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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adtripper Aug 03. 2016

권태와 사랑 사이

후미진 지중해에서의 어느 점심



더이상 어떻게 권태로울 수 있을까 싶을만치 권태로운 눈빛을 보았다. 


#지중해 에서 밀려온 물결이 찰싹이는 바다에서, 

와이파이 따위 잡으러 해변을 저버리고 바에 앉아 

페북과 인스타그램과 와츠앱을 빠르게 왔다갔다하려니 

바다와 내 눈 사이에 정면으로 보이는 테이블에서 식사중인 부부가 눈에 들어온다.

소처럼 천천히 음식을 삼키고, 

천천히 포크와 나이프를 움직여 구운 생선을 썰고, 

천천히 빵을 뜯고, 

더 천천히 와인잔을 집어 한모금 마시기까지 

천 년은 필요하다싶게 천천히 식사하던 부부는, 

그 천 년동안 한번도 대화를 나누거나 눈빛을 마주치지 않았다.


예쁜 바다에서, 

아직 뜨거운 9월의 태양이 눈부시게 쏟아지는 해변가 레스토랑에서, 

젊은 부부와 중년 커플과 십대 아이들과 단 한 명 있던 아시안 여자가 

소음에 섞여 어깨를 들썩이며 와인을 마시거나 해산물로 가득한 식사를 하는 동안 

그들은 줄곧 침묵했다.









사전에 '권태'의 예로 보여주면 

더없이 적합할 부부를 보며 조금 슬퍼지려던 찰나, 

이제 와이파이 고만하고 지중해에 폭 잠겨 스노클링 하거나 

해변에 철퍼덕 누워 책 읽고 있을 친구들에게 돌아가려던 그 찰나.


남자는 느린 속도로 상체를 

조금 움직여 바다를 등지고 앉은 아내를 향해 

#카메라 #렌즈 를 열었고, 

무표정이던 아내는 

여전히 무표정으로 잠시 정자세를 해보였다.


느리고 무표정한, 

그리고 권태로운 부부를 보며 슬프려던 맘이 쏙 접혔다. 


어쩌면... 그들은 나름대로, 

그들에게 익숙한 방식으로  

사랑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자리를 대신했다.

수학 문제가 아닐 바에야

이런 사랑도, 저런 사랑도 '참'일 수 있지 않을까.


지나고서 

끊임없이 후회만 했던 그 사랑도

어쩌면 참이었고,

더없이 당당하고

전부를 주어 여한이 없었던 다른 사랑은

어쩌면 너에겐 참이 아니었을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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