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홍보와 대행사 그리고 경쟁 PT
경쟁 PT에서 제안과 옵션을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모든 홍보 업무를 홀로 할 수는 없다. 전문적인 디자인, 제작 등의 업무는 업체를 선정하고, 외주를 주어야 한다.
CI 리뉴얼, 지면/방송 광고, 홍보영화, 브로슈어, 애뉴얼리포트, 국내외 전시, 디자인 등의 업무는 물론 업의 성격에 따라서는 홍보대행사를 사용하는 경우도 많다. 대부분 적지 않은 예산이 소요되는 만큼 경쟁 PT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개인적으로 나도 경쟁 프레젠테이션에 대해서는 애증이 깊다. 업체 선정에 있어 실무자와 경영진의 판단이 다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경쟁 PT는 대략 다음과 같은 과정을 거친다.
1. 대략 동종업계 평판조회나 (인터넷) 조사 과정 들을 거쳐 리스트를 추린 후 업체 실무자들과 미팅을 갖고 제작 목표나 대략적인 예산에 대해 의견을 나눈 후 회사소개서 및 포트폴리오를 검토한다.
2. 어느 정도 코드가 맞겠다고 생각되는 곳에 대해서는 보고 후 경쟁 PT를 준비한다. 대략 몇 주 전에 제작 목적/요구사항/일정/우리가 생각하는 예산 상한선/참고자료 등을 담은 RFP를 발송하고, 업체가 원하는 경우 추가 미팅을 하기도 한다.
3. 내부적으로는 경쟁 PT를 위해 임원, 팀장급의 심사위원의 일정을 체크한다. 보통 PT 하루 이틀 전에 발표자료를 받는 편인데, 사전에 꼼꼼히 읽어보고 회사명이나 브랜드명, 중요한 팩트에 오류가 있거나 방향이 너무 잘못되어 있으면 의견을 묻기도 한다.
4. 그리고 대망의 경쟁 PT가 이뤄지면 평가를 거쳐 최고점을 받은 업체와 최종 조율 및 협상을 거쳐 계약을 체결하게 된다.
보통 예산이 클수록 참여업체도 많아진다. 문제는 이따금 앞과 뒤가 다른 경우가 생긴다. 반드시 선정되어야 하겠다는 맹렬한 '목표의식'을 가진 대행사가 이따금 과도한 배팅식 제안을 할 때가 있는 것이다. 보여주기 식 PT도 문제이다. 업체 선정은 윗분들이 하지만, 최종 실행은 실무자가 한다는 사실을 이용하는 것이다.
그만큼 담당자의 스트레스도 커진다. 사실 홍보물 제작을 준비하고 업체와 조율하다 보면 이곳은 성실하게 잘하겠다... 거나 여기는 우리 회사의 프로젝트가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것 같다는 느낌이 오게 마련이다.
몇 번의 프로젝트를 거치다 보면 유명하고 큰 대행사 못지않게 작고 내실 있는 전문업체들이 멋진 콘텐츠를 일궈내는 경우도 자주 보게 된다. 실무자가 평가를 좌우할 수는 없지만 제작과정이나 결과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에, 적어도 내가 편하기 위해서라도 "이곳에 잘되면 좋겠다!"는 마음속 응원을 하게 될 때도 많다.
하지만 역시 문제는 PT이다. 실무가 잘할 것 같은 업체가 PT를 망치거나, 방향성 및 콘텐츠는 부실한데, 그럴듯한 장표와 지키기 어려워 보이는 약속(옵션)으로 높은 평가를 받는 경우도 있다. 특히 '제안'과 '실무'의 괴리가 큰 '대행사'가 선정될 경우 프로젝트 기간 내내 스트레스와 긴장의 연속일 수도 있다. 무엇보다도 '제안서'보다 실행 범위가 상당히 축소된 '계획서'를 가져와서 이런저런 것들은 추가 비용이 필요한 '옵션'이라고 말하는 대행사를 마주할 때는, 때로는 '정말 힘들겠구나'라는 마음속 탄식이 올라오기도 한다.
하지만 연차가 쌓이면 나름 홍보실무자도 노련해지게 된다. 특히 윗분들이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홍보담당의 역할이다. 개인적으로도 경쟁 PT 전에 제안서를 모두 읽고 '과도한 제안'이겠다 싶은 것은 모두 체크해 놓는다. 그리고 PT에서 다음과 같이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1. "아, 좋은 제안 감사드립니다. 그러니까, 이 특별 OOOO 기법을 활용한 별도의 디자인 페이지 구성은 이번 제안 예산 범위에 포함된다는 거죠?" 과도한 '제안'은 정말 추가 비용 없이 가능한 것인지 PT 현장에서 반드시 물어본다. 그런 공적인 확인 과정을 거쳐야 '대행사'와 '회사'의 실무자들도 나중에 덜 힘들다.
2. 그러한 비용 질문은 나중에 확인하겠다거나 복잡한 전문용어로 애매하게 넘어가려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때는 평가위원들이 듣는 앞에서 명확히 상황을 정의하는 것이 좋다. "... 그러면 향후 판단 후 추가 '비용'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으로 이해하면 되겠습니까?" 정도로 다시 풀어서 설명해 줘야 한다.
3. 의문스러운 것은 좀 불편해도 자꾸 체크해야 한다. 특히 진행 일정이 가능한지 의심스럽다거나, 포트폴리오가 타사와 겹친다거나, 회사 규모, 업력 등도 궁금하면 질의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애매한 것은 업체 선정 전에 가급적 '공개적으로' 확인하는 것이 좋다. 명확하지 않은 조건에서 업체가 선정되고 나면 회사와 대행사의 실무자가 고통스러운 경우가 많다.
사실 아직은 수직적인 한국의 기업문화 속에서 회사와 대행사간의 계약은 개선할 부분이 많다. 전 직장에서 해외 업체와 홍보제작 업무를 수행한 적이 있는데, 정말 '칼'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계약서 상에 오프라인 미팅 / 디자인 초안 제작 / 선택 후 수정 횟수 / 클레임 조건 등이 세세히 명기되어 있고, 대부분 '그대로' 간다. 이것 때문에 힘든 적은 있지만, 때로는 이렇게 계약 관계가 명확하면 서로가 편하다는 생각이 든다.
국내에서는 아직 많은 부분이 모호하고, 업계 관행에 유지하는 부분이 크다 보니, 회사 및 대행사의 실무자들도 서로에 대한 말 못 하는 불만과 고충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래도 과거보다도 나아지고 있다. 다만 요즘 실무자들은 대부분 이러한 문제를 인식하고 있고, 회사에서도 '갑질'이 '나쁜 짓'이라는 문화가 정착되고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기반으로, 시간이 지나면 홍보 업계에도 합리적 문화가 정착되어 나갈 것이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