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주변에서 듣는 말이다. 서서히 문화가 변하고 있지만 아직 부정할 수는 없다. 강권하는 분위기는 많이 사라졌지만, 그래도 적게는 안주삼아 몇 잔, 때로는 병 단위로 마시게 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면, 실제로 술을 좋아하고 잘 마시면 그것대로 좋다. 하지만 몇 잔 못 마시는데 억지로 잘 마시는 '척' 할 필요는 없다. 그런 시대는 지난 것이다. 요즘은 양해를 구하면 대부분 이해해 준다.
직장생활을 시작하고 처음 접한 신문화는 이른바 양폭. 맥주잔에 맥주를 적당히 따르고, 양주잔에 양주를 가득 채운 후, 폭탄주를 혼합하는 방법인데, 제조법도 참 다양했다. 물론 그 농도나 숙취의 정도는 오늘날의 소폭에 비할 바 없이 독했다. 그래도 그걸 빠르게 잘 먹어야 일을 잘한다는 평가를 받던 고단한 시절이기도 했다. 어쨌든 밤에는 열심히 양폭을 마셔도, 새벽에는 회사에 나와 신문 스크랩을 해야 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소폭의 시절이 왔다. 양폭보다 훨씬 순하고, 숙취도 비교적 덜한 소폭은 축복이었다. 그만큼 비용도 덜 들었다. 문제는 우리도 나이를 먹는다는 것. 마시는 분량은 더 줄어들었다. 몇몇 지기들 사이에서 이따금 객기를 부릴 때도 있지만, 어느덧 그것도 줄어들었다. 그냥 적당히 본인의 주량껏 마시는 문화가 정착되었다.
사실 폭탄주(爆彈酒)라는 말은 우리에게 친숙하면서도 다소 섬뜩한 단어이다. 하필 수많은 이름 중에 화염과 굉음을 동반하는 폭탄이 들어간 명칭이라니. 혼합주나 퓨전 주와 같이 좀 더 감각적인 표제도 가능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긴, 폭탄주 몇 잔에 내 정신이 흐려지고, 이따금 유명인이 사고를 치는 모습을 보다 보면 Bomb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는 것만은 분명한 듯싶다.
사실 폭탄주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으나, 가난한 이들이 애용했던 술이었던 것은 사실인 것 같다. 20세기 초의 미국의 부두 노동자들이 빨리 취하고, 빨리 일하고자 마셨다거나, 시베리아 벌목공들이 추위를 잊기 위해 빠르게 취하는 폭탄주를 섭취했다는 이야기는 위 술의 성격을 자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폭탄주가 빨리 취하는 비밀은 '농도'에 있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맥주와 양주를 섞게 되면 20%에 가까운 알코올 농도를 취하게 된다고 하는데, 이것이 바로 '흡수'가 가장 잘 되는 도수라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빠른 것을 좋아하는 한국인의 취향에 썩 어울렸던 것 같다. 외국에서는 비교적 '천한 술'로 취급받던 폭탄주가, 한국에서는 고급술의 위치를 차지해 버렸다. 웰빙 바람이 불고 소폭이 등장하며 '도수'가 상대적으로 약해지는(?) 경향이 있지만, 술을 잘 마시는 능력, 이른바 폭탄주를 몇 잔까지 단숨에 들이켠다는 것은, 남에게 멋지게 자랑할 수 있고, 그것만으로 사랑받을 수 있는 '하나의 숭고한 능력'이 되었다.
그러나 요즘에는 폭탄주를 벌컥벌컥 들이켜는 젊은 여성들도 많이 보곤 한다. 억지로 못하는 그 독한 술을 거절하지도 않고 억지로 들이키고, 이제 사회에 성공적으로 진출했다는 듯 어색한 미소를 짓는 터프한 여성 신입사원을 보면 왠지 가슴이 메워진다. 이것이 양성 평등일까 하는 생각도 들고, 한편으로는 이러한 거친 세상에 이런 식으로 진출해야만 하는 후배들을 보면 안타까운 생각에 얼굴이 어두워지곤 한다. 남자도 마찬가지다.
독하고, 빨리 취하는 만큼, 뒤끝도 좋지 않고, 몸도 축내는 것이 폭탄주이다.
술은 목적이 아니라 매개체라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기자님과 취재원이 술을 마시는 이유는 빨리 서먹함을 없애고 진정성 있는 대화를 나누자는 의미다. 직설적으로 말한다면, '허심탄회한 정보교류'가 목적이다. 폭탄주가 서너 잔 돌아가면 회사 돌아가는 현황이나 고충에 대한 이야기도 할 수 있고, 기자님들께는 그것이 업계를 이해하고 또 다른 취재를 준비하는 좋은 아이템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너무 많이 마시다 보면, 오해의 소지가 있는 엉뚱한 정보를 흘릴 수도 있다. 실제로 그것 때문에 낭패를 본 선배님들도 계셨다. 나아가 만취 및 주정으로 기자님 및 주변인과의 관계를 망치는 경우를 여럿 보았다. 무리한 음주는 건강에도 큰 악영향을 미친다.
10년 전에는 술을 잘 마시는 것이 능력이었다면, 이제는 적절히 조절하는 것이 더 중요한 역량이 되었는지 모른다.
이제 와서 생각하니 음주 역량보다 중요한 것이 진정성이다.
차 한잔을 마셔도 진정성 있게 대화를 나누며 교감할 수 있다면, 굳이 술이라는 매개체는 필요 없을 것 같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나는 좋은 기자님을 만나서 반주 몇 잔을 나누며, 이런저런 회사나 업계 동향 또는 직장, 인생 이야기를 나누는 것 정도를 좋아한다. 연거푸 술잔을 들이켜는 분위기가 되면 따라가기는 하지만, 주도하지는 않는 편이다.
하지만 술을 거의 마시고도 홍보 업무를 잘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물론 비음주 기자님들도 계신다.
그리고 명심해야 한다.
내가 소주 몇 병, 소폭 또는 양폭 몇 잔을 마실 수 있다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좋은 '매너'다. 술을 마시고 좀 취해도 상대방과 즐겁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평점심', 실수하지 않을 '자제심', 그리고 때로는 내가 왜 이 자리에 있는지를 상기하는 '기억력' 모두가 중요하다.
젊은 분일수록 내가 어디까지 즐겁게 마실 수 있는 '한계치'인지 파악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가급적이면 거기까지 마시자.
술에 취하는 것이 반복되면 나쁜 습관이 들기 쉽다. 자리에서 졸거나 말이 많아지는 것은 애교이다. 하지만 때로는 대단히 공격적이 되거나, 더욱 심한 경우도 보았다.
그것을 주정이라고 한다.
서너 번 그런 행동이 반복되면 정말 고치기 어렵다. 인간관계에도 큰 악영향을 미친다. 홍보 담당자에게는 매우 안 좋은 행동이다.
선배라면, 후배들에게 좋은 음주 매너를 가르쳤으면 좋겠다. 무리해서 마시지 말고, 적절히 마셨을 때 일어서는 자제력과 습관을 공유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래서 그 후배들이 기자님들과의 자리에서 스스로 자제하는 '용기'를 갖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