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20대를 만나는 여행
난 20대가 낯설다. 내가 교류하는 사람들은 주로 중장년층이다. 가족이 없으니 20대 청년의 일상을 잘 모른다. 그저 피상적일 뿐이다. 언론에서 접하는 청년층의 이미지는 양극단의 모습이다. 실업, 경쟁, 소외라는 구조적 억압을 당하는 세대 그리고 자유롭고 발랄한 모습이다. 내가 청년들을 직접적으로 대면할 기회는 거의 없다. 설령 만날 기회가 있다 해도, 지인의 자식들이라 그들이 내게 보이는 것은 예의 있는 행동뿐이었다.
그들과 접할 기회가 거의 없으니 그들을 직접적으로 관찰할 기회도 거의 없었다. 이번 여행을 통하여 나는 20대를 거칠게 만날 수 있었다. 직접 말을 섞어서 오랜 시간 이야기하지는 못했지만 볼 수 있었다. 이번 여행을 통하여 나와 그들과의 거리감을 확연히 느꼈다. 내가 여행지에서 만난 청년은 소수이고, 그렇기 때문에 일반화하기 힘들다. 또한 나의 주관적 느낌일 수 있기 때문에 조심스럽다. 그러나 주관적 판단, 느낌이란 점을 전제하고 글을 쓴다.
블라디보스토크 아르바트 거리에는 현지인보다 더 많이 한국인이 있다. 자유여행하는 사람들의 연령은 대부분 젊었다. 20대 초반이 많은 것 같았다. 피서철을 피하면서도 여행지에 적합한 날씨를 즐길 시간을 가진 20대 초반이 많은 것은 당연했다.
그들을 보면서 나는 두 가지 점을 발견했다. 두 가지가 다른 사람들에게는 전혀 새로운 일이 아닐 수 있는데 나에게는 사소하지만 신선한 문화충격이었다. 우선, 여행 복장이다. 복장에서 세대의 차이가 나고, 여행 방식이 다르다는 것을 보여준다. 나의 여행복장은 편한 것이다. 아웃도어 의상을 특별히 준비한 것은 아니나. 그런 류의 복장이 기본이라 생각했다. 전투를 치르듯이 하는 여행이 몸에 배서인지 모른다.
내가 만난 젊은 층은 파티를 하듯이, 옷을 입고 다닌다. 특히 여성들은 옷과 구두까지 한껏 멋을 부렸다. 숙소에서의 복장과 크게 다를 게 없는 우리와 달랐다. 숙소에서 만나는 그들은 우리와 동일하게 편한 복장을 하고 있다. 친구의 말에 의하면 20-30대가 대부분 여행할 때 옷과 구두를 많이 준비한다고 한다.
인스타그램의 유행으로 예쁜 음식, 식당의 사진을 올리는 것이 붐이 되고 있나보다. 또한 자신의 사진도 다양한 모습을 담아야 하니 복장도 화려해지는 것 같다. 짧은 시간에 최대한 많은 새로운 사진을 만들다보니 더욱 그런 것 같다. 이들을 바라보는 나는 꼰대가 된다. 그들이 누르는 찰칵에 내가 안 어울리는 피사체임에 틀림이 없다. 화려한 그림을 어둡게 하는 그림자임에 틀림이 없다.
또 다른 경험은 그들의 눈빛이다. 늦게 도착한 우리는 유심을 공항에서 교체하지 못했다. 그래서 여행 다음날 오전에는 유심을 사는 것이 급선무였다. 그런데 유심을 교체하는 통신사 가게를 찾기 힘들었다. 길을 찾아 헤매다가 한국인 청년들을 봤다. 반가웠다. 다가가 길을 물었다. 그런데 그들의 표정은 무심했다. 반사적으로 모든 것을 거부하는 분위기를 느꼈다. 그들은 공항에서 유심을 이미 교체한 후였기 때문에, 조금만 시간을 내면 자신들의 핸드폰에서 장소를 검색할 수 있었다. 결국 러시아 사람 덕분에 우리는 상점을 찾아 유심을 교체할 수 있었다. 길 찾기에서만 그들과 대면한 것은 아니었다. 식당에서 줄을 서고 대기할 때에도 그들은 냉담했다. 이렇게 느낀 내가 과도하게 예민한 것일까?
이들을 보면서 지난겨울에 갔던 대만여행에서 만난 대만 청년들이 생각났다. 그들에게서도 이런 느낌을 가진 적이 있다. 청년들은 친절하지 않았다. 오히려 중년이 친절했다. 한국인에게서만 느끼는 위화감이 아니었다. 왜 이들에게서 중년층인 나는 써늘함을 느낄까?
이들은 대단히 여행목적에 충실하다. 그들은 그들과 그들의 여행 판타지를 충족하는 요소 외에는 접근을 불허하는 듯 했다. 어쩌면 이들은 내가 실제라고 믿는 현실 공간보다 더 중요한 공간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들은 IT, SNS로 자신을 표현하는 세대이다. 이들에게 SNS가 가상공간이 아니라 실제공간이며 자기 영역이다. SNS에서 자기를 표현하고 소통한다. SNS 밖의 세상은 철저히 대상화되고, 그들은 세상의 관찰자일 뿐이다. SNS로 담을 내용인가를 판단하는 관찰자이다. 동물원을 구경하는 것과 같다. 동물원의 동물을 관찰할 뿐이다. 그 동물이 자신에게 말을 건다면 재미있는 일일 수 있지만 이도 자신이 원할 때 말을 거는 것이어야 한다.
이들은 정말 가까운 지인이 아니면, 눈을 마주치면서 말을 하지 않는다. 이는 10대를 볼 때도 마찬가지이다. 1020대들은 핸드폰에 집중을 하는 버릇이 있어서인지, 말을 걸면 듣지만 눈은 계속 다른 곳을 본다. 사실 20대는 핸드폰 세대이다. 10대부터 핸드폰을 가지고 게임을 하고, 사람의 눈을 쳐다보는 것이 익숙하지 않다. 친구들과 있을 때도 대화를 핸드폰을 보면서 한다.
이런 세대에게 내가 낯설음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어쩌면 일상에서 이 세대와 접촉이 거의 없는 난 작은 충격을 받았다. 내가 그들의 부드러운 목소리를 듣는 것은 시장에서이다. 아직 전문성이 인정되지 못한 연령의 그들은 주로 친절을 파는 시장에 임노동자로 있다. 그 친절노동이 버거워서인지, 노동시장이 아닌 곳에서는 친절한 마스크를 버리고, 무심한 표정으로 그들 내부의 편안을 찾는지 모른다.
어른에게 친절해야 한다는 교육을 받고 그렇게 살아온 나는 어쩌면 현재의 20대보다 편안한 청춘이었는지 모른다. 내 친절을 돈으로 사고파는 시장에서 고달프게 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날 나타내는 방식이 직접적으로 사람과 얼굴을 마주보고 해야 하는 세대였기 때문에 대면하는 것에 조금 더 익숙하고, 조심스러웠는지 모른다.
여행을 마친 후 난 생각한다. IT 시대가 가져온 무서운 문화격변을 다시 실감한다. 그러면서 나도 SNS를 통한 소통에 익숙해져 가는 나를 본다. 장점이든 단점이든 20대와의 다름을 인정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