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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ads Oct 09. 2020

1박 2일 소소한 여행


낯선 방문객들을 기다리며     


아주 오랜만에 내 집으로 누군가 온단다. 잠시 있는 것도 아니고 일박을 한단다. 그것도 세 명이서. 나는 외로워서 폭발 직전이었는데, 막상 누가 온다니 부담이 된다. 이 감정은 무엇일까? 그저 내가 앓고 있는 고립감을 상쇄하는 시간은,  잠시 몇 시간 사람을 만나는 정도면 충분했던가. 아니면 내 집으로 타인들이 들어온다는 것이 부담이 되었나. 어쨌든 오랜만에 얼굴을 보니 좋기도 하자만, 살짝 귀찮음이 마음 한편에 생겼다.      


우선 세 사람이 오니 이부자리가 걱정이다. 몇 년 동안 사용하지 않았던 여름 이불을 꺼냈다. 눅눅한 냄새가 진동했다. 아마도 엄마가 쓴 이후로 꺼내지 않은 듯하다. 얇은 이불이니 다행이다. 세탁기에 세 번 나뉘어 넣어서 세탁을 했다. 세탁 후 햇빛에 건조시간을 감안하여 3시간 정도 간격을 두고 세탁을 했다. 다행히 햇빛이 강해서 잘 말랐다. 요는 두꺼워 빨기가 힘들어서, 내가 쓰던 매트를 주기로 했다. 매트의 커버만 빨았다. 쓰지 않던 배게도 내놓아서 햇빛에 말렸다. 화장실 청소도 했다. 화장실의 냄새를 없애기만 하면 된다. 냄새 제거를 위해 락스를 풀어서 뿌렸다. 방청소를 했다. 이삼일 만에 하는 청소를 며칠 동안 매일 했다. 그리고 주방 찬장을 보았다. 식기는 4개 정도이니 충분하다.      


청소를 하면서 생각하니, 내 집에 여러 명이 와서 자고 간 적이 없는 것 같다. 참으로 정없이 살았다. 


방문 첫날 


방문하는 친구 중 한명이 수업이 있어서 늦게 서울에서 출발한다고 한다. 그래서 방문일 아침, 인디언 차를 끓여서 냉장고에 넣고, 정수기에서 큰 병에 물을 담아 냉동고에 넣었다. 그리고 슈퍼마켓에 가서 수박 한통을 사왔다. 수박을 깍둑썰기를 하여 용기에 담아 냉장 보관했다. 오늘 일박하고 내일 오전에는 아침에 가볍게 아침식사가 필요할 듯하여 누룽지를 준비했다. 라면처럼 끓기는 누룽지라고 한다. 며칠 전 담가두었던 김치가 너무 시었고 간이 쎈 듯하다. 그래서 작은 배추 한통을 소금에 절었다. 소금에 절인 배추를 누룽지와 같이 내놓을 예정이다. 마음만 부담스럽고 준비한 것이 별로 없다. 어차피 본격적인 식사는 맛집에 가서 할 계획이다.      


A, B, C 세 사람은 대학원 후배이다. A를 제외하면 두 명은 얼굴은 본 적이 있지만 말을 섞여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대학원의 특성상 많은 시간을 같이 하지 않아도 쉽게 공감대를 가지니 별 문제는 없다. 나도 다양한 사람을 만나다니 기대된다. B, C는 A와 친한 사이인가보다. A가 움직이니 같이 바람 쇠러 오는 것이다. A와 만난 지 10년 만이다. 그녀가 중국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러 떠난지가 벌써 10년이 지났구나.       


밤이 돼서야 그들이 왔다. 2시간 정도 집에서 술자리를 했다. 나는 오랜만에 맥주 반 컵을 했다. 여름밤에 찬 맥주가 주는 즐거움을 나는 아직도 알지 못한다. 그들은 나의 최근 생활을 궁금해 한다. 특히 내 건강문제. 나도 이제 여유롭게 대답할 수 있어 다행이다. 내가 그들에게 건강해 보여서 좋다. 그들 중 한명은 현재 부모가 한 분이 돌아가셔서 유산문제로 다툼이 있는 것 같다. 나도 몇 년 전 일이 생각났다. 모두 비슷하다. 모두 비혼이며 나이가 청년을 지나니 모두 재산에 민감해진다. 생존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여성이 가진 것 없이 혼자 살아간다는 것은 매일매일 두려움에 휩싸이는 일이다. 그러니 자신들이, 특히 어머니가 겪은 고생이 자신의 고생이 되고, 어머니를 위한 이름으로 자신의 생존을 지켜나간다. 난 너무 스트레스가 심했던 것 같은데 이들도 그러리라. 그런데 나보다 더 건강하게 잘 견디는 것 같다.      

같이 여행을 많이 해 봤는지 타인에 대한 배려가 눈에 띈다. 모든 것을 준비하고 방문했다. 아마도 대학원 동기들의 집을 이렇게 방문을 많이 했던 모양이다.      


방문 둘째 날     


아침, 카톡으로 생일축하 메시지가 와있다. 조카가 축하 기프트 바우처를 어제 밤에 보낸 것이다. 생일이라 특별한 이벤트가 없이 지낸 지 오래됐다. 올해는 이렇게 사람이 와 있으니 다행이다. 이들은 오늘이 내 생일인지 모른다.      


10시경에 모두 둘러 앉아 내가 끓인 누룽지를 본다. 한명만 입에 넣었다. 다른 두 명은 별로인가보다. 실패다. 나도 라면 스프맛 누룽지가 역겨웠다. 곁들인 김치도 이상했나보다. 이렇게 모두에게 거절당한 것보니 내 솜씨가 정말 별로임에 틀림이 없다.      


점심으로 채림의 정원을 갔다. 잘 꾸며진 정원과 정원 한편에 놓인 두 마리 개에 모두 흡족해했다. 사모예드 두 마리는 펜스 안에 있는데, 사람이 오면 다가와서 스킨십을 기다린다. 세 명이 달라 붙어서 사모예드 눈주변에 붙은 진드기를 떼어 주었다. 전번에 올 때는 몰랐는데, 넝쿨이 식당의 벽을 감싸고 있었다. 창과 문을 뺀 삼면의 벽을 끼고 넝쿨이 잘 자랐다. 정원이 없어도 넝쿨만으로 훌륭했다. 하루에 3-4시간만 가게를 오픈하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음식 준비보다 정원 가꾸는 것이 더 시간이 많이 들 것 같다. 모두 만족하게 먹고 즐겨 다행이다. 내가 시골로 이주하여 겪은 에피소드를 이야기하니 모두 즐거워한다. 내가 너무 시골 생활을 희화했나.       


점심을 먹고 미술관 자작나무숲으로 갔다. 이만 원의 입장료가 부담이 되는 가격이다. 이곳에서 무료로 제공하는 음료수를 먹으면서 드라마에 대해서 수다를 나누었다. 내가 드라마를 제일 많이 본 사람이었다. 역시 백수라. 전시장은 두 개가 있었는데 하나는 유화, 다른 하나는 사진이었다. 나는 별 흥미를 느끼지 못해서 잠깐 보고 나왔다. 나는 자작나무숲은 다시 오지 않아도 될 듯하다. 자작나무숲에 있는데 카톡으로 횡성독서모임 친구들이 생일축하 메시지를 보내왔다. 난 지나가는 말처럼 내 생일이야라고 A에게 말했다.      


호수길 5코스로 갔다. 어제 저녁과 오늘 강행군이다. 날씨가 흐려서 걷기에 좋은 날씨다. 모두 1시간 거리를 잘 걸었다. 여행객에게는 모두 흡족해하는 코스다. 나도 처음 왔을 때 그랬다. 산책길로 길은 평탄하고, 볼거리는 다양해서 좋다. 코스를 마치고 나오는 데 길가의 농장에 상근이로 유명한 페니키즈 개가 우리 쪽을 향해 묶여 있었다. 상당히 큰 놈이었다. 네명이 일제히 그곳으로 달려가 펜스에 기대어 페니키즈를 향해 소리쳤다. 페니키즈도 사람이 반가운 듯 입을 벌렸다. 혀가 턱밑으로 길게 늘어졌다. 옆에 있는 골든 리트리버가 작아보였다.      


저녁식사를 위해서 태기산 입구에 있는 둔내면으로 갔다. 면이 이렇게 큰지 몰랐다. 강릉으로 가는 길에 지나가면서 본 둔내면이 제법 크다는 생각은 했었다. 안으로 들어오니 작은 상점들이 줄을 이어서 빽빽하다. 둔내면에 유명한 막국수집으로 갔다. 3대째 내려온다는 막국수집의 막국수 맛은 심심했다. 그런데 내놓은 반찬이 막국수보다 더 맛있었다. 특히 백김치맛이 특출났다. 고명으로 넣은 빨간 고추만 눈에 띄고 다른 양념은 보이지 않는다. 국물맛이 담백했다. 배추도 적당히 익었다.      


마지막으로 태기산 정상으로 향했다. 내가 일전에 혼자 차를 몰고 갔다가 중간에 포기하고 내려간 코스다. 그 때 나는 방전 후 충전하고 한참 달려야 할 필요성이 있어서 이곳까지 왔었다. 그런데 태기산 중간에서 차를 돌렸다. 볼 것이 마땋히 없었고, 내차 모닝이 높이에 힘들어 했다. 꺼억꺼억 버거워하는 엔진소리가 났다.      


이번에 다시 가니 그때 포기한 것이 잘한 일이었다. 가파름은 차치하고, 점점 올라갈수록 비포장도로였다. 4륜구동 자동차이고 운전을 잘하는 B여서 다행이었다. 마주편 소형차가 오는 것을 보고 우리는 와하고 탄성을 낼 정도였다. 날씨가 흐려서 태기산 정상의 일몰은 기대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곳까지 무사히 올라왔다는 점이 감탄스러웠다. 올라오니 기온이 내려가 추웠다. 사진 몇 장을 찍고 급하게 내려왔다. 비록 일몰을 볼 수 없었지만 험난한 코스를 올라갔다는 뿌듯함이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 카페로 가기로 했다. 후배들이 간단히 생일축하를 해줄 모양이다. 횡성읍에 새로 생긴 카페, 브라우니 7을 용케 찾아냈다. 나도 처음 가보는 곳이다. 넓직한 공간에 창고형 카페이다. 그냥 시멘트 벽면을 그대로 살린 인테리어이다. 케익 등 디저트가 눈에 들어왔다. 6천원짜리 작은 초코 케익에 촛불을 하나 켰다. 후배들이 작은 목소리로 생일축하 노래를 불러주었다. 엎드려 절 받는 식으로 얻은 생일축하다. 내가 뻔뻔해지고 있나보다. 다음 해에는 내가 국민연금을 받는 해이니 그때 한턱 쏘겠다고 약속했다. 생일이야기는 잠시하고 현재 정치적 상황에 대한 말이 오고갔다.      


카페에서 나와 집쪽으로 돌아서는데 후배들이 봉투를 내밀었다. 급하게 셋이서 모은 돈이었다. 민망하면서도 좋았다. 누구한테 오랜만에 생일 축하를 받은 것이었다. 의례적인 선물이지만 그 의례를 잊은 지 오래였다. 내가 처음에 우려했던 만큼의 불편함도 없었고, 오히려 많은 것을 경험하고 받은 날이었다. 내가 그들에게 되갚을 날이 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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