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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산톡톡 Jul 26. 2020

라틴어 수업

아는 만큼 본다(Tantum videmus quantum scimus)

많은 비가 내리고, 푸른 물감을 하늘에 풀어놓은 듯 청명한 하늘이 머리 위로 펼쳐진 주말 새벽, '라틴어 수업'을 읽었다.

'라틴어 수업'은 2010년 2학기부터 2016년 1학기까지 서강대학교에 한동일 교수가 진행했던 '초급/중급 라틴어 수업'의 내용들을 정리한 책이다. 이 책은 라틴어를 배우기 위한 '어학 교재'는 아니다. 마치 동양의 한자처럼, 서양 문명의 근간을 이루었던 '라틴어'를 통해 오늘날의 우리를 되돌아보는 인문사회 서적 정도로 보면 될 것 같다. 물론 외워 놓으면 '그럴듯하게' 써먹을 수 있는 라틴어 문구들은 덤이다.

사실 이 책을 집어 든 것은 모교에 대한 추억 때문이다. 나도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 이 책의 배경이 된 S 시 S 촌의 S대에 다녔다. 

어학 계열 수업이니까, X 관에서 수업을 진행했겠구나... 수업이 유명해지면서 백 명 단위로 인원이 늘었다고 했으니 강의실을 D 관이나 K 관으로 옮겼으려나. 외국어 수업은 항상 평가에 박한 편이었고, 게다가 신부님 교수니까, 학점은 꽤나 깐깐했을 것 같다. 모교의 슬로건이었던 'Oboedire Veritati!(진리에 복종하라!)'는 강제보다는 깨달음을 바탕으로 한 자발적 순종의 어감이 있는 문구였구나... 생각하며 즐겁게 책을 읽어 내려갈 수 있었다.

사실 가톨릭 신자들은 알게 모르게 라틴어 문장 한둘은 알게 마련이다. Dona novis pacem (도나 노비스 파쳄 : 저희에게 평화를 주소서) 라거나, Dominus Tecum(도미누스 테쿰 : 주님께서 그대와 함께 하시길), Ora pro Novis Peccatoribus(오라 프로 노비스 페카토리부스 : 죄인인 우리들을 위해 기도하소서) 식의 문구 같은 것. 아쉽게도 성당 밖에서는 써먹을 일이 없기는 하지만 말이다. 어쨌든 그 힘으로 끝까지 책을 완주해낼 수 있었겠지.

라틴어는 사실상 생명을 다해 가는 사어(죽은 언어)에 가깝다. 종교/학술적 목적이나, 바티칸을 비롯한 소수의 국가에서 주로 사용한다. 그 덕에 정치/문화적 이유에 의해 '의미'의 변동이 거의 없고, 그렇기에 학자들이 '좋아하는 언어'라고 하니 역설적이기는 하다. 

인상적이었던 문구는 'Do ut Des(도 우트 데스). '네가 주기 때문에 내가 준다'라는 의미로 '상호주의'를 상징하는 문장이기도 하다. 상대국이 우호적이면 우호적으로 대응하고, 비 우호적이면 비 우호적으로 대응해한다는 상호주의 원칙의 기반이 '무너지고 있는' 오늘날 시사하는 바가 크다. 

대부분의 필수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그러했듯 나도 영어를 배웠고, 고등학교 시절 제2외국어로 일본어를 익혔으며, 직장 생활 중 회사 교육 과정으로 중국어 수업을 듣기도 했다. 하지만 업무상 외국어를 쓸 일은 많지 않다. 그나마 영어는 가끔 이메일을 주고받거나, 어쩌다 걸려오는 전화를 받거나, 혹은 '해외 출장'을 이유로 가끔 사용하지만, 일본어나 중국어는 거의 사용할 일이 없었다.

그럼에도 언어를 익히는 것은 새로운 세상을 배우는 것과도 같다. 이제는 중국어나 일본어를 대부분 잊었지만, 그래도 배우는 과정이 즐거웠다는 것만 기억하고 있다. 나중에 시간이 나면 외국어 하나 정도 더 익혀보고 싶다.

서양의 '한자'라고 할 수 있는 '라틴어'에 대한 호기심이 있다면 한 번 정도 들여다볼 만한 책!

하지만 라틴어 교재가 아닌 점은 명심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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