뽕잎을 따는 여자들
한겨레 신문에 마이클 부스의 <먹는 인류>라는 재미있는 연재칼럼이 있다. 거기서 보면 2000년대 초에 유럽과 미국에서 먹거리 채집이 유행이었던 적이 있었다. 마치 주말의 야외활동, 취미활동처럼 유행이 되었단다. 사실 채집 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먹거리 식물에 대해서 잘 알아야 한다. 채집 활동보다 먹거리 식물을 알아가고, 그런 식물의 성장을 관찰하는 것이 재미가 있겠구나 싶다.
나는 텃밭 밖의 먹거리 식물을 잘 아는 고수들을 볼 때마다 부럽다. 나는 기껏해야 쑥 정도만을 알 뿐이다. 오늘 우체국에 갔다 집으로 돌아오다가 길에서 두 분을 만났다. 따뜻한 오전의 햇살을 받으며 한가하게 내 앞에서 걸어가던 두 분이 걸음을 멈추고 길가에 늘어져 있는 나무의 무성한 잎을 따는 것이었다. 일부러 채집 장비를 가지고 온 것도 아니었다. 잎을 따서 어깨에 걸친 가방에 넣고 있었다. 내가 무슨 나무냐 하니 뽕잎이란다. 오디가 열렸을 때는 그 열매로 나도 그 나무가 뽕나무라는 것을 구분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열매 없이 초록색 잎만 무성하니 모르겠다. 두분이 잎을 따는 솜씨가 익숙해보인다.
어깨에 걸친 가방에 넣으며, 이것으로 뽕잎 밥을 짓는 법을 상세히 이야기해준다. 우선 뽕잎을 살짝 데친다. 그리고 물을 꼭 짠 후에 참기를을 넣고 살짝 프라이팬에서 데친다. 그다음 냄비밥을 할 때, 쌀이 부글부글 끓어올랐을 때 불을 낮춘 후 밥 위에 기름에서 데친 뽕잎을 풀어서 올리고 밥의 뜸을 들이면 된단다. 그러면 원주 시내에서 11,000원이나 받는 밥이 된다고 한다.
참 좋겠다. 뽕잎으로 요리할 수 있어서가 아니라, 내게는 그저 잎이 넓은 나무일 뿐인데 무슨 나무인지 알아보는 눈이 부럽다. 봄에는 종종 이런 분을 볼 수 있다. 강변에서 산책하다 그 자리에서 쪼그리고 앉아서 나물을 캐는 분들을 본다. 식물의 뿌리를 캘 장비도 없는데, 그냥 길에서 작은 나무가지를 꼬챙이로 만들어서, 뿌리 주변에 흙을 파서 뿌리채 들어올리는 솜씨를 보여준다. 어릴 때부터 이렇게 산에서 들에서 먹거리를 채집하던 경험이 있어서 가능한 일이다. 이들은 시장에 가면 흔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을 알지만 지나치질 못한다. 한끼 식사 정도는 채집을 하고는 일어선다.
난 종종 문맹 같다. 산과 들에 핀 꽃과 나무 그리고 먹거리를 구분하지 못하는 문맹이다. 매년 봄이 오지만 내게는 그 많은 이름을 모르고, 그 다름을 모르니 봄이 하나의 색으로 한가지 모양으로 왔다가 사라지고 있다. 마치 내 삶의 한 곳이 움푹 파인 것 같다. 어렸을 때 경험하지 못한 시간들이 지금도 남아 밋밋하게 풀을 본다. 저들처럼 생동감있게 각각의 생명을 반기질 못한다. 그런데 시골에서 살았어도 남자들이 들과 산에서 나물을 캐는 남자를 본 적이 없다. 어쩌면 남자들이 나처럼 문맹이어서가 아니라 그저 관심이 없는 것이다. 어쩌면 좋은 봄기운을 무시하는 듯하다.
나도 내일 뽕나무에 가서 뽕잎을 몇장 뜯어올까한다. 그래서 실패할 지 모르지만 뽕잎 밥을 지어볼까. 그런 경험이 내 눈에 뽕잎을 오래 보고 내년 봄에는 그 잎을 보면 기억할 수 있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