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병을 받는 자의 시선으로

by roads

요즘 간병의 어려움을 다루는 뉴스나 칼럼을 읽을 때면, 간병의 어려움보다는 간병을 받는 어른들에 더 눈길이 간다. 간병의 어려움, 특히 가족의 간병시 발생하는 많은 어려움에 초점에 맞춘 내용들의 저 뒤편에 누워있는 사람들의 표정이 보이는 듯하다. 이런 경험이 요즘 잦다.


오늘, 한 시사 잡지에 실린 의사 글을 보면서 온몸이 긴장되고, 가슴이 콩당 뛰어서 나도 놀랐다. 이 글이 감성적인 글도 아니었는데말이다. 아마도 글이 환자의 상태, 뇌경색으로 인한 거동의 불편한 조건을 먼저 설명하고 있기 때문일지 모른다. 가족 간병인의 어려움보다는 간병을 받아야 하는 사람에 대한 상상 때문에 나는 힘들었다. 글의 마지막까지 환자에 대한 설명은 그저 육체적 외형적 차이로만 표현되었다. 그 분의 심정은 보이지 않았다. 이렇게 글을 대하는 내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알겠다.


객관적으로 글을 읽자면 글의 주제, 목적으로 볼 때와 극히 주관적으로, 독자의 입장에서 우선 보게 되는 것은 다른 현상을 만든다. 글의 취지를 이해못해서가 아니라, 그냥 그렇게 된다. 내가 다른 것보다 유달리 예민해지는 것이 나의 현재 관심사이며, 내 모습일 수 있다는 판단이 서자, 더욱 내 상황이 불안하게 느껴진다.


얼마 전에 미국 코미디안 마크 마론의 스탠드업 코미디를 보았다. 그 쇼의 타이틀은 패닉이었다. 그는 솔직하게 자신이 정신과 의사와의 상담을 받고 있음을 고백한다. 그는 자신의 담당의사가 자신을 이렇게 진단했다고 한다. 마크 마론은 의사를 만나기 전에는 자신을 우울증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환자는 우울증이 아니다. 불안강박증이라고 (obsessed with anxiety). " 어쩌면 나에게도 해당하는 진단이 아닐까. 난 사는 것이 어렵다. 두려워지고 있다. 그 증상은 우울증으로 나타날 수 있다.


난 내 가까운 미래, 특히 육체적 조건에 대하여 걱정이 많다. 그런 걱정이야 내 나이의 사람이면 누구나 가질 듯하나, 혼자산다는 것이 더 심각하게 영향을 주고 있는지 모른다. 내가 현재 상태를 계속 유지할 수 있을까. 내가 아침에 스스로 식사를 준비하고, 청소하고, 산책을 할 수 있는 상태가 내 최상일지도. 그런데 하나라도 힘들어지면... 이런 두려움이 먼 가족에게라도 간간히 끈을 잡으려 하는 마음으로 나타나는 줄 모른다. 어쩌면 그들도 그를 알고.


잡지를 덮으면서 이렇게 속삭인다. 가족 간병인을 가진 어른은 어쩌면 몇년 후 나보다 나은 처지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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