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까미노 29. 발가 ~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 구간 : #발가 Valga ~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 Santiago de Compostela
• 거리 : 35.1km
• 난이도 : ★★★☆☆
• 숙소 : Seminario Menor (14유로)
결론부터 말하면 결국 하루만에 산티아고를 끊었다(!).
전날, 산골 중턱에 하나 있는 바에서 와이파이 쓸 겸 저녁 겸 맥주를 마시며 앉았으려니 Ben에게서 메세지가 왔다. #포르투갈길 초반, 리스본에서 사흘 거리에 있는 #산타렝 을 벗어나며 만나 함께 걷다가 애매하게 거리가 벌어진 뒤론 자주 메세지를 주고받았는데 어느 틈엔가 #포르투갈까미노 절친이 되어 있었다.
어디 쯤인지 좌표를 불러주니 살살 불을 지핀다.
와 코앞이야. 하루만에 닿겠네. 충분하지~
하지만 이때만 해도 그럴 생각이 전혀 없었다. 이미 아침마다 아킬레스건 통증으로 바닥에 제대로 발 디딜 수 없었고(물론 좀 걷다보면 괜찮아지긴 했지만), 산티아고에 닿는 일정을 천천히 그리고 여유 있게 즐기고 싶었다.
*
프랑스길을 걸었던 첫 까미노에서 산티아고에 가까워졌을 때, 산티아고 20km 전 마을에서 멈출 생각이었다. 그러면 다음날 여유있게 20km를 걸어 컨디션 좋은 상태로 산티아고에 닿을 수 있으니 이상적이다 싶었다.
그러나 #아르수아 Arzua 에서 출발한 날. 마침 그날따라 함께 걷던 사람들이 많았고, 그들과 얘기하다 정신이 팔렸는지 엉겁결에 마을 진입로를 지나쳤다. 그나마도 무려 3km나 더 걷고 나서야 함께 걷던 사람 중 하나가 GPS를 열어 들여다보고 마을을 지나쳤 알아챘다.
다시 돌아가긴 싫고, 가다가 적당한 곳에서 잘 생각이었으나 길엔 마땅한 숙소도 없었다. 결국 온종일 억지로 걷다걷다 거의 40km를 걸어 산티아고에서 5km 남짓 떨어진 #고소 Gozo 에 멈췄더랬다.
나름 잘 걷다가 그때처처럼 마지막에 삽질하는 우를 범하지 않기 위해, 진작부터 마음먹고 있던 참이었다. 이미 이틀 전 산티아고에 도착해 유유자적 놀고 있던 벤은 그새 심심했는지 어서 오라며 다각도로 찔러댔지만, 꿋꿋하게 스탠스를 유지했다. 그리고 메세지를 보냈다.
좀만 더 혼자 놀아. 이틀 뒤에 봐~
남은 35km 거리를 이틀에 나눠 걸을 생각이었지만, 한낮 태양 열기는 여전히 무섭다. 전날 산길을 걷긴 했으나 가끔 그늘 없는 아스팔트를 걷는 동안 어찌나 고생했던지, 가급적 피하고 싶었다. 새벽에 일어나 20km를 후딱 걸은 뒤 태양이 정점에 이를 시각엔 알베르게에 들어가 씻고 낮잠이나 자며 푹 쉬다가 다음날 15km만 걸어 가뿐하게 산티아고에 닿으면 되겠거니 했다.
그리고, 그닥 할 일 없는 산골마을 알베르게에서 사람들은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었다. 여전히 해가 질 기미가 없었던 오후 9시. 나도 그들과 함께 자리에 누웠고, 3분 채 지나지 않아 딥슬립에 빠져 들었다.
모두 잠든 새벽. 오전 6시 쯤.
하지만 지척에 있는 포르투갈 기준으로 5시이니 이른 시각이긴 하다.
캄캄한 거릴 시원하게, 혼자 걸을 생각에 벌써 맘이 뛴다.
꼼꼼하게 패킹을 끝내고, 생수 한통만 옆구리에 끼고 출발-
동네에 하나 있는, 엊저녁 맥주를 마셨던 바 bar 겸 수퍼마켓은 벌써 영업중. 어쩌면 24시간 영업하는 곳이었을 것 같기도 하다.
대도시 산티아고에서 가깝고, 대형 트럭이 오가는 국도변 카페여서 밤에도 새벽에도 손님이 끊이지 않는 듯 이른 시각에도 오가는 사람들이 있으니 왠지 안심. 들어가서 커피라도 마실까 하다가 선두를 뺏기지 않으려고 스킵하고 일단 걷기로 한다.
큰길에서 까미노 표식을 찾아, 전날 걸어왔던 숲길로 다시 들어간다.
그리곤 곧 암흑.
#헤드랜턴 없던 나는 #아이폰 라이트를 켰다. 비포장길에 혹시 돌이라도 밟을 세라, 발 바로 아래로 빛을 비춰 신경을 잔뜩 곤두세운다.
그나마 하늘이 열린 길에선 희미하게나마 바닥에 빛이 반사된다.
하지만 나무가 우거져 하늘을 덮은 길에선 그저 암흑천지-
전날 나무 그늘 아래로 기분좋게 걸어왔던 그 외줄 산책로는 온통 시커먼 한덩어리로 뭉쳐 무섭기만 할 따름이다.
졸졸 흐르는 냇물 소리가 공포영화 속 메타포 같고, 이른 새소리 역시 괴기스러울 따름이다.
혹시 산짐승이라도 있을 세라 가급적 손에 쥔 스틱으로 땅을 치는 등 소음을 내다가, 나중엔 아이폰 라이트를 사방으로 현란하게 비추어댔다.
(인간이면 학습효과가 있어야하는데 한달 뒤, #북쪽길 에서 새벽에 나섰다가 그땐 정체 모를 야생동물의 하울링에 전신이 얼어붙어 여명이 들기까지 한시간 여 꼼짝없이 서 있기도 했다. 산에서 하루를 시작한다면, 반드시 해가 뜬 다음 이동하세요 ;;)
그렇게 걷기를 아마 30-40분?
드디어 외줄 산길에도 어렴풋 여명이 스민다... ;
한번 빛이 들면 다음은 순식간이다.
물리학자 김상욱 교수가 그랬었나. 우주에선 빛이 아닌 어둠이 디폴트라고 했지만, 빛이 들어서야 비로소 맘을 놓은 미물일 따름인 인간은 그제서야 긴장을 조금 푼다. 얼마나 긴장했었는지 어깨와 등이 다 아프다.
13kg 배낭을 멘 채로 발걸음에 맞춰 스틱 쥔 손을 허공에 빙빙 돌려가며 어깨를 풀며 걷는다.
이날의 첫 카페 겸 수퍼마켓.
가뜩이나 인적 드문 산길에서 까미노가 지나는 길가에 떡하니 들어선 까닭에 외면하려야 하기 힘든 위치이기도 하지만, 컴컴한 새벽길에서(실제 위협보단 상상이 만들어낸 두려움에이 더 컸지만) 혼자 떨었던 뒤라 그런지 사람의 온기랄까 흔적, 그 존재감이 무척 절실했다.
새 건물을 정확하게 반으로 나눠 카페와 수퍼마켓을 분리해둔 건물에서 바나나와 사탕을 사고,
따뜻한 #까페꼰레체 까지 한 잔.
이후론 편안하다.
사방에 빛이 가득하고,
산에서 잔 다음 날엔 으레 내려가게 마련이니 길도 수월하다.
산을 내려오는 내내 들길을 걷다 드디어 사람의 영역.
#노란화살표 가 가리키는 #까미노 진행방향은 명확한데, 공사중이다.
길을 건너 좌우를 둘러보다가 딱히 안내가 없어 조심조심 들어가본다.
공사가 진행되고 있지만, 지나가라는 손짓에 후다닥 현장을 지난다.
그 뒤로도 한참 구불구불 마을 골목을 돌아나가니
멀리 펼쳐지는...
공장 지대와 굴뚝, 그리고 피어오르는 하얀 연기.
#포르투갈길 이래 가장 삭막하고 난감했던 풍경.
보통 도시에 진입하거나 빠져나올 때면 으레 공장지대를 만나긴 하지만 높은 곳에서 조망하는 공장뷰라니.
#파드론 이라는 도시에 채 닿기도 전, 도시에 대한 이미지가 부정적으로 다가오는데 크게 한몫했다.
쨍하게 파란 하늘이었다면 또 분위기가 달랐겠지만
마침 구름이 잔뜩 껴 흐린 하늘 아래 공장뷰는...
왠지 조금 더 침울해 보이는데 일조한다.
침울한 굴다리를 통과하고,
침울한 데다 낡은 도시 변두리 교차로에서 길을 건너
왠지 잔뜩 오염됐을 것 같아 그닥 눈길 가지 않는 강을 건넌다.
(첫인상과 날씨 때문에 오해했지만, 실제 #우야강 Rio Ulla 은 깨끗하다 ㅋ)
이때도 내내 속으로 투덜대던 참이었다.
대체 어떤 동네길래 이렇게 삭막한 공장 뒷길로 까미노를 연결했냐고 ㅋ
드디어 도시로 진입.
맑고 화창한 날이었다면 분명히 달랐을 거다.
신나 사진을 찍어댔겠지만
오해로 시작된 첫인상 때문이었는지 이 예쁜 길에서도 감흥이 절반쯤.
(첫인상이 이렇게나 중요하다.;)
강 건너편 산티아귀뇨 산기슭에 우뚝 선 까르멘 수도원.
그 뒤편에 공립알베르게도 함께 있다.
포르투갈까미노 가이드북을 충실하게 따른다면
많은 순례자들이 쉬어가는 곳.
하지만 나는 이곳에서 멈출 리가 없거니와
이미 #파드론 이라는 도시를 잔뜩 오해한 뒤여서 그런지
굳이 까미노 루트에서 벗어나 다리 건너편에 있는 성당을 굳이 들여다보고 싶은 의욕이 없던 상태.
대신 까미노 루트가 오른쪽 담벼락으로 연결되는
파드론 산티아고 성당에 잠시 들어가 둘러보곤 선 채로
짧은 기도만 드리곤 금방 돌아나왔다.
대신 성당 뒷문 광장을 정면으로 향하는 모던한 카페에 들어가
저 뒤 보이는 오렌지착즙기에서 막 뽑아낸 주스로 아침 식사 겸 당충전.
그리 크지 않은 도시인지,
구도심이 작아 그런지,
카페를 벗어나 골목을 돌아나오면 곧 외곽으로 연결된다.
파드론에서 1km.
작은 횡단보도를 건너면 곧 다른 마을, 이리아 플라비아Iria Flavia다.
포르투갈에서 국경을 건너고
스페인 영역으로 들어서자마자 목격했던
순례자 배낭 이송업체 차량을 다시 만났다.
아까 파드론 진입하는 다리를 건너기 전 나보다 먼저 다리를 건너던 차량이 한대 있었는데 가까이에 가서 보니 그 차는 아니다.
#산티아고 26km여 떨어진 이곳에서부터
나들이겸 산티아고까지 걷는 스페인 사람들이 대절한 지원 차량.
아마도 주전부리 등이 담겼을 런치박스와 함께
트렁크와 큰 가방들이 잔뜩 실려 있고,
차에 짐을 벗어둔 사람들은
이렇게 가볍고 편안한 복장으로,
누군가는 챙모자에 샤랄라 꽃무늬 원피스까지 입고 걷는다.
꾀죄죄한 순례자들 사이에서 깨끗하고 왠지 좋은 향기까지 풍기는 듯한 이들 일행은 한동안 순례자들의 시선을 모았다.
편안하고 가벼운 차림이지만 걸음은 오히려 느린 편.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걷기도 하지만
발목이 아파 더 걸음이 느려진 내게도 금방 따라잡힌다.
천천히, 시간을 한줄씩 붙들고 걷는다 싶었지만
그래도 한달간 마냥 걷기만 했으니 나름 근력이 생겼던 걸까.
직진하면 곧장 산티아고에 닿을 N-550 국도를 다시 만난다.
저어기 앞에, 혼자 걷는 사람.
스페인 진입한 첫날 알베르게에서 같은 방을 썼던 무드 아줌마 뒷모습이려니.
가까이 다가가니 역시. 맞다.
하지만 나도 그렇고,
아줌마도 왠지 혼자 걷고 싶을 것 같아 굳이 아는 체를 생략했다.
혼자 걷되 같이 걷고,
같이 걷되 혼자 걷는다.
친절하게, 마을 뒷길로 안내하는 #이정표 .
아주 평범하고 작은 마을일 따름이다.
폭 좁은 골목길로 꼬불꼬불 연결되는.
(어지러움 주의 ;;)
골목으로 연결되는 Romaris, Rueiro 등 작은 동네를 지나
철길 옆을 걸어 멀지 않은 곳에 있을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 를 향해 직진.
다시 N-550 국도와 만나고.
이젠 길가 성당 구경까지 시켜주는 까미노.
성당 마당을 향해 계단으로 올라가란다.
마당에서 옆문을 향해 길이 이어지고,
옆문을 통해 외부로 나오면 이끼 낀 성당 담벼락을 따라
옆마을 뒷길로 연결된다.
#파드론 에서 #산티아고 사이 온갖 크고 작은 마을을 고루 들렀다가
다시 만나는 N-550 국도.
산티아고까지 남은 거리 16km.
완주가 정말 눈앞으로 바짝 다가왔다.
그리고 이때부터 궁서체로 고민하기 시작했다.
지금껏 걸은 거리 어느덧 20km 남짓.
시간도 점심 무렵.
이곳에서 1.3km만 걸으면, 산티아고 직전 마지막 #공립알베르게 가 있다.
그곳에서 멈출 것인가,
기껏 남은 15km 여를 마저 걸어 산티아고까지 갈 것인가.
물론 벤에게는 이틀에 걸쳐 걸을 거라고 큰소리쳤지만
막상 서너시간 바짝 걸으면 산티아고라고 생각하니
왠지 모를 조바심도 생기고...
또 맘이 달라진다.
정말 결정해야 할 지점.
앞에 보이는 붉은 간판을 단,
카페에서 사설 알베르게를 겸하는 건물을 지나면 갈림길이다.
아스팔트 길을 따라 곧장 직진하면 공립 알베르게가 있고,
왼쪽 오솔길로 접어들면 마을 우회로들을 돌고 돌아
산티아고로 향하는 국도로 다시 합류한다.
종일 혼자 걷다 모처럼 아는 얼굴들을 만났다.
#포르투갈 #포르토 에서부터 순례를 시작한 독일인 가족.
일정 내내 숙소에서건 길에서건 만났다 헤어졌다를 반복하다가
이 분기점까지 오는 산길에서 다시 등장한 거다.
이들은 이곳에서 멈추고, 내일 마저 걸어 산티아고에 갈 예정.
같이 가자곤 하는데...
이상하게 이런 상황에선 멈추고 싶지 않은 직진 본능.
결국 안녕을 고하고 다시 걷는다.
- 안녕, 내일 산티아고에서 만나.
들길과
마을길,
산길,
그리고 다시 마을길,
또 산길을 걷고 걷고 걸어
이제 정말 도시 가까이에 바짝 섰다.
그새 시간은 훌쩍 흘러 벌써 점심시간도 넘고, 오후 3시 언저리.
고속도로 위를 연결하는 고가로 까미노가 연결되는 터라
고가 위에서 뒤를 돌아보니...
내가 걸어온 갈림길과 구불거리는 고갯길이 한눈에 들어온다.
내가 힘겹게 올라왔던 비탈길을
누군가는 여전히 땀흘리며 한발짝씩 오르고 있고...
이제 정말 산티아고 코 앞.
서울 중심부를 광화문으로 잡는다면
영등포에 닿았어도 여전히 한강 건너 마포, 아현동, 충정로를 지나야 한다.
비하자면 거의 영등포에 닿은 셈.
3시가 넘도록 점심도 못 먹고 걸었더니 체력력이 탈탈 털려 주저앉을 지경.
이날 얼마나 지쳤는지 사진은 한장도 남지 않았지만 신도시 중간, 상가 1층 레스토랑 야외테이블에 앉아 늦은 점심을 먹었다. #순례자메뉴 로 아주 거하게.
점심 먹고, 순례자메뉴에 함께 나오는 와인도 두어잔 마셨겠다,
산티아고 코앞이겠다... 이미 긴장이 풀렸다.
뜻밖에 레스토랑에서 두 시간이나 앉았다 나가려던 무렵, 오랜만에 이탈리아 친구 노에미에게서 문자가 왔다.
수, 어디야? 나 오늘 산티아고 들어갈 것 같아.
포르투갈에서 스페인으로 국경을 넘어오기 전날,
포르투갈 루트 중 가장 높은 산을 넘으며 발뒤꿈치에 생긴 왕물집을 처치해준 물집닥터 노에미.
지치고 외로울 때, 익숙한 이름들이 보내오는 메세지만큼 반가운 게 없다.
앗 정말? 나두 오늘! 이따 연락할게.
신나서 답을 보내놓곤 의자에서 벌떡 일어섰다.
밥 먹고도 몸이 늘어져 한참을 앉아 있었는데 어디서 그런 기운이 솟았을까.
무거운 배낭을 들쳐메고 레스토랑을 나와 찻길로 접어들자마자...
거짓말처럼 노에미가 나타났다.
대박 ;;;
첨엔 오랜만에 메세지를 해서 헛게 보이나 싶었는데, 다시 봐도 노에미.
조용히 뒤로 다가가서 덥석 끌어안았다.
포르투갈에서 물집을 치료해주고,
스페인 국경 넘은 첫날 망연자실했던 날 불러 첫날 잠자릴 소개해줬던 착한 친구.
그 뒤로 헤어져 며칠이고 왓츠앱으로 소식만 전하다가 산티아고를 5km 남짓 남겨두고 정말 말도 안 되게 다시 만난 거다.
떨어져 있었지만, 속도는 다르지만 결국 모두가 도착해야 할 곳은 #산티아고 였으니...
한 방향으로 걷기를 멈추지만 않는다면 언제든 다시 만날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 극적인 상봉 장면은 상상하지 않았던 터라 둘이 껴안고 꽥꽥 소리를 질러대며 한동안 난리법석을 떨어댔다.
그새 노에미에게 새로 생긴 길친구와도 인사하고, 함께 걷는다.
이름이 가물...하지만 이 친구도 이탤리 스포츠 기자.
멀리 산티아고가 보이기 시작한다.
산티아고 대성당 종탑이 보인다며 난리가 났지만
5년 전 이미 산티아고를 만났던 나는... 신난 둘의 뒷모습만 담았다.
그러고보니 빼곡하게 들어선 건물들에 가려
오브라도이로 광장에 가서야 성당을 마주하게 되는 프랑스길에 비하면
멀찍이서 일단 성당 종탑을 알현(!)하고,
설렘 가득한 맘으로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포르투갈 길이
한층 드라마틱한 것 같기는 하다.
한참 외곽 동네 언덕을 오르내리다 보면
마지막 갈림길에 닿는다.
고속도로 위를 잇는 고가로 넘어가는 왼쪽길,
근처 A Conxo 라는 작은 마을을 한번 더 통과하게 되는 오른쪽 우회로.
네오미와 친구는 왼쪽길,
나는 콘소를 통과하는 오른쪽으로 다시 나뉘었다.
굳이 코스를 나눈 이유를 찾지 못한 걸 보면
그리 특색 있는 곳은 아니었고,
- 왜 여길 지나가?
싶은 눈길로 쳐다보는 몇 동네 사람들을 지나쳐 도시의 좁은 중앙 차도를 따라가다 보면
정말 산티아고다.
저 횡단보도를 넘어선 건물부터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다.
보도 중앙에 놓인 돌에 새겨진 노란 화살표를 마지막으로
규모 크고,
사람들 복작대는 중심가에선 화살표 찾아내기가 녹록지 않다.
할 수 없이 가이드북을 꺼내
내가 진입하는 방향에 맞춰 책을 거꾸로 집어들곤 도트를 따라간다.
아주머니 두 분이 사람들을 반기는 #알라메다 공원이다.
이제 성당까지...
아무리 넉넉하게 잡아도 500미터?
공원을 나와 구도심으로 향하는 건널목에 잠시 섰는데도
이상하리만치 무덤덤한 기분.
사실 생각해보면 첫 까미노 때도
33일간 프랑스길을 걷다 산티아고에 닿았는데...
막상 성당 앞에 섰을 때 감동이랄까,
별다른 소회가 없어 당황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사람 틈에 섞여 길을 건너고,
구도심 골목길로 막 접어드는 찰나
생각지도 못하게 익숙한 얼굴들을 한번에 만났다.
마치 예고 없이 본편을 접한 기분.
심지어 이들은 포르투갈에서도 포르토에 닿기 한참 전,
초반에 만난 얼굴들이다.
그 이후 한번도 보질 못 하고 있다가 산티아고에서 우연히 마주친 것.
기대도 예상도 못한 만남에 놀랐다가
알랜카(가장 왼쪽)와 퍼뜩 마주 안았는데,
생각지도 않게 후두둑 눈물이 떨어졌다. ;;
아무렇지 않았는데,
정말 덤덤하기 짝이 없었는데 갑자기 눈물이라니.
객지에서 혼자 고생고생하다 오래 헤어졌던 가족을 만난 기분 같달까.
심지어 알랜카와 루이지는 다음날, 산티아고를 떠날 스케줄이었다.
마치 드라마 마지막 회에서 모든 오해가 풀리고 고난이 끝나듯
종착지에서,
흩어지기 직전에 그동안 볼 수 없었던 사람들을 한번에 만났다.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맘 속으로 고맙습니다- 를 십수번은 읊조렸다.
떠나기 전, 다시 만나 식사하기로 하고 손을 놓았다.
그리고, 지도를 펴지 않아도 익숙한 산티아고 구도심을 걸어 #순례오피스 로 향했다.
순례오피스 옆 수비니어 숍.
이곳에서 지금껏 차곡차곡 모아온 스탬프가 담긴 크레덴시알을 보여주고,
완주했음을 인증하는 페이퍼를 일정이 모두 끝나는 거니까.
그.런.데...
오피스가 있던 그 자리에 다른 시설이 들어섰다.
수비니어 숍이 생기고, 오피스는 이전했다는 거다.
아마 포르투갈길 걸었던 전 일정 통틀어 이때 가장 당황했었지 싶다.
잠시 망연자실-
그리고 이내 주위를 둘러보곤
기껏 하루 이틀 차로 산티아고에 닿은 듯해 뵈는 사람에게 길을 물었다.
설명만 해줘도 감사했을 텐데,
굳이 함께 길을 걸어 오피스가 들어선 골목 입구에까지 날 데려다놓고선
쿨하게 웃으며 사라진 고마운 아주머니.
까미노에선,
까미노여서,
무작정 돕거나 도움을 받게 되는 가슴 따뜻해지는 경험을 거듭 하게 되는데,
이때도 그 중 한 장면.
같을 길을 걸었다거나
함께 걷지 않았어도
산티아고에 도착한 사람들끼리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것 같은 미묘한 공감대가 형성되게 마련이다..
산티아고 대성당 오른편 팔라조 호텔 옆길을 내려와
첫번째 골목 끝건물로 자리를 옮긴 순례오피스.
막상 골목에 들어서니 건물 앞에 사람이 복닥거려
자세히 묻지 않아도 위치가 짐작된다.
그러나...
가까이 다가가니 업무 종료.
오후 7시까지 순례오피스에 도착한 사람들만 인증서를 받을 수 있고,
그 이후 도착자는 다음날 다시 방문해야 한다.
물론, 인증서에도 순례 오피스 방문일 기준으로 날짜를 기록한다.
그래서 산티아고 대성당 앞 광장바닥에 주저앉아 성당 종탑을 올려다보며 하염없이 멍때리는 여유도 내일 스케줄로 잠시 미뤄뒀다.
*
이후 이어지는 끊임 없는 재회와 그만큼 반복되는 헤어짐으로
산티아고에서의 날들은 바쁘게 흘러간다.
어린 축에 속했던 친구들과는 함께 새벽까지 펍에서 춤추며 놀기도 하고.
산티아고에 도착한 소회랄까 디테일은 지면을 위해 생략합니다. :)
*
가이드북이 권하는 일정 따위 무시하고
오로지 내 속도와 기분만 생각하며 걷다가
29일만에 도착한 #포르투갈까미노 기록은 여기서 끝납니다.
이후 포르토로 다시 내려가
#코스트루트 와 #스피리추얼루트 를 걸어
다시 산티아고에 닿는 이야기 역시 지면을 위해 아껴둡니다
*
그리고 #북쪽길 에 대한 기록이 곧 이어질 예정입니다.
덧붙입니다.
도착 다음날 아침 일찍 순례오피스에 찾아갔는데 크레덴시알을 참 꼼꼼하게 살피더군요.
그새 순례자가 많이 늘기도 했고,
가끔은 순례자 가격 수준에서 숙소를 잡으려는
가짜? 여행객들을 가려내려고
크레덴시알에 찍힌 장소들을 꼼꼼히 살핀답니다.
(산티아고까지 마지막 100km를 걸어야 순례 인증)
혹시 그럴 일은 없겠지만 스탬프 잊지 마시구요,
매일 선착순 10인에게는 인근 5성 호텔 레스토랑 식사 쿠폰이 제공되니
부지런한 순례자라면 그 역시 놓치지 마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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