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MINO 소설 _ test] #23 PONFERRADA
엄밀하게는 그의 잘못은 없었다. 사고는 언제나 우연이니까. 그가 의도한 사고는 아니었다. 날 맑은 일요일 오후, 기분좋게 드라이브를 나설 때만 해도 모든 것이 순탄했다. 직장에서는 순조로웠으며, 몇 개월 뒤면 가정이라는 울타리에 자연스레 묶일 그녀가 옆에 있었으니까. 맑은 오후, 기분좋을 만큼 따뜻한 햇살, 간지러운 미풍, 적당히 건조한 대기를 가르던 기분좋은 드라이브는 우연치 않게 끝났다. 커브를 돌던 차와 반대편에서 마주오던 자동차가 충돌했고, 날카로운 기계음을 들으며 정신을 잃었다. 독일 어느 소도시, 작은 사거리에서의 일이었다.
흔한 사고였다. 지금 이 시간에도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교통사고가 수백 건은 될 텐데. 그 흔한 교통사고로 그의 인생은 뒤바뀌었다. 성당에 그녀를 안치한 뒤부터는 알콜이 항상 그의 몸 속을 돌았다. 일을 놓았고, 사람들을 놓았다. 가족과 친구들이 멀어져갔다. 그날도 알콜이 그의 몸을 잠식하고 있었다. 초점없는 시선은 TV 화면만을 응시했다. 전쟁, 자연재해 등의 극단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개 즐겁기만한 TV 속 사람들은 그날 역시 즐거워 보였다. 투박한 옷차림에 자기 몸집만한 커다란 배낭을 달팽이처럼 등에 지고 느리게 걷는 사람들의 앞으로 끝도 없는 황톳빛 길이 이어지고 있었다. 여전히 술병을 들고, 그는 소파에서 일어섰다.
스페인의 론세스바예스에 겨우 당도했다. 1,500미터의 피레네 산맥을 넘으며 프랑스에서 스페인 국경을 막 통과한 참이다. 여전히 혈액과 알콜이 비슷한 비중으로 몸 속을 흐르는 불콰한 얼굴의 그에게 피레네는 더욱 힘겨웠다. TV 다큐멘터리를 본지 불과 보름, 흔한, 하지만 그에게는 지독했던 교통사고가 일어난 지는 거의 1년이 지나 있었다. 이제 스페인 북서부를 가로질러 카톨릭의 3대 성지라는, 스페인 서쪽 도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걸을 참이었다. 피레네를 넘었으니 이제 남은 거리는 790킬로미터. 한달하고 며칠이 걸릴 것이다. 거기서 사흘을 더 걸으면 유럽의 서쪽 끝, 피니스테레다. 이왕 나선 걸음, 유럽의 끝까지 걷게 될 지도 모를 일이다. 퐁- 바텐더가 막 오픈해 건네준 맥주를 받아들었다. 에스트레야 담 바르셀로나. 유럽의 끝에 닿을 때까지 앞으로 족히 백 병은 더 마시게 될 새 친구.
폰페라다는 모처럼 만난 큰 도시였다. 공립 알베르게에 오늘 함께 머무르게 될 사람만 156명. 피레네를 넘을 때부터 보았던 익숙한 얼굴이 있는가 하면, 이곳에서 카미노를 시작하는 새 얼굴이 뒤섞여 공동 주방 역시 복작거리기는 마찬가지였다. 지금껏 600여 킬로미터를 걸으며 가장 많은 사람이 함께 잠자리에 들게 되는 셈이다. 면은 잘 익고 있었다. 소금을 반주먹 넣고 끓인 물에 파스타를 넣은 지 5분쯤 지났으니 지금 손질중인 채소를 얼른 다듬어 소스를 완성하기까지 가장 이상적인 시간은 3분. 알베르게에 도착하기 전에 보이던 마트에서 미야와 함께 고른 와인은 이미 열어두었다. 남은 건? 먹고, 마시기. 미야와 함께.
(to be contin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