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으면서 쓴다

by roads


"낯섦을 견뎌내는 길은 걷는 것 말고는 없었다. 걷다가 걷다가 익숙해질 때까지 살아낼 수밖에는 아무 도리가 없었다. "-허수경, <너 없이 걸었다>, 23쪽


1.

직장도 없이 지낼 때가 있었다. 그 당시 난 집에 처박혀 있었다. 날 둘러싼 관계에 부담이 되어 외부와의 관계를 단절하고 살았다. 도서관에도 가지 않았다. 내가 밖으로 나갈 때는 저녁 무렵 산책을 할 때였다. 단단한 머리와 무거운 몸, 경제적 빈털터리 신세인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걷는 것 말고는 없었다.


걸으면서도 난 나를 반복하고 있었다. 내 머리 속에는 게으른 나, 불평하는 나, 그리고 손을 땀이 나도록 오므리고 있는 소심한 내가 부딪히고 있었다. 누군가 인정해주길 바라는, 그저 이해받길 바라는 내가 웅크려서 웅성대었다. 그래도 걸었다. 목적지도 없는 산책이었다. 걷는 것마저 없다면 나는 사각 방에 둘러싸여 몸만 키우는, 알 수 없는 소리로 울어대는 짐승이었을 것이다.


굳이 걷는 실제적 이유를 찾는다면 내 삶의 무용성과 비례하여 커져가는 몸 덩어리를 줄이는 것이 걷기의 목표였다. 몸에서 땀 냄새가 나서 역해질 때까지 걸었다. 내 몸의 반응이 나는 기뻤다. 내가 가질 수 있는 유일한 성취감이었다. 무기력한 내가, 살아있다는 아니 살고 싶다는 마음을 내뿜는 과정이었다. 걷는 내가 있어 그 시절을 조금이나마 견딜 수 있었다.


지금도 나는 걷는다. 걷는 것은 날 지키는 하나의 방법이다. 딱딱하게 굳어져 있던 내 머리는 숭숭 구멍이 나 있다. 내 머리 속에서 어떤 욕망이 빠져나가버린 공간이 생겼기 때문이다. 육체가 낡아가면서 내가 포기해야 하는 것들이 많아지고 그를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인 후의 걷기는 내가 날 혹사하지 않음으로써 오는 가벼움이 있다. 그때만큼 캄캄하지 않고, 답답하지 않다. 그럼에도 여전히 몸에 집중하지 못하고 스며들어오는 생각에 빠져서 버거움이 많다.


2.

맞은편에 허리와 어깨가 굽은 할머니가 걸어온다. 다리는 오자 다리처럼 휘고 양발은 앞으로 향하지 않고 밖으로 향한 상태로 걷는다. 저 분도 나처럼 건강을 위해서 저렇게 열심히 걷는구나. 나도 언젠가는 저런 모습으로 걷겠구나. 그때의 나는 건강하게 두 다리를 쭉 펴고 걷는 사람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할까. 저런 신체를 잃은 것에 대해서 서러울까. 이렇게라도 걸을 수 있어 다행이라 할까. 후자였으면 좋겠다.


나의 걷기는 매일 무딘 걸음으로 시작한다. 무릎에서 소리가 나고, 뻐근하게 굳어있던 고관절에 찌릿한 진동이 퍼진다. 또한 두 다리는 무겁고 발이 끌린다. 이런 걸음걸이는 앞으로 나가면서 조금씩 달라진다. 이래서 스트레칭이 필요하구나 싶다. 내 사유는 메밀국수처럼 계속 끊어지고 엉켜버린다. 미세먼지 가득한 하늘의 무게에 답답해진다. 이런 묵직한 내 마음은 미세먼지 탓인가, 얼마 있으면 닥칠 내 모습을 미리 보고 있기 때문인가.


맞은편에서 오시던 할머니가 벤치로 가서 할아버지 옆에 가 앉는다. 할아버지는 긴 지팡이를 얼굴 가까이까지 세우고, 지팡이에 얼굴을 기대어 있다. 할아버지는 힘드셔서 쉬고 계셨나보다. 어두워지는 몸을 지팡이와 벤치에 기대어, 걷는 할머니를 응원하신 할아버지. 난 두 분 곁을 지나친다. 내 미래의 걷는 모습의 상상에는 전혀 끼어들지 못하는 풍경이다.


3.

지금 걷고 있는 이 길은 이제 익숙해졌다. 저 다리를 건너면 얼마나 걸리는지도 안다. 그리고 사거리가 나오면 마켓이 있다는 것도 안다. 이제 이곳은 낯선 곳이 아닌가. 최근 몇 년 동안 이사를 자주 다녔다. 낯선 곳에서, 짐을 풀면 나는 걷는다. 이 때 걷는 것의 실제적 목표는 건강보다는 낯선 곳을 익히는 것이다. 익히는 것의 집중은 그 곳에서 내가 지낼 시간과 비례한다. 난 느리게 그곳을 둘러본다. 난 관찰한다. 내 삶으로 장소를 들여보내는 과정이다. 다시 올 곳이기에 빨리 보지도 않는다. 내가 떠나온 곳과의 유사함과 다름이 겹겹이 자리한다. 그리고 내 거주지를 중심으로 굵게 지도를 만들어나간다. 그 지도는 살면서 더 세세해지고 복잡해질 것이다.


여행지에서의 걷기는 지도를 그리지 않는다. 먼저 걸어간 사람들이 남긴 가이드를 따라 걷는다. 신체의 감각은 마치 모든 사물을 받아들일 듯이 요동친다. 그 곳의 사물이 듬성듬성 내 안으로 들어온다. 빠르게 선명하게 쌓인다. 그런 쌓임은 이미지가 되고 내 감상이 된다. 여행지에서 돌아오면 그 실재는 곧 사라진다. 뒤죽박죽 희미하게 얽혀진 이미지는 내 추억이 된다.


낯설지만 오랜 시간 머물러야 할 곳에서의 걷기는 추억으로서 설렘보다 익숙해지기 위한 연습이다. 또 다시 살아가야 한다는 다짐을 끌어당기는 때이다. 내 인생에서 이주할 수 있는 여건이 되었다는 것이 다행이고, 이주의 문턱에서 항상 적응을 부르짖고 익숙해지라고 다진다. 걷기를 통해서 지형이 익숙해지듯이 삶을 뚜벅뚜벅 걸어가면 삶의 무게에 익숙해질까? 언제쯤일까? 그 때는 올까? 익숙해지지 않아도 걸어야 한다. 다른 도리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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