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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산톡톡 Oct 03. 2020

이윤기 신화 거꾸로 읽기

무적 '이지스(Aegis)'의 유래는 무엇일까?

서늘한 가을비가 내리는 10월의 첫 주말, '이윤기 신화 거꾸로 읽기'를 읽었다.

이 책은 2018년 고(故) 이윤기 작가의 8주기를 추모해 출간된 책이다. 고 이윤기 작가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번역작가 중 한 명이다. 그는 난해하기로 이름난 움베르토 에코의 작품 '장미의 이름'과 '포코의 진자'를 우리나라에 소개한 것은 물론 20여 년간 1백50권에 이르는 저서를 번역했다고 한다. 어린 시절 그가 번역한 토마스 볼핀치의 '그리스 로마 신화'는 너무나 흥미진진했던 탓에 읽고 또 읽었던 기억이 난다.

'이윤기 신화 거꾸로 읽기'는 우리가 살아가는 그리스와 로마인들이 남겨 놓은 풍부한 신화적 유산이 어떻게 현대 문명에 투영되고 있는지 명쾌하게 보여준다. 

최근 개발이 추진 중인 한국형 구축함 KDDX와 관련해 관심이 환기되고 있는 '이지스함'의 명칭의 유래에 대한 설명이 대표적이다. 페르세우스가 메두사의 머리를 잘라 영웅들의 수호 여신인 아테나에게 바치자, 여신은 그 머리를 자신의 방패 '아이기스'에 붙였다. 그 방패를 보는 존재는 누구나 돌이 되는 '무적의 방패'가 탄생한 것이다. 그래서 고대 그리스와 한 문화 권역이었던 지금의 터키 지역에서는 메두사가 승리의 여신 니케(영어로는 나이키)와 나란히 그려지거나 새겨졌다고 한다. 

그러나 저자는 '아이기스'의 영어식 발음인 '이지스'를 함명으로 지은 것은 참으로 지혜로운 일이나, '이지스'가 천하무적으로 남으려면 신화 속 교훈을 헤아려 봐야 한다고 충고한다. 

메두사를 무적으로 만드는 석화(石化)의 역설적으로 그녀를 파멸의 길로 이끈다. 영웅 페르세우스가 반짝반짝 윤이 나게 닦은 아테나 여신의 방패를 거울로 삼아 메두사가 자신의 얼굴을 보게 한 것. 엄지손가락으로 자신의 가슴을 가리키며 '나를 죽일 수 있는 칼은 여기에만 있다'고 호언장담했던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결국 적의 칼날이 아닌 자살에 가까운 폭음에 의해 생을 단축한다. 

결국 메두사와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적은 밖이 아닌 안에 있었던 것이다. 무적의 '권능'과 불굴의 '용기'에도 불구하고 스스로의 모순과 만용으로 무너지는 모습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외에도 '이윤기 신화 거꾸로 읽기'에서는 군의관 계급장에 나타난 뱀의 상징이 그리스 신화의 아스클레피오스 신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거나, 서울 신세계 백화점의 외부 장식과 파리 과일 가게의 밑 뚫린 바구니가 풍요의 뿔 '코르누코피아'와 관련이 있는 등 우리 시대에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고대인의 이야기들을 재미있게 소개해 준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 대한 옛 기억을 더듬어 재미있게 읽은 책! 다만, 기본적인 지식을 갖춘 것을 전제로 이야기가 속도감 있게 전개되니, 갑갑함을 느낄 수도 있는 점은 참고하면 좋겠다.

#이윤기신화거꾸로읽기 #이윤기 #그리스로마신화 #이지스 #작가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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