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랑을 꿈꾸는 여행일기 ③

연해주, 가까이 할 수 없는 슬픔의 땅

by roads

나이가 들어서인지 여행을 가면 몸이 편한 곳이 좋다. 한적한 편을 찾지 않아도 자기 공간을 확보하면서 즐길 수 있는 곳을 좋아한다. 그런 장소 중 하나가 박물관과 미술관이다. 예전과 달리 전시관을 찾는 시간이 늘었다. 이 곳들은 몸 고생하지 않고, 한 자리에서 많은 호기심을 채울 수 있어서 좋다. 또한 호기심을 촉발하여 갑자기 뇌가 건강해지는 환상을 갖기도 한다.


특히나 한국과 연관된 것이 있으면 관심이 높아진다. 박물관, 미술관 그리고 역사적 서사가 풍부한 장소를 찾는 여행은 이야기를 찾으려는 일상의 연장이라 할 수 있다. 우리와 조금이라도 관련이 있으면 가서 봐야 한다는 강박증이 작동한다.


역사적 장소라고 하면 정사만 들을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카더라’ 라는 이야기도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이런 장소가 기대보다 빈약하거나, 과대하게 부풀려지는 상황을 종종 목격하기도 하지만, 방문을 안 하는 것보다 방문을 하여 후회를 하는 편을 택한다.


블라디보스토크를 연해주라고 부를 때, 블라디보스토크는 러시아의 이국적 도시가 아니라 아득한 아픔이 상상되는 곳이 된다. 연해주는 우리 민족의 비극을 가물가물 연상시킨다. 연해주는 조선 유민의 역사가 배어있는 곳이다. 조선말과 일제강점기의 민초들이 쓰러지며 도착하여 온 몸으로 살아온 곳이다. 고려인이 처음 터를 잡은 곳은 개척리였다. 개척리는 지금은 해양공원으로 향하는 번화한 상가로 변해있다. 1911년경 콜레라 창궐로 개척리 고려인들은 지금의 신한촌으로 이주했다고 한다.


고려인들은 생존을 넘어서 더 큰 인간으로서 열정을 품고, 조선의 독립과 러시아 사회주의 혁명에 열정적으로 참여했다. 그 열정은 보상을 받지 못하고, 1937년에는 스탈린의 명령으로 연해주에 거주중이던 모든 고려인들을 열차에 태워 카자흐스탄 혹은 우즈베키스탄 등으로 강제이주시켰다. 강제이주 사유는 어처구니없게도 고려인들과 일본 첩자들의 외모가 비슷하게 생겨 구분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1991년 소련연방이 해체되고, 중앙아시아 독립국들은 자국민 우대 정책이나 자국어 부흥 정책 등을 펼치고 타 민족들을 배척했는데, 배척의 대상에는 고려인들이 포함된다. 여기저기서 정당하지 못한 대우를 받으며 살아온 고려인이다.


그런데 이런 고려인 유민 이전에 연해주는 만주의 일부로서 청나라 소속이었고, 그 전에는 고구려 유민이 세운 발해가 있던 지역이다. 발해의 유적이 발굴되어 블라디보스토크 아르세녜프박물관에서 전시하고 있다. 블라디보스토크도 그 지역 역사로 발해를 인정하고 있다. 블라디보스토크는 베이징조약으로 러시아가 차지하기 전까지는 다양한 민족들이 살고 있던 곳이었다. 슬라브족보다 더 먼저 이곳에서 생활한 사람 중에는 발해인, 고려인이 있었다. 고대에서부터 근대까지 연해주는 영욕의 유민역사를 간직한 곳이다.


고려인은 몇 대를 살아도 정치적 상황에 따라 지위가 달라지는 소수민족이다. 한반도의 남·북한 정부가 그들을 보호하지도 않았다. 조국에서 살기 힘들어서 여기에 왔고, 이 지역에 왔으므로 버텨야 했고, 떠날 수 없어서 박해를 받으며 살아야 했던 사람들, 그들에게 조국은 어떤 의미를 지녔을까.


박물관과 신한촌를 둘러보면서, 연해주라는 지역명이 전해주는 습한 공기를 느낀다. 우리와 동떨어진 머나먼

지역이 아니라 아득하지만 내 피부를 간질이는 바람을 맞는다. 고려인에게 연해주란 생명의 터전이며, 동시에 질곡의 터전이라는 쓸쓸한 느낌을 버릴 수 없었다.


현재, 신한촌를 지키는 것은 고려인의 생활보다는 기념탑이다. 신한촌이란 이름이 무색하게 그 지역에는 한글 간판 하나 발견하기 힘들었다. 남한인, 북한인, 해외동포로 각각 상징되는 세 개의 비석으로 이루어진 기념탑이 있을 뿐이다. 기념탑이 아무리 장대하더라도, 사람의 활력이 없는 곳 에서는 그 탑이 보여주는 것은 비극인 것 같다. 주변과 섞이지 않고 웃자란 듯한 탑은 이렇게라도 버티고 있다고 삶의 무거운 비명을 지르는 것 같다. 이 기념탑이 형해화된 상징이 아니라 역사적 의미를 가지려면 현재 살아가는 사람들의 호흡이 필요하다. 역사적 여행으로 들르는 여행객이 아니라, 현지와 고려인이 어울리는 곳이 되었으면 하는 기원을 해본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유랑을 꿈꾸는 여행일기 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