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대화가 순항을 거듭하는 듯 보이자, 모두 평양냉면, 평양냉면 한다. 나도 냉면을 무척 좋아하는데, 엄마 덕분이다. 내가 냉면을 처음 맛본 곳은 남대문시장에 있던 함흥냉면집이었다. 아마도 내가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이었던 것 같다. 엄마는 동네에서 작은 식당을 했었는데, 거의 매일 남대문 시장으로 식재료를 사러 갔었다. 날 시장에 데리고 가는 경우는 드물었지만, 날 데려갈 때는 항상 냉면집으로 갔다.
함흥냉면집은 남대문 시장 안, 2층에 있었다. 지붕이 낮았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2층이 가건물이었던 것 같다. 좁은 계단을 따라 2층 식당에 올라가서, 엄마와 나는 창가 구석진 곳에 앉았는데, 창 너머로 남대문 시장, 천막 친 노점상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그런 시장을 내려다 보는 것이 즐거운 일이었다.
그 식당에 아이는 나뿐이었는데, 아침 시간이라 그런지, 아이들 입맛에 맞는 음식이 아니어서인지 어른들만 보였다. 난 냉면보다는 보리차 대신 나오는 육수가 맛있었다. 엄마가 육수가 담긴 조금간장을 넣어 휘저어 주면 그걸 먹었다. 그 냉면집이 나에게는 첫 외식장소였다.
나중에 생각하니 남대문에서 냉면을 사 잡수는 것이 엄마에게는 사치였던 것 같다. 엄마가 아버지와 돈 문제로 싸우는 소리를 얼핏 들은 적이 있는데, 그 때 엄마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내가 돈을 쓰면 얼마나 쓰겠냐? 냉면 한 그릇 사 먹는거다.”
그런데 엄마는 냉면 말고 어떤 음식은 무얼 좋아했을까? 여느 집처럼 우리 집 식탁 메뉴는 아버지의 기호에 따라 구성되었다. 엄마도 당연히 그 음식들을 좋아했으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커서 생각하니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겠다 싶다.
아버지는 이북 실향민이었고, 엄마는 서울 태생이었다. 어릴 때 기억나는 음식은 겨울에 먹는 김치 국수였다. 우리는 김장을 심심하게 했다. 심심하게 하면 배추에서 물이 많이 새어나와서 김칫국물이 많이 생긴다. 겨울에 이 김치 국물을 떠서 국수를 말아먹었는데, 살얼음이 동동 뜬 국수는 달달했다. 음식이 차가워서 한 입 넣으면 온 몸이 짜릿해졌다. 겨울 별미의 또 다른 하나는 가자미식해다. 엄마는 매년 가자미식해를 만들어서 식탁에 올리곤 했다. 삭아서 씹히는 가자미 맛은 일품이었다. 나는 밥 알맹이 동동 달달한 식혜보다 가자미식해를 먼저 알았던 것 같다.
여름에는 개고기를 사오셔서 요리를 했다. 양념을 하고, 탕을 만들었다. 개고기를 하는 날은 집이 시글법적했다. 음식이 준비되기 전부터 아버지 친구분들이 와서 술자리를 만들곤 했다. 그런 흥청망청한 분위기에 나까지 흥이 나곤 했다. 그런데 정작 우리 형제에게 엄마는 개고기 한 점도 주지 않았다. 엄마도 맛을 보지 않았다. 비싸서가 아니라 개고기를 먹는 것을 사람으로서 못할 짓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자신이 싫어하는 음식을 여름마다, 한 번도 아닌 여러 번 엄마는 해야 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엄마는 김장도 힘들다고 하지 않으셨다. 사실 시장에서 김치를 사는 것이 김장하는 노동력과 재료비에 비교하여 합리적이었다. 나도 밖의 일이 많아져서 집에서 밥 먹는 회수가 줄어들고 있었다. 겨울에 먹는 김치 국수, 가자미 식해는 이제 추억의 음식이 되어버렸다.
엄마는 변함없이 냉면을 좋아하셨다. 예전처럼 고기국물을 우려낸 육수가 아닌 냉면이어도 좋아하셨다. 동네에 냉면집이 생겼다. 이 집 육수는 인공감미료로 만든 냉면이었다. 육수보다 양념장이 맛있는 집이었다. 점심에 그 집에 가서 냉면을 먹고, 비닐봉투에 한 끼 냉면을 사와서 냉장고에 넣어 저녁으로 잡수시기도 했다. 이가 빠진 엄마는 냉면을 잘게 잘라서 술술 마시곤 했다.
내가 MSG 냉면 먹지 말라고 잔소리를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엄마가 거동이 불편해지고 난 후, 나는 엄마의 성화에 못 이겨 냉면집으로 냉면을 사러 가기도 했다. 그러면 주인 아줌마가 엄마를 기억하고 별도로 면을 삶아주셨다. 무르게 삶아 뚝뚝 잘 끊어지게 했다. 어느 날은 엄마와 함께 그 가게 냉면을 먹기도 했다. 요즘 유행하는 평양냉면의 슴슴한 맛이 아닌, 혀에 오래 남는 착착 달라붙는 맛이었다.
엄마가 왜 냉면을 좋아했는지 돌이켜 본다. 엄마는 사적 영역, 공적 영역 모두에서 음식을 만들었다. 그것은 자신은 위한 것이 아니라 남을 위한 것이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이 아닌 남의 기호에 맞춘 음식을 만드는 일을 했다. 엄마는 남으로부터 대접을 받는 것도 부담스러워 했다. 결혼한 딸네 집에 가서도 하루 밤을 지내면 오래 있는 것이었다. 하루 밤 자는 것도 부담스러워 했다.
엄마는 냉면을 좋아하셨다. 엄격하게 말하면 엄마는 직접 요리하지 않고 ‘사서’ 먹을 수 있어서 좋아하신 것 같다. 냉면은 특별하면서 자신의 분수에 맞게 사먹을 수 있는, 자신의 손이 가지 않는 음식이어서 좋아하지 않았을까. 부담되지 않으면서, 남으로부터 대접받을 수 있는 음식 그것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내가 차린 음식은 엄마에게 어떤 느낌이었을까. 편안했을까. -2018.5.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