 연금형을 선고받습니다. 프롤레타리아의 시대에서 제거되어야만 하는 귀족 신분이지만, 혁명에 동조하는 시를 쓴 과거의 공을 인정받아 목숨을 건진 것이지요. 

목숨은 건졌지만 상황은 비루해집니다. 바로 스위트룸을 빼앗기고, 하인용 다락방으로 옮겨집니다. 귀족으로서 누리던 모든 특혜도 회수당하지요. 

하지만 그에게는 르네상스적 인간으로 쌓아온 고상함과 자부심, 지혜와 식견, 그리고 낙관과 희망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는 여전히 품위와 우아함을 잃지 않고 호텔에서 자신만의 삶을 살아갑니다. 꼬마 숙녀의 놀이 친구, 유명 배우의 비밀 연인, 공산당 간부의 개인 교사, 수상한 주방 모임의 주요 참석자로서 백작은 보란 듯이 멋진 삶을 살아갑니다. 메트로폴 호텔은 그의 피난처이자 흥미진진한 모험, 새로운 만남의 장소 그리고 사랑과 우정을 키워 나가는 따스한 집이 됩니다. 날마다 사건과 사고가 끊이지 않지만 그는 때로는 '동료', '탐정', '현자', '모험가' 등의 역할을 자처하며 활약을 이어갑니다.

그러나 이렇게 신나는 이야기만 지속된다면, 이 책의 흥행은 성공했을지 모르지만 '명작'의 반열에 오르지는 못하겠죠. 723페이지에 달하는 이 소설의 핵심 요소가 있는데, 바로 '세월'입니다.

소설 속에서도 세월은 속절없이 흐릅니다. 세상은 급변하고 동료들 중 일부는 떠나가지요. 상실의 슬픔도 피해갈 수 없습니다. 총명하고 당당했던 그도 중년을 넘어 노년에 접어듭니다. 하지만 그는 언제나 '신사다움'을 지키려고 노력합니다. 이해관계에 따라 좌우되지 않고, 신사다운 품격을 중시하는 사람을 사람들은 좋아하고 또한 의지합니다. 

그리고 노년에 이르러, 메트로폴 호텔이 정말 편안한 집이 되었고, 나름 부족함 없는 소소한 행복을 누리는 백작이지만, 정말 사랑하는 사람에게 더 넓은, 그리고 진정한 세상을 선사하기 위해, 마지막 '모험'을 시작합니다. 

너무 세세히 말하면 스포일러가 되겠지만, 재미있는 소설입니다. 읽고 나서 가슴이 찡하는 여운도 있습니다. 책장을 넘기다 보면 좋은 삶이란 무엇일까 생각하게 되는 장면이 많이 나오거든요. 돈을 많이 벌거나, 높은 지위에 오르고, 천하에 명성을 떨치는 것도 좋겠지요. 하지만, 주변 사람들과 차 한 잔을 나누면서 즐거운 대화를 나누고, 또 서로 행복한 추억을 많이 쌓아 나가는 것도 참 좋은 삶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이 소설을 한 문구로 요약한다면 '격변의 혁명기에서도 존엄성을 잃지 않았던 신사의 이야기' 정도가 될 것 같습니다. 

빌 게이츠와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추천했다는데 이유가 있는 것 같습니다. 두꺼운 분량을 소화해낼 수 있다면 읽어볼 만한 소설입니다.

 #독서노트 #모스크바의신사 #현대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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