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 본 듯한 그림이 넘치는 여행
블라디보스토크 ! 낯선 이름의 지명이 내 귀에 익숙하게 들어오게 된 것은 몇몇 방송 덕분이다. 배틀처럼 벌어지는 여행 프로그램에서 본 블라디보스토크는 넓은 대양을 품은 항구도시라는 점이 유혹적이었다. 항상 바다는 어느 곳이나 나에게는 뿌리치기 힘든 유혹이다. 벼르던 차에 여행을 하게 된 것은 친구 덕분이었다. 내가 어려울 때 도와준 친구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서 계획된 여행이었다. 친구의 일정에 맞추어 7월초에 블라디보스토크를 다녀왔다.
요즘처럼 여행 정보가 넘치는 때도 없는 것 같다. 온라인에는 여행지마다 카페가 있고, 여행기간에 따라서 맞춤 여행코스를 소개해주는 친절한 커뮤니티도 있다. 특히 블라디보스토크처럼 크지 않은 도시, 한 도시만 여행하는 경우에는 여행코스를 정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SNS 등에 사진과 내용이 충실히 소개가 되어 있어서 처음 가는 곳도 낯설지가 않다. 그러다보니 여행코스가 비슷하다. 러시아와 같이 커뮤니케이션이 힘든 곳은 더욱 한정된 곳으로 여행이 집중된다.
블라디보스토크의 특징인지, 여행정보를 제공하는 동일한 미디어에 모두 의존해서인지, 여행지에서 한국인끼리 많이 부딪혔다. 유명한 식당에는 한국인만이 대기하고 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한국에서도 맛집을 탐방하여 줄을 서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나는 해외에서도 이런 데에 끼고 싶지 않았다.
해외라 다시 오기 힘드니, 좋다고 소문난 곳은 다 가봐야 한다는 마음을 이해한다. 그런데 한국인들로 붐비는 맛 집이 러시아에서만 맛볼 수 있는 음식을 파는 곳도 아니고, 한국에서도 맛볼 수 있는 디저트, 피자, 커피 등을 파는 곳이라면 굳이 줄을 설 이유가 나에게는 없었다. 맛이 있으면 얼마나 더 맛이 있을까하는 의구심도 들었다.
그래서 친구와 나는 다른 식당을 많이 갔다. 우연히 찾게 된 곳들이었다. 첫날부터 그랬다. 도착일, 숙소에서 집을 푸니 시간이 너무 늦었다. 숙소 주변에 식당은 모두 문을 닫아서, 열린 곳을 찾으러 다니다, 마침 열려진 식당이 있어서 안으로 들어갔다. 식당에는 우리 둘만이 손님이었는데, 우리 둘이 단 하나의 스프와 맥주만을 시켰음에도 친절했다. 이 식당은 며칠 후 다시 갈 정도로 맛이 일품이었다.
둘째 날, 우리도 온라인 여행커뮤니티가 소개하는 맛집을 찾아갔다가 사람이 많아서 포기하고, 주변의 햄버거집과 카페를 들렀다. 러시아식 햄버거집은 넓고, 검은 철제 인터리어가 모던한 느낌을 주었다. 메뉴에 채식주의자 버거가 있어서 나는 만족스러웠다. 검은 비닐 손장갑을 주는 것이 특이했다. 버거가 커서 음식과 소스가 흘러내는 것에 대비한 배려였다. 다음으로 들른 카페도 우리만이 손님이었다. 넓은 홀에 마치 좋은 호텔의 로비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아이스커피를 위스키잔에 주는 것이 이색적이었다.
이렇게 우리는 여행기간 동안, 4박5일 동안 어떤 사전 정보도 없이 식당과 카페를 불쑥 들어가곤 했다. 물론 기준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우선 깔끔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런 단순한 기준이 통했다. 여유 있는 여행 일정이 이런 여행을 만들었다.
이런 경험을 통해서 얻는 결론은, 한국인들이 줄을 서는 식당 외에 다른 식당들은 대부분 한산했다. 실내도 깔끔하고 음식도 깔끔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말이 통하지 않고, 많은 음식을 시키지 않아도 친절했다. 나는 해산물 요리를 주로 먹었는데, 러시아 특유의 양념이나 소스를 발견하지는 못했다. 해산물 본연의 맛을 그대로 살리고 있었다. 어떤 경우는 짰는데, 아마도 해산물 본래의 짠 기인 듯했다. 이들이 해산물의 맛을 내는 유일한 야채는 비트와 토마토뿐인 듯 싶었다.
블라디보스토크를 여행한 사람들의 카페나 블로그에 나온 사진들은 비슷하다. 서로 올린 사람이 달라도 배경과 소개되는 음식은 비슷하다. 그래서인지 처음 가 본 여행지임에도 예전에 내가 왔었던 곳 같다. 특히 이곳은 짧은 여행일정으로 오는 곳이라 그런지 더욱 그랬다. 자유여행을 하지만 단체여행과 다름없다. 가는 여행지가 정해져 있고, 먹는 음식점이 정해져 있다.
맛집을 탐방하고 음식을 체험하는 것은 여행의 기쁨 중 하나이다. 또한 여행의 추억을 잘 보존하기 위해서 사진을 찍는 것은 필요한 일이다. 나도 그렇다. 점점 기억력이 약해지는 나는 사진을 자주 찍는 편이다. 인상적인 곳은 사진을 찍어서, 여행 후 그 곳과 관련한 정보를 찾아보기 위해서이다.
핸드폰으로 찍는 사진도 그림과 같이 피사체를 보는 사람의 주관성이 배어 있다. 어떤 각도를 택하느냐, 어떤 배경을 택하느냐, 어떤 인물을 담느냐는 바로 여행가의 선택이다. 짧은 기간이지만 단체여행처럼 누구나 하는 코스를 도는 것에서 벗어나는 여유를 가졌으면 한다. 같은 여행코스라도 그곳에서 나만의 새로움을 발견할 수 있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그러나 우리에게 여행은 마치 돼지저금통의 동전 같다. 동전이 어떻게 우리 손에 들어왔는지 관심이 없고 그저 동전으로 저금통을 꽉 채우고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