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의 민낯을 만나는 여행
누구나 한번쯤은 지극히 어지러운 마음 때문에 여행을 결정한 적이 있을 것이다. 이번 여행이 나에게 그렇다. 번잡스러운 마음을 피하기 위해서 육체적 고통을 감수하는 여행을 하면 어떨까. 한걸음 옮기는 것이 어려운 곳, 그 걸음걸음을 의식하면서 나갈 수 있다면, 몸의 집중으로 잠시나마 현재 고민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럼에도 왜 히말라야 트레킹인가? 우선 히말라야에 대한 막연한 환상이다. 인간 개개인의 소소한 고민은 별 것 아닌 것으로 만들어줄 수 있는 거대한 설산의 힘을 믿고 싶었다. 그리고 가장 실제적 이유는 가까이에 히말라야 트레킹을 준비하는 동료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저 두 다리에 온 정신을 집중하여 걸으면 되는 여행이라고 생각했다. 트레킹에 필요한 용품 준비 외에 어떤 준비도 하지 않았다.여행 준비를 위해 의례히 읽는 기본 여행가이드 책도 읽지 않았다. 내가 사는 지역의 도서관에 안타깝게 네팔 관련 책이 없기 때문이기도 했다. 산을 오르는 것이니 조심스럽게 걸으면 되겠구나 싶었다.
그런데 여행은 히말라야에서 시작하지 않는다. 어느 여행지이든 도시를 통과해야 한다. 히말라야를 가기 위해서는 카트만두, 포카라 등에서 도시의 생활을 만나야 한다. 마치 영화 예고편처럼 압축적으로 사람의 마음을 내리치는 몇 개의 장면을 여행객에게 보여준다. 가난한 나라의 도시 풍경들은 한국인들에게는 무질서, 혼란의 덩어리로 보일 수 있다. 가장 어려운 점은 가난이 만들어낸 상황,가난의 민낯을 마주하는 절차를 통과해야 한다는 것이다.
난 카트만두에서 노숙자, 구걸하는 장애인과 어린이, 여성, 노인을 만났다. 여행객과 이들의 목적지는 같다. 외국 여행객이 자주 출몰하는 지역에 그들은 있었다. 여행객의 작은 자선이 동정에서 비롯되었든, 불편함에서 비롯되었든 그들은 상관하지 않는다. 난 그들의 얼굴을 피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들은 내 얼굴을 빤히 보았다. 흔들리는 내 눈빛과 달리 그들 눈은 애절하고 절박했다. 또한 그들 눈빛은 강렬했다. 그들의 자리가 내 자리일 수 있다고 그들 눈빛이 말하는 것 같았다. 어쩌면 찰나의 순간에 그들의 업과 내 업이 부딪힌 듯한 강렬한 눈빛이었다.
일상 속에서 만날 일이 드문 사람들을 집중적으로 만났다. 학교에 갈 시간에, 조악한 물건을 관광객에게 파는 아동들의 무리도 있었다. 이런 상황이 여행지의 멋진 유적과 풍광과 함께 어우러져서 일어났다. 내 감정은 시소를 탔다. 탄성과 한숨이 들숨과 날숨으로 교차하고, 그 교차의 간격은 짧았다. 내 가벼운 감정 움직임에 내 자신이 수치스럽기까지 했다.
난 그들을 급히 떠나서 대기하고 있던 여행객만의 차에 오르고, 그들에 대한 기억은 사라지고, 다음 여행지는 어떤 모습일까 상상으로 마음이 들뜬다. 이런 날이 계속되면서 내 정신상태가 정상인가 싶었다. 그런 순간이 계속 반복되면 무감해지려나.
이런 내 감정을 경험하는 것은 오랜만이었다. 최근 내가 여행을 한 지역들은 평안한 마음을 품게 하는 곳이었다. 한국과 유사한 생활수준을 가진 곳, 쉬고 싶고, 다시 가고 싶은 질서정연한 곳이었다. 어지러운 마음으로 네팔 도시를 스치면서 예전에 내가 여행했던 가난한 지역들이 생각났다. 언제부터인가 나의 여행의 목적지가 변했구나 싶다. 어쩌면 내 삶도 그런 여행지와 같이 무탈한 편안한 관계만을 찾는 것으로 변한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