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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ads May 25. 2022

‘나의 결혼원정기’에서 놓친 이야기

결혼이주여성의 목소리

농업·농촌 살리기 일환으로 시작된 농촌총각 장가보내기     

오일장이 열리는 장터 가까이 위치한 현수막 걸이대, 걸이대에는 ‘베트남 여성 결혼 중개’라고 적힌 현수막이 펄럭이고 있다. 이러한 광고는 농촌을 보여주는 하나의 풍경이 된 지 오래다. 예전만큼 많이 볼 수는 없지만, 적지 않게 있다. 그래도 예전처럼 눈살을 찌푸리는 문구는 없어졌다. “000 여자는 도망가지 않습니다.” “000 숫처녀”라는 문구가 국제결혼에 대한 우리의 의식을 반영하듯 부끄럼 없이 걸려있었던 적도 있었다.   

   영화, 나의 결혼원정기


<나의 결혼원정기>라는 영화가 있다. 코미디 영화로 기억할 독자들이 많을 것이다. 결혼적령기(?)의 농촌 남성들이 자신의 삶터에서 결혼 상대를 찾기 힘들어, 고려인 여성을 찾아서 우즈베키스탄으로 간다는 이야기이다. 영화가 상영된 2005년 경은 농촌에서의 국제결혼 비중이 높아지고 있던 때였다. 지자체들로 경쟁하듯 ‘농촌총각 장가보내기’ 조례를 만들고, 국제결혼을 위한 여행경비를 지원했다. 농촌의 인구감소를 막고, 농업과 농촌을 살리기 위한 중요한 방안으로 국제결혼, 원정결혼이 의심의 여지 없이 받아들이고 있던 시기였다. 영화는 그런 한국 농촌 현실을 반영하고 있었다.      


농촌총각 보내기 운동은 80년대 말부터 시작되었고, 전국적인 이슈였다. 1991년 중앙일보 기사에 따르면, 이미 보수적인 여성단체들이 나서서 지원사업을 하고 있었다. “전국주부교실 중앙회는 연변으로 맞선 보러 가는 강원도 총각 11명의 여행경비마련을 위해 26∼28일 롯데백화점에서 우리농산물 직거래장을 운영한다.” 중국과 수교가 이루어지기 전임에도 불구하고, 농촌 미혼남성들은 선진문화기행이란 이름으로 국제결혼 여정을 떠났다.      


농촌 미혼남성들을 위한 국제결혼 추진과정은 민간업체인 국제결혼중개업체에 의해 전적으로 조직되고 진행되었다. 관에서 지원을 받아도, 또한 민간에서 후원을 받아도 개인이 부담해야 하는 비용은 상당했다. 때문에 원정결혼에 참가한 농민들은 원정결혼을 성공해야 하는 부담감을 갖게 된다. 결혼중개업체의 계획, 1주일 동안 또는 그 이하의 기간 동안 여러 차례 맞선을 보고, 결혼식을 하는 등 결혼과정은 일반 상식에서 많이 벗어나 있다. 전쟁을 치르듯이 진행되었다. 그럼에도 이러한 과정이 쉽게 받아들여졌다.       


농촌에서 줄어들고 있는 국제결혼 가정 

농촌총각 장가보내기라는 사업은 이렇게 전국에서 농촌과 농업을 살린다는 취지로 진행되었으나, 점차 그 수가 줄어들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05-2012년이 정점으로 국제결혼 건수가 3만건을 넘는다. 그러나 2013년부터는 2만건 이하로 줄어들었다. 이 통계는 한국인 남편과 외국인 아내와의 국제결혼이고, 농촌지역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그러나 농촌진흥청에 따르면 2004-2010년 한국 농림어업종사자들의 국제결혼 사례는 전체 농림어업종사자 결혼 건수의 27.4%-41.4%에 이른다. 이런 추세로 보면 전체 결혼 증감에는 농촌 국제결혼 건수가 많이 반영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농촌총각 장가보내기 사업의 추진으로 농촌 미혼남성이 상당부분 국제결혼이 이루어지고, 출산억제 정책과 이농의 여파로 결혼연령대의 남성이 줄어드니 국제결혼이 줄어들고 있는 것은 당연하다. 또한 국제결혼이 농촌이 아닌 도시로 옮겨지고 있다고 한다. 농촌국제결혼의 역사도 지자체 차원에서 관심을 갖기 시작한 때를 기점으로 할 때 20년에 이른다. 20세가 갓 지나서 한국에 온 여성에게 이제 자신들의 모국, 고향보다 한국 농촌이 더 익숙해진 제2의 고향이 되었고, 이들의 자녀들은 청소년, 성인이 되었다.      


농촌국제결혼 건수가 줄어든 배경에는 객관적 인구 변화도 있지만, 진행되었던, 또는 진행중인 국제결혼에 대한 높아진 비판적 의식도 있다. 처음부터 우려와 비판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우선, 매매혼이란 비난이다. 한국보다 경제적 조건이 열악한 나라의 여성을 상품화한다는 비판이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다. 이런 비판의 확대 속에서 ‘농촌총각 장가보내기’ 조례를 폐지하는 지자체가 늘고 있다. 


결혼이주여성의 목소리       

이제까지 농촌총각 장가보내기의 배경과 그 과정을 간략히 보았다. ‘농촌의 공동화를 막고, 농촌의 부계 중심의 가부장제 문화를 유지할 수 있는 수단으로 취급된, 이주자 여성이 어떤 위치에 있을지 짐작할 수 있다. 결혼이주여성들은 자신과 20년 정도의 나이 차가 있는 남자의 배우자일 뿐 아니라, 가부장제 가족의 며느리이고, 농업인이다. 그들의 배우자와 그 집은 경제취약층일 뿐만 아니라, 시골에서도 주변적 위치에 있다. 그러나 결혼이주여성들이 못사는 나라에서 왔다는 이유로 이런 환경조차 고마워해야 한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또한 가장 중요한 소통의 수단인 한국어의 어려움으로 결혼이주여성들은 고립화를 벗어나기 힘들다.      


그리고 가족뿐만 아니라 지역도 문화적 차이를 무시하고 무조건 일방적으로 한국문화에 적응할 것을 요구한다. 순혈주의 전통을 오염시키는 장본인, 결혼을 위장하여 들어오는 여성으로 취급하기도 한다. 한국에 도착하면 여성들이 도망간다는 소문이 그중 하나이다. 도망을 막는다는 이유로 남편은 여성이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여권을 압수하기도 한다. 또한 여성들이 체류자격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남편의 신원보증이 지속적으로 필요하다. 만약 한국인 남편이 신원 보증을 하지 않으면 결혼 이민자는 불법 체류자가 된다. 이렇게 결혼이주여성에 대한 억압에는 사회적 의식뿐만 아니라 법 제도도 큰 몫을 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문제는 가정이란 울타리 안으로 그치지 않는다. 울타리 밖에서 결혼이주여성의 대부분은 가장 취약한 임금 노동자층을 구성한다. 그러다보니 결혼이주여성들이 취약층, 희생자, 지원의 대상자로 재현되고 있다. 그러나 여성들이 객체로서의 피해자, 지원의 수혜자의 위치에만 있지는 않다. 최근에는 결혼이주자들이 다른 모습으로 성장하고 있다. 구조가 만든 차별, 폐해가 사라졌다는 의미가 아니라, 주체로서 피해를 고발하는 용기를 보이고, 자신들을 갇힌 존재로 만드는 구조와 상황을 적극적으로 해결하려는 모습을 만나는 것이 어렵지 않다.      


영화 <나의 결혼원정기>에서도 보여주듯이 결혼과정은 남성 중심이었다. 맞선의 상대인 여성들에 대한 내러티브는 없다. 이제 결혼이주자들 스스로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다. 그들이 말하는 ‘나의 결혼원정기(이야기)’에 우리가 주의를 기울여야 할 때이다.      


이러한 당사자들의 힘겨운 노력과 발전에 조응해야 할 정부는 어떠한가? 10일에 취임한 새 대통령은 후보시절  ‘여성가족부 폐지’를 공약화했었다. 한국 사회에서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는 후보는 여가부의 사업이 각 다른 부서에서 대체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런데 다문화가족 지원, 결혼이주자 사업의 주무부처는 여가부이다. 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지원이 복지부, 교육부 등으로 옮겨져, 개별로서 지원은 지속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결혼이주자에 대한 차별과 폭력, 다문화가정이 처한 구조적 문제는 어떻게 해결될 수 있을까? 이러한 문제들을 종합적으로 고민하는 부서가 필요한 것은 당연하다. 새 정부가 결혼이주여성들의 주체적 관점에서, 그들의 현주소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경주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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