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까미노 23. 폰테 데 리마 ~ 후비진스
• 구간 : 폰테 데 리마 Ponte de Lima ~ #후비진스 Rubiães
• 거리 : 18.6km
• 난이도 : ★★★★★
• 숙소 : 공립 알베르게 Albergue Escola Municipal (5유로)
하늘마저 클래식한 폰테 데 리마의 아침. 봄에 이미 무더운 #포르투갈에서 걷는 터라 해는 커녕 빛이 전혀 들지 않는 새벽에 출발하기 일쑤였는데 모처럼 아침햇살보다 늦게 출발한다. 전날 잠을 설쳤기 때문.
#포르토 이후 순례자 수가 증가하며 #알베르게 가 복작대기도 하는 데다 며칠 전부터 마주치던 이태리 할배 그룹과 같은 방을 배정받은 게 화근이었다. 예쁜 도시에 들떠 늦게까지 파티라도 즐긴 걸까. 사람들이 모두 잠든 조용한 방에 우당탕탕 들어와선 (보통 #알베르게취침시각 은 밤 10시) 취기 섞인 목소리로 농담하며 킥킥대더니 팬티차림으로 밤새 화장실을 들락날락거렸다.
일찍 출발하려고 출입문 바로 옆 침대를 택한 지라 밤새 그들의 출입과 소음에 더 시달렸고, 내내 선잠을 자다 새벽녘 잠깐 잠이 들었을까. 난데없이 요란한 불빛에 다시 깨어났다.
이런 상황;
그리하여 사람들이 신새벽에 다 깼다 ;
새벽 출발을 준비하는 할배들이 하나같이 헤드랜턴 환하게 밝히고 침대 주변에 떨어진 소지품이 있나 어찌나 열심히들 찾으시는지 ;; 새벽에 출발하려면 침낭을 제외한 모든 짐을 전날 미리 다 싸두어야 한다. 다음날 일어나 배낭과 침낭만 쏙 집어들고 나가 복도에서 침낭을 정리해 짐 꾸려 떠나는 걸로.
나이나 국적, 성별을 막론하고... 대개는 에티켓을 잘 지키지만 꼭 이런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내 눈에 띈 이런 류의 사람은 주로 할배들이었다. 유럽 할배들 - -;
이틀전 깜깜 새벽에 걷다 식겁한 기억에 선뜻 길을 나설 수 없었고, 조금만 더 자야지 하다가 결국 오랜만에 늦잠을 자고 나오니 이미 아침. 사방이 환하다. 전날 옆침대를 썼던 리암도 힘들었을 테지. 언제 나왔는지 이미 길가 벤치에 앉아 뜬금 독서중 ;; 깨어나면 출발하기 바쁜 아침에 독서라니. 이 역시 낯선 풍경 ㅋ
"안녕, 먼저 갈게." 손 흔들곤 먼저 출발.
폰테 데 리마 구도심을 벗어나는가 싶으면 곧 비포장도로다. 도시 바로 뒤로 펼쳐지는 정상 고도 405 미터 Portela Grande 산(직역하면 큰 창문 산?)을 넘는 게 이날 코스.
도심을 벗어나면 곧바로 산기슭으로 접어든다.
해가 떴지만 아직 채 7시가 되지 않은 시각. 동네 사람은 흔적도 없고, 순례자들과 소들만 깨어 있다.
오른쪽 구석, 올 블랙으로 차려입은 포르투갈 할머니.
전통 복장까진 아닐 테고 근대에 저렇게들 많이 입었던 걸까. 포르투갈 소도시, 산골 마을 등에 가까워지면
유독 검정 스웨터에 검정 스커트, 검정 신발, 검정 두건까지 쓴 할머니들을 심심찮게 만난다. 이날 처음 만나는 동네 주민 할머니에게 간단한 포르투갈어로 아침 인사를 하곤 지나친다.
바닥 포장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지 깨끗하고, 도로 폭이 넓어 신도신가 했더니...
새로 단장한 듯한 성당과 세메터리만 있는 작은 동네였다. 성모님과 가브리엘 대천사들이 묘지마다 굽어보고 있는 이곳...에선 죽음 이후도 평화로울까? 물론 이렇게 아름답고 평화로운 세메터리에도 동네 유지들이 먼저 입주하는 건 공공연한 사실.
폰테 데 리마로 들어오는 길도 예뻤지만, 나가는 길 역시 평화롭고 아름답다. 산기슭, 잔잔한 시골 마을이 이어지는데 황폐하거나 그저 바래지 않았다. 영국 중부를 기차로 지날 때 나지막한 구릉이 잔잔한 파도처럼 이어지던 풍경이 자동 연상된다.
그리고 이날 첫 바bar를 가리키는 안내판. 40m 가량 #까미노루트 에서 벗어나 있다고. 그냥 패스하려고 20미터 쯤 걷다가 산을 넘을 건데 그 전에 뭐라도 먹어야겠다 싶어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전전날 만났던, 베를린 대학에서 미술을 가르친다는 울리히가 주스 잔을 앞에 놓고 앉아 아침을 기다리고 있고, 전날 옆침대에서, 함께 이태리 할배들의 소란에 시달렸던 리암이 자릴 내어준다. 썬크림만 겨우 바른 맨 얼굴로, 막 떠오르는 강렬한 태양을을 곧장 받는 자리에 앉는 건 부담스럽지만 호의를 거절할 리가. 혼자 먹는 것보단 밥친구가 있는 편이 낫다. 사람들과 함께 밥 먹고 따로 걷기. 커피마시며 수다 떨다가도 걷는 건 또 혼자. 이번 포르투갈 까미노 내내 거의 유지되는 패턴. 나쁘지 않다.
후다닥 먹고, 후다닥 일어서서 다시 출발. 5월 포르투갈은 매우 덥지만 눈이 가장 호사하는 시즌이긴 하다.
1분쯤 멍하니 보고 섰던 들장미 위로 먹구름이 몰려오길래 다시 걸음을 재촉한다.
서정적인 포도밭 사잇길을 지나
자전거 순례자(아니고, 포르투갈 바이커로 짐작)를 먼저 보내고
불쑥 나타난 야스민과 다시 비포장도로를 함께 걷는다. 사람의 손길을 타지 않은 산기슭 밭옆길은 땅에서도 기분좋은 곡선이 울렁인다. 그저 평지나 직선으로 연결되는 오르막 또는 내리막 대신 오르막과 내리막이 기분좋게 교차하며 꿀렁이는 자연 지형. 오롯이 걷는 즐거움에 설렌다.
이날은 큰 산을 하나 넘어야해 #포르투갈구간 통틀어 가장 하드코어.
하지만 산 아래에 닿기 전까진 그저 걷는 즐거움을 만끽하며 걷기 딱 좋은 완만한 오르막이다.
3km 고작 걸어 다시 카페 겸 작은 마켓. 높은 산을 넘어야한다는 부담감 때문이었을까. 사람 손길이 닿는 마지막 장소라 생각하니 괜히 초조해 마켓에 들렀다. 막상 살 게 없어 그냥 나오긴 했지만.
(모자 뒤집어쓴 야스민을 보니, 비가 막 떨어지기 시작한 뒤였나보다.)
사진을 찍을 때만 해도 누군지 몰랐지만, 지금 보니 독일사람 산드라 부부와 그 친구 커플.
역시 걷다 멈춰서서 레인코트를 꺼내 뒤집어쓰느라 분주하다.
근처 초지에서 방목하는 양들이 경계를 넘지 않도록 폭이 좁은 강을 가로지르는 다리 입구를 막아두었다.
열쇠를 걸어두지 않아 사람들은 그냥 밀치고 지나가면 되지만.
A-3 고속도로를 떠받치는 교각 옆 비포장도로로 까미노는 이어진다.
촉촉하게 젖은 흙길에선 흙냄새, 그리고 산냄새가 훨씬 진하다.
금세 또 비가 걷혀 파란 하늘이 드러나는가 싶더니
다시 시작되는 빗방울. 4-5월에 포르투갈을 걸으면 이렇다. 비와 해가 수시로 오락가락하는 변덕스러운 날씨.
산기슭에선 더욱 그렇다.
이제 정말 산을 넘어야 할 시간이 왔구나.... 살짝 긴장되려던 찰나, 이곳에도 까페가 하나 있었다.
마침 빗방울이 더 거세지기도 했고, 정말 산 직전 까페라고 하니... 왠지 미지의 세계로 탐험 떠나기 전 마지막 문명의 영역이라는 생각에 괜히 커피 마시고, 화장실에도 들른다. 사람 맘은 다 고만고만한 듯 비좁은 테라스는 이미 만원이다. 물론 저때는 몰랐지만, 지금 보니 다 아는 얼굴들이 테라스를 차지하고 앉았다. ㅋ
앉은 사람들보다 먼저 출발해야겠어서 얼른 레인코트를 걸치고 나서는데 멀찍이서 다가오는 한 사람.
야스민이다.
10분쯤 함께 걸었을까. 마을이 끝나는 곳에서 다시 야스민을 먼저 보낸다.
갈림길을 앞두고 누군가 친절하게(!) 미리 그려둔 화살표.
'직진 아니야, 오른쪽길로 꺾어.' 라고 되어 있는데...
막상 가니 #까미노루트 는 왼쪽 길. -_-;
까미노를 함께 걷는 순례자들, 그리고 길에서 만나는 주민들 십중팔구는 좋은 사람들이다. 그런데 간혹 장난을 치거나 정말 더러는 골탕을 먹이거나 나쁜 의도를 내보이기도 한다.
3년쯤 전이었을까. 가장 많은 사람들이 걷는 #프랑스순례길 에서 실종, 사망 사건이 있었다. 까미노를 걷다 보면 비슷한 날짜에 출발해 비슷한 스케줄로 걷는 사람들끼리 모종의 패밀리가 형성된다. 물론 전 구간을 함께 걷지는 않는다. 일부 함께 걷다 일부 혼자 걸으며 하루의 끝에 만날 지역과 알베르게를 정해 다시 만나게 되는데 #아스토르가 를 막 벗어난 여자가 다음 지역 알베르게에 도착하지 않은 거다.
늦겨울, 오락가락하는 기후에 혹시 길이라도 잃었을까. 함께 걷던 일행이 그녀를 기다리다 경찰에 신고했는데 며칠 뒤 까미노구간 인근에서 변사체로 발견된 것. 알고보니 동네에 혼자 살던 스페인 남자가 노란화살표를 자기 집 방향으로 돌려두었고, 충실하게 화살표를 좇으며 걷던 여자가 결국 사고를 당했다. 그 스페인 남자의 정신이 온전치 않았다고는 하지만... 순례자가 늘고 까미노 규모가 커지며 이런 류의 사고가 많아진 건 맞다. 혼자 걷는 여성 순례자가 위험에 노출되는 가능성이 더 높은 것도 사실이고. ;
그래도 아직은 포르투갈이 스페인보다 때가 덜 묻어 그런지, 정말 가벼운 장난이 목적이었는지 그리 혼란스럽지 않게 제 궤도를 찾아 걷는다.
임도를 벗어나자마자 곧바로 산의 속살이 드러나는 길. 비 내린 직후라 미끄럽고, 이제 산 정상을 넘어야해 급경사가 예상된다.
오르고,
또 오르고,
(중간에 콧물 훌쩍임 죄송;)
잠시 평진가 싶었는데
다시 오르길 반복하며 정신없이 무조건 오르기만 하다보니
드디어... 가까이 보이는 정상 언저리.
이미 정상엔 먼저 도착한 이들이 평화롭게 앉아 맥주와 커피를 마시고 있고...
한국이건 포르투갈이건 산정상에 푸드트럭 끌고와 생명의 음식을 나누시는 분들, 참 소중하다 ; ㅋ
가격은 당연히 비싸고.
잠시 앉아 맥주 한 병 마시는 새 땀이 식었다. 언제 비가 그쳤는지 하늘도 파랗게 갰고.
니나.
혼자 6개월간 태국을 떠돌다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곧바로 포르투갈로 와 까미노를 걷기 시작했다는 독일 아이. 포르투갈에서 만난 중 가장 미녀였었는데, 사진을 왜 이 따위로 찍은 걸까;
내리막에선 늘 자신감 뿜뿜. 같이 가자고 잡는 니나를 뒤에 두고, 안녕, 이따봐. 하며 달려 내려간다. 대신 내 스틱을 니나에게 안겨주고. 이날은 오롯이 혼자 걷고 싶은 날...이었나보다.
사진을 그렇게 찍어대도 쳐다보는 건 아기양들 뿐.
대개는 내리막이지만 가끔은 다시 나지막한 오르막내리막을 반복하다보니
이날 종착지, 후비진스.
마을로 접어들어 외로 길게 뻗은 돌길을 타박타박 걷다 보면
알베르게를 알리는 표지.
포르투갈 구간에서 가장 높은 산을 넘은 날에 묵게 되는 숙소가 이런 풍경이라니. 하루를 보상받는 기분이다.
알베르게 간판 아래로 열린 부엌 문을 통과하면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아래, 소박한 리셉션이 있고
알베르게 바로 옆에 작은 가게가 있지만 매우 작은 편의점 수준. 저녁을 해먹을 요량이면 800m 가량 떨어진 다음 마을까지 걸어가야 한다. 다음날 걷다가 알게된 거지만 그 마을 역시 까미노 구간에 포함된다.
침대를 배정받고, 씻고, 짐을 한바탕 다 꺼내 펼쳐 영역을 표시한 다음 저 끝, 노에미를 기다린다.
산을 넘느라 나름 힘들었는지 제법 크게 솟은 #물집 을 해결해주기로.
실을 꿴 바늘끝을 가스불에 달궈
이렇게 물집을 관통하면 연결된 실을 타고 물이 흘러나온다. 어릴 때부터 한엄살하던 나는... 바늘 쥔 노에미 손길을 몇 번이나 피하며 움찔했고, 그때마다 깔깔거리며 크게 비웃거나 아프지 않을 거라고 확신에 찬 눈빛을 진하게 발사하기를 되풀이하던 노에미는 결국 한번 더 바늘을 달궈야했다. ㅋ
* #물집 치료법은 아래 링크를 참고하세요.
잠들기 전, #구글맵 을 다시 돌려본다. 내가 있는 곳이 어디 쯤인지 좌표 확인 겸.
다음날이면 포르투갈 #국경 에 닿을 예정. 국경선이 부쩍 가까이에 있다. 처음 여정을 시작했던 #리스본 과, 최종 목적지가 될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 위치까지 한번에 찍고 보니 아둥바둥 걸어온 하루하루가 모여 깨나 먼 곳에 와 있기도 하고. 성취감에 앞서 조바심이 먼저 생기는 건 또 왤까.
#국경을하루앞둔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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