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과 함께 사는 느린 기술
나는 오랫동안 불안을 없애야 한다고 믿었다.
그건 마치 감기에 걸린 것처럼 치료받아야 하는 증상이었고, 나를 망가뜨리는 적이었다. 불안이 찾아오면 나는 늘 당황했다.
왜 또 이런 감정이 생기는 걸까, 나는 왜 아직도 괜찮아지지 못하는 걸까.
하지만 그럴수록 불안은 더 깊게 스며들었다.
이겨내려 할수록, 나를 더 꽉 쥐는 손아귀처럼.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조금씩 깨달았다.
불안은 ‘치유의 대상’이 아니라 ‘살아 있음의 증거’라는 것을.
무언가를 사랑하고, 잃어버릴까 봐 두려워하고,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어 하는 마음의 진동이 불안의 형태로 드러나는 것일지도 모른다.
불안이 완전히 사라진 삶은, 욕망도 사랑도 사라진 삶과 닮아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제 불안을 완전히 없애지 않기로 했다.
그 대신, 불안과 함께 사는 법을 배우기로 했다.
마치 집 안에 함께 사는 고양이처럼.
너무 가까이 다가가면 도망치고, 너무 무심하면 멀어지는 존재를 적당한 거리에서 바라보는 일.
우리 집 고양이 두 마리의 이야기를 들려주겠다.
행복은 느릿하게 걸으며 타워 위에서 나를 관찰하고, 흑설은 하루 종일 졸졸 쫓아다니다가 애교를 부리다가 사람이 누운 이불 밑으로 쏙 들어온다.
그들의 삶의 양식은 너무나도 평온해서 삶을 조용히 통과하는 기술을 쥔 것처럼 보인다.
지금 이 순간에 머무는 법,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도 하루를 살아내는 법.
나에게도 그런 기술이 필요했다.
불안이 나를 덮칠 때면 예전엔 손끝이 굳고, 말수가 줄었다. 온 방 안을 서성일 때도 있었다.
이제는 천천히 숨을 들이마신다.
물컵에 물을 따라놓고, 창문을 조금 연다.
파주의 바람이 창틀 안으로 들어오면 커튼이 미세하게 흔들린다.
그 움직임을 바라보는 일은 나를 다시 현재로 데려온다.
나는 아직 괜찮지 않지만, 괜찮아질 가능성 속에 있다는 걸 느낀다.
불안을 없애려는 마음은 결국 나를 더 불안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불안을 받아들이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괴물이 아니었다.
불안은 나의 속도와 방향을 알려주는 신호였다.
너무 빨라졌다고, 너무 멀리 갔다고, 잠시 멈추라고 속삭이는 감각.
나는 이제 불안과 함께 살아가는 느린 기술을 배워가고 있다.
서둘러 완벽해지려 하지 않고,
조금 부족해도, 약간 흔들려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삶의 기술을.
오늘도 불안은 내 옆에 앉아 있다.
하지만 이제 나는 그 불안을 무서워하지 않는다.
그것은 나와 함께 숨 쉬는 존재다.
어쩌면 불안을 완전히 없애는 게 아니라,
그것과 함께 천천히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것이
내가 찾던 진짜 평온의 시작일지도 모른다.
연재의 첫 시작을 기쁘게 알립니다.
『불안과 함께 사는 느린 기술』 시리즈를 연재하려 합니다.
이 연재는 조울증과 불안 속에서 살아가는 개인 김소정이, 일상의 작은 순간 속에서 회복과 감각을 찾아가는 기록입니다.
시와 산문의 경계에서 쓰며, 불안을 없애려 하기보다 함께 살아가는 법을 이야기합니다.
파주의 바람, 고양이의 숨결, 시를 읽는 밤 같은 작은 순간들을 통해 느리고 불완전한 삶의 아름다움을 기록하고자 합니다. 저의 글이 완벽하지 않아도, 당신이 괜찮다고 말하는 하나의 언어가 되길 바랍니다.
플러스연재로 자작시도 올라올 예정입니다.
앞으로 많은 관심과 사랑 부탁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