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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ads May 29. 2023

레가토가 끊어지는

권여선의 <레가토> 리뷰


권여선의 소설을 오랜만에 읽었다. 권여선의 소설은 주로 단편이나 중편 정도의 소설만을 읽었었나보다. 장편이 낯설다. 내가 그녀의 소설을 좋아하는 이유는 삶의 고단함, 피곤함을 잘 묘사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희망을 희미하게 보여준다. 그 희망이 크지 않지만 위로가 된다.작가는  평범한 작은 인물들이 서로 위로하며 살아가는 데에 대한 믿음이 있다. 그런데 레가토는 내가 읽었던 소설과는 거리가 있다. 첫장부터 익숙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재계와 정치계 인물들... 그리고 학생운동. 나는 이런 종류의 80년대 후일담을 좋아하지 않는다., 현재적 시점에서 살아남은 자들의 반성, 회환 . 진부하다. 레가토는 이런 공식과 큰 차이가 없는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이  후일담의 키워드를 찾자면 '폭력'과 '책임의식'이 아닐까. 폭력을 다루는 주요한 사건은 세 가지이다. 운동권 서클, 성폭력, 그리고 광주항쟁이란 폭력이다.. 운동권 서클 내에서의 폭력은 공동체 내부의 위계가 만들어낸 폭력이다. 물론 뒤의 폭력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그러나 일상화되어 있던 폭력에 대한 서사이다. 공동체 내부의 폭력과 성폭력을  시대적 정치적 배경과  직접적인으로 연결하는 것은 너무 도식적이다.  정치적 배경인 독재정권이 학생들 공동체 내부의 폭력, 남녀간의 성폭력이 그 직접적 원인이라는 연결을 찾을 수는 없다.  이 세 사건은 시간상, 당시의 사회적 의식으로 연결된다.  7080년대의 가부장적 의식의 다른 면들이 드러난 것이다.  광주항쟁도 그런 사회적 의식과 무관하지 않다. 


두번째 키워드의 책임의식은 인물을 통해 나타난다. 이 소설은 인물에서 볼 때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이념서클, 목표 의식하에 만들어진 공동체 인물들 그리고  정연이라는 인물을 둘러싼 사적 관계에서 만들어진 부분이다. 이는 고향의 어머니와 이모이다. 그리고  운동권  동기 준환이다.  이들은  권여선 작가의 다른 소설들처럼  가장 작은 지위를 가지고 있는 힘없는 인간들이다. 준환도 마찬가지이다. 이념서클 중 특별히 뛰어나지 않다. 다만 공동체가 남긴 폭력의 현장을 돌보는 역할을 스스로 수행한다. 


준환은 책을 다읽고 나서도 잘 이해가 가지 않은 인물이기도 하다. 그가 책임지려 했던 것이 무엇인지. 그가 무엇을 지키려 했는지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작가는 준환에게는 직접 말할 기회를 주지 않고 있다.  논리적으로 설명이 되지 않는 인물이나, 그런 심성을 가진 인물을 우리는 찾을 수 있다. 


내가 가장 불만인 부분은 정연의 후반부이다. 정연이 광주에서 진압대에 의해서 폭행을 당하고, 기억을 잃고, 프랑스 파리로 입양되고, 30년 후 정연을 기억해주는 사람들을 만나는 전개는 과도하게 드라마틱하다. 왜 이런 서사를 선택했는지 궁금해진다. 마치 한편의 TV 주말 드라마를 보는 듯했다.  가해도 피해도 모두 품는 해피엔딩을 만들고 있다. 정연의 잃어버린, 망각의 30년 역사는 무엇으로 위로를 받나. 


정연을 광주가 만든 죽음 직전 상태에서 구해낸 이유를, 그리고 기억 상실이라는 공백을 만들어낸 이유를  찾기 힘들었다. 권여선 소설에서 항상 느끼던 가난하고 취약한 자에 대한 안타까움 그리고 그 안타까움을 비극으로 만들지 않으려는 작가의 마음일까. 


투박하게 결론을 짓자면 서사가 가지는 과도함이 두드러진 소설이었다. 권여선의 단편, 중편에서 보았던 작은 인물들의 사소한 일들이 주는 감성이 어떤  설명이 없이도 받아들여졌었는데. 이 소설은 인물들의 행로가 동감하기 힘들었다. 마치 슬라이드로 몇장의 사진이 비추고 지나간 듯했다. 슬라이드 사진과 사진 사이에  많은 설명이 빠져 있는 듯했다. 레가토가 음과 음을 연결하는 음악용어라 하는데, 나는 그 음이 그저 뚝뚝 떨어지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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