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지역 속 양분화된 문화
최근, 한 단체로부터 교육 프로그램 안내문자를 받았다. 도시의 어느 학교, 도서관에서 본 듯한 프로그램이다. 우리가 무심히 지나치는 예술세계, 익숙한 작품을 새로운 관점, 인권의 관점에서 다시 보게 하는 목적이 선명히 보인다. 강사진이 지명도가 꽤 있는 강사들로 구성되어 있다. 나 같은 사람에게는 반가운 주제이다. 이 안내문을 보며 강원도의 이 작은 지역에도 교육이 다양해지고 있구나싶다. 그러면서 이 교육에 선주민이 얼마나 참가할까하는 의문이 들었다. 아마도 거의 없을 듯하다. 이 교육도 고학력 귀촌자가 기획하고, 귀촌자가 교육에 참가하고, 참가자는 귀촌인구일 가능성이 크다. 이렇게 작은 지역에서 문화는 양분화되고 있다.
나는 도농복합, 작은 소도시에 거주하고 있다. 거주지와 달리 대부분 일과 활동은 시골, 농촌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서울이나 수도권이 아닌 작은 지역에서는 삶의 차이가 더욱 두드러진다. 외형적 주택의 크기, 모습으로 차이가 크게 나기도 하지만, 관계 맺기, 어울리는 분위기에서도 사뭇 다르다. 쉽게 섞이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회성의 문제, 적극적으로 함께하려는 노력의 문제로 쉽게 규정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사회성, 성격의 차이는 종종 취향의 문제이고, 그 취향은 오래된 습관의 결과이며, 그 습관을 만드는 것은 생활환경, 문화일 수 있다. 아마도 작은 지역 주민이라면 이런 점을 한번 정도는 고민했을 것이다.
10년 정도 시골, 농촌에서 생활하다보니, 종종 문화 차이에 의해서 주민들이 나누어지는 현상을 목격한다. 문화자본의 위력을 더욱 실감한다. 이런 문화의 차이는 대단히 복합적 요소가 포함되어 있다. 어떤 인물이 가지고 있는 문화는 생활 속에서 오랫동안 만들어진 결과물이다. 프랑스 철학자, 피에르 부로드외는 문화취향의 차이는 학력, 화폐 등과 더불어 현대사회를 구성하는 주요한 권력이라고 말했다. 문화자본이 그들만의 문화, 소속감을 공고히 하는 기능만으로 끝나지 않고, 물질자본과 같이 이윤을 만드는 역할을 한다.
귀촌자들이 만드는 또다른 문화
우리 주변을 보자. 김지연의 단편집, <<마음에 없는 소리>>에는 고향에서 서울로 이주해서 살아온 여성들이 고향을 다시 찾아 겪는 일들을 담은 몇 편의 단편들이 있다. 이들은 정상(?) 생애주기를 벗어나 있다. 결혼이란 압박에 시달리는 나이의 여성, 변변한 직업을 갖지 못한 여자들이다. 열심히 살았으나 항상 노력 부족으로 비추어진다. 무용하지 않지만 특별히 사회적으로 인정되는 능력, 기능을 갖지 못한 인물들이다. 소설 속에는 특별한 가해자와 가해의 행위가 없지만, 주요 인물들의 삶은 주눅 들어 있다. 그림자 같은 인물들, 그러나 적지 않은 우리의 주변 인물이다.
단편집의 표제작인 <마음에 없는 소리>에서 선미는 서울에서 정착에 실패하고 고향으로 돌아와서 작은 식당을 차리지만 안정적이지 않다. 그런데 고향에는 예술을 생산하는 청년들이 있다. 이들은 도시에서 온 청년들로서, 지역의 폐교를 전시공간으로 만드는 프로젝트에 참가하고 있다. 이들은 정주하지는 않지만 지역에서 활발히 일하고 있다. 동일한 공간을 예술 공간으로 만들려는 그들과 생존의 장으로서 힘겹게 버티는 선미는 대조를 이룬다.
선미의 고향 친구들은 예술가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청년예술가? 뭐 그런 사업에 선정돼서 한동안 살러 온 거라 하네.” “예술가라잖아. 맨날 놀고먹으면서 예술가랍시고 나랏돈 타먹는 거다. 먼저 먹는 놈이 임자라느니 눈먼 돈 이라느니 어쩌니 하면서.” 그들에 대해서 부러움과 적의를 드러낸다. 그들의 말이 진실이 아닐 수 있다.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그들의 소외감이다.
예술가 청년들 중 한 여성이 선미를 그들의 전시회에 초대한다. 선미는 그들의 활동이 낯설고, 오히려 자신이 이방인같다고 느낀다. 30대 후반이라는 비슷한 연령대임에도 불구하고 서로 쉽게 접근이 가능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선미는 그들에게서 넘을 수 없는 벽, 문화 차이를 느꼈을 것이다. 예술가 청년들이 직접적으로 물질적 자본, 학력을 내세우는 일은 없다. 그들도 지역사업 프로젝트에 참가할 뿐이다. 그러나 그 활동으로 그들은 간접적으로 그들의 물질적 자본, 학력을 보여준다. 선미는 그들에게서 이질감을 느끼고, 열등감을 갖기도 할 것이다.
최근 농촌지역에 귀촌인이 상대적으로 선주민/토박인에 비해 자주 눈에 들어온다. 귀촌인구가 유독 늘어났기보다는 선주민 인구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다른 지역에서는 청년 귀촌인구가 증가한다는 소식이 있기는 하지만 내가 생활하는 곳에는 5060대 귀촌인구가 늘고 있다. 이들은 상대적으로 고학력자들이다. 그들 대부분은 서울이나 도시에서 일정 자산(부동산)을 가지고 있어 중산층에 속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들과 선주민과의 생활 차이도 도드라진다. 서울에 강남이 있듯이, 농촌지역, 도농지역에도 그들만의 지역이 있다. 소위 말하는 전원주택 단지가 생긴다. 단지가 형성되지 않아도 농촌 마을 곳곳에 돌담이 멋진 집들이 들어선다.
그들은 도시와 농촌이라는 터전을 이중으로 살고 있다. 그들의 생활이 극히 도시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그들은 열심히 텃밭을 가꾸고, 마당에 꽃과 나무를 키운다. 농촌에 귀촌인구가 늘어나는 것은 나쁜 현상은 아니다. 예전에는 텃세라는 것이 있었다. 토박이들이 텃세를 부린다고 했다. 몇 년 전만 해도 선주민들이 귀촌인들에게 일정 돈을 요구한 적도 있다. 그러니까 선주민들이 마을 만드는 데 기여한 것에 대한 일정 감사 표시를 요구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도 옛날 말이다. 오히려 요즘은 지방 소멸을 막기 위해서 귀촌인을 모셔와야 하는 형편에 이르렀다.
귀촌자들은 이곳에서 시골 전원생활을 단순히 즐기는 삶만을 선택하지 않는다. 그들의 학력, 경력 때문인지, 지역에서 다양한 활동에 참가한다. 특히 저자로서 경력이 있으면, 출판된 책은 주요한 경력을 보증하는 증표가 된다. 작은 지역에서도 일자리를 쉽게 찾는다. 그들에게는 큰 일자리가 아니어도, 토박이들에게는 가질 수 없는 성격의 일이기도 하다. 선주민들은 생업인 농업을 떠날 수 없어서, 교육의 기회에 접근할 경제적 토대가 없어서 멀리 할 수밖에 없었던 교육, 문화이다. 선주민들에게서 찾기 힘든 재능, 예를 들어 교육, 미술, 음악 등 재능을 활용해서 지자체에서는 마을 만들기에 힘을 쓰고 있다. 시골, 농촌의 모습이 예전보다 다양해지고 있다.
내가 서울에서 지방으로 이주한 것은 10여년 전이었다. 처음 내가 살게 된 곳은 작은 면이었다. 그 곳은 깊은 산자락 안에 위치해 있어서, 밭농사가 주이고, 산자락을 끼고 밭고랑이 보이던 곳이었다. 아마도 교통이 불편했던 때, 지금처럼 자가용이 흔하지 않았던 때에는 고립되었을 것이라고 짐작되는 지형이었다. 그런데 그곳에는 2000년 초부터 귀촌자가 늘기 시작했다. 선주민과 귀촌인들, 그들 사이에는 유형무형의 차이가 있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 차이를 예민하게 의식하고 불편하게 생각하는 쪽은 선주민들이었다. 귀촌인들은 오히려 선주민들과 함께하려는 적극적 노력을 했지만, 잘 섞이지 못했다. 따로따로였다. 어쩌면 선주민만큼 귀촌인들이 문화의 차이를 불편해하지 않고, 편안함을 느끼는 것 자체가 특권의 위치에 있음을 보여준다. .
다양함과 연대가 함께 하는 문화
김지연 소설 속 인물들을 생각한다. 그들이 계층을 온전히 대변한다고 할 수는 없다. 그들을 쉽게 대표의 자리에 놓는 것 자체가 소수자에 대한 차별일 수 있다. 선주민이나 귀촌인이 하나의 결일 수는 없다. 각각 그 속에는 다양성이 있고, 다양한 계층적 차이를 포함하고 있다. 서울이나 도시에서 밀려나서 온 귀촌자들도 많다. 따라서 농촌은 귀촌자 각각에게 다양한 의미를 가질 것이다. 농촌은 귀촌자들이 선주민들을 무조건 따라해야 하는 공간이 아니지만, 의식 개선이란 명목 하에 새로운 문화를 이식하는 공간도 아니다. 작은 지역에서 다양함은 어떤 계층, 누군가를 소외시키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오늘 나는 교육안내문을 보면서 생각한다. 내 문화의 정체성은 어디에 속하고 어디를 지향하는지 잠시 생각한다. 다양함이 경계를 긋는 일은 아닐 것이다. 다양함과 다름이 연대로 연결되는 지점을 조금 더 고민해야겠다. 이 글은 나의 반성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