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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ads Dec 02. 2020

소설 두번 읽기

"인간의 행동이나 말은 어김없이 이중으로 되어 있다. 행동에도 말에도 의식과 무의식이 함께 작동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말인 책도 그렇다. 책에는 현교(顯敎)와 밀교(密敎)가 얽혀 있다. 현교는 겉으로 드러난 주제이자 대중 교화용이며, 밀교는 숨어 있는 주제이자 권력층(엘리트)끼리만 공유하는 것이다. 첫 번째 독서에서는 대개 현교밖에 보이지 않고, 두 번째 독서를 할 때에야 비로소 밀교가 드러난다." -장정일의 독서일기


장정일이 말하는 대로 모든 책이 현교, 밀교라는 것이 있는지 모르겠다. 또한 작가가 이중적 주제를 갖고 의도적으로 작품을 쓰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독자 각각의 독서의 경험과 의식 수준에 따라서 주제 접근법은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첫번째 독서와 두번째 독서의 차이는 분명히 있는 것 같다. 두번째 독서는 책 속 주제, 플롯, 인물을 재발견하는 일일 수도 있고, 그 재료들을 가지고 독자가 다시 이야기를 구성하기도 한다.  


최근에 와서 내 기억력이 현저히 떨어져, 소설의 경우 단순한 플롯조차 되살리지 못한다. 오래전에 본 풍경처럼 그 분위기, 느낌만이 희미하게 남아있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시간이 허비되었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그 느낌, 감상이 순간적이나마 나에게 힘을 주었고, 위안이 되었다면 말이다. 그리고 다음 책, 다른 장르, 계통의 독서를 하는 데 내가 의식하지 못하지만 분명 밑걸음이 되었고, 될 것이다. 시험이나 강의, 세미나 등을 위한 독서가 아니라면 기억되지 않는다고 독서를 포기할 일은 아니다. 


아마도 독서의 결과가 희미해지는 현상은 갈수록 더 심해질 것이다.  그래서 예전보다 시간을 더 많이 투자하여 꼼꼼히 책을 읽으려 노력한다. 재독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다시 읽고 싶은 책이 있기도 하다. 그러나 어떤 책이든 다시 읽으면 처음 읽을 때와는 다르다. 그것은 내가 다르기 때문이다. 이미 한번 읽은 나는 처음 읽는 나와 다르다. 


오늘 나는 책을 읽는다. 예전에 읽었던 책들을 다시 본다. 두번 읽는 책은 책을 깊이 이해하게도 하지만, 그것을 읽어가는 과정의 나를 세밀하게 보게 만든다. 첫번째 읽기와 두번째 읽기에서 나의 차이,  독서 과정 상에서 내 현재적 고민을 더 깊게 들여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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