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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아레테 Dec 30. 2021

사랑이 올까요?

2012년 추억에 2021년의 추억을 더하면서



♬ 사랑이 올까요 또다시 올까요

아름다운 날이 내게로 올까요

미치도록 사랑한 그 추억 하나로

살겠죠 그렇게 또 살아가야겠죠


요새 90년대, 00년대 노래를 정주행 하다 보니 유튜브의 알 수 없는 추천 알고리즘으로 반가운 노래가 떴다.


마이티마우스&백지영이 노래했던 <사랑이 올까요>.


2010년에 발표된 노래였는데, 나는 이 노래를 2012년이 되어서야 뒤늦게 접했다. 노래를 듣던 당시, 벚꽃이 흐드러지게 줄지어 꽃 피웠던 신촌 거리를 누비며 중간고사 시험 준비를 했던 기억이 선연하다. 내가 좋아하던 작은 스터디 카페는 현대백화점 뒤편에 숨겨있던 2층 카페였는데, 항상 마쉬멜로우가 들어있는 따뜻한 코코아 한잔을 시키고 내가 좋아하는 창가에 앉아 노래를 들으며 길거리에 사람들이 돌아다니는 모습을 하릴없이 구경하곤 했었다. 그래서 이 노래는 내게 항상 봄의 잔상을 불러일으켰다.


동시에 노래를 들었던 당시에는 나는 사귀던 남자 친구랑 헤어진 상황이었고, 여러 차례 짧은 연애를 거치면서 과연 사랑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대단한 회의감에 사로잡혀있었다. 그 당시 내게 사랑은 참 어려웠었다. 공부처럼 A=B다, 라는 정의가 떨어지는 공식이 적용되지도 않았고, 내가 최선을 다했음에도 그 결과는 내 기대에 항상 미치지 못했다. 노력과 결과가 비례하지 않는다는 점, 그리고 한낱 호르몬의 장난이라 불리는 불안정한 타인의 감정에 (내 의지와 상관없이) 관계의 처음과 끝이 결정된다는 사실도 납득하긴 어려웠다. 그러다 보니 그 당시의 나는 다소 냉소적이고 시니컬한 태도로 사랑이란 관계가 무엇인지에 계속 고민했었다. 물론 그 고민조차도 사치라고 생각될 만큼 현실에 산적된 문제는 너무 많았다. 성적장학금으로 충당해야 하는 대학 학비, 취업준비, 학점관리, 과외와 동아리 활동.. 수없이 많은 'TO-DO-LIST'로 채워진 내 대학생활을 버텨야 했고 그러다 보니 마음의 도피처로 얻게 된 연애에 더 진심이었을지 모르겠다.


노래를 듣다 문득 2012년의 남편은 뭘 했었는지 궁금해서 물어봤다. 남편은 씩 웃더니 그때쯤이면 군대 제대해서 나왔을 때라고 한다. 아, 나는 중간고사를 준비하고 있을 동안 남편은 군인 신분에서 민간인으로 막 복귀를 했었구나. 10년 전의 우리는 각기 다른 지역에서 서로 다른 시간대를 살고 있었는데, 지금은 이렇게 같은 공간에서 삶을 공유하며 살게 되었다니 참으로 기분이 이상해졌다.


남편의 학교는 내가 합격했으나 가지 않았던, 동쪽 반대편에 위치한 학교였다. 가끔 내가 내 모교를 선택하지 않고 남편의 대학교를 다녔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남편과 나는 1살 차이밖에 나지 않았고, 나의 휴학과 남편의 칼 졸업으로 인해 공교롭게도 우리의 졸업시점과 입사시점은 일치했다. 만일 같은 학교를 다녔다면 오며 가며 한 번쯤은 마주쳤을지도 모른다. 한 번이라도 마주쳤겠지만 그다음은? 그렇게 물으면 우리 둘 다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한참을 낄낄거렸다. 우연히 기회가 닿아 서로 CC(캠퍼스 커플)를 하며 화려하게 연애를 했을지 모르지만 결혼까지 가진 못했을 거다. 남편이나 나나 각자 모교에서 CC로, 그것도 오랜 연애 후 헤어진 경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어린 시절의 연애는 항상 수많은 난관을 겪기 마련이고,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 상대방에 대한 굳건한 믿음과 신뢰를 가지고 결혼하는 건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그러니 첫 연애 상대와 결혼한 사람이 고대 유물처럼 더 희귀하게 여겨지는지도 모르겠다. 어찌 되었건 그 역경을 거치고 결혼에 도달하지 않았는가. 하지만 우리 둘은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 당시 만나던 상대와 역경을 극복하지 못했기에(?) 서로를 만날 수 있었다.


이게 관계가 가지는 모순 그 자체가 아닐까. 타인과 이별해야 다른 사람을 만날 수 있으니까.




30주 차에 접어들면서 배가 계속 불러와 서 있으면 내 발등조차 보이지 않을 정도가 되었다. 불룩한 배를 움켜쥐고 헉헉거리며 돌아다니고 있으면 가끔 남편은 신기한 것처럼 하염없이 나를 쳐다볼 때가 있다. 왜 그래? 내가 물어보면 남편은 항상 그냥, 신기해서.라는 말로 얼버무리곤 했다. 끝맺지 않은 뒷말은 굳이 듣지 않아도 알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가끔 나 스스로조차도 '남편의 애를 품은 30대의 유부녀'라는 포지션이 낯설 때가 많은데 남편도 마찬가지였던 듯하다. 남편은 늘 자기 전에 태명을 부르며 내 배를 만지곤 했다. 뜨끈하고 포동한 남편의 손이 배를 문지르면 신나게 발길질을 하던 아기도 이상하게 잠잠해진다. 그럴 때마다 아, 내가 이 사람의 아이를 가졌구나.라는 현실감이 절절하게 든다. 나를 스쳐 지나갔던 수많은 사람 중에서 결국 내가 안착한 사람은 이 사람이었다.


처음 들었을 때는 불확실한 미래와 사랑의 아픔에 불안해하던 20대였지만,

지금은 가사에서 나온 말대로 '시간이 다 해결해줘서' '아무렇지 않게 웃을 수 있는' 30대가 되기까지.


노래 가사를 곱씹다 보면 반드시 '사랑을 해야' 아름다운 날이 온건 아니지만, 수많은 사랑이 떠나가도 내 청춘은 나름 찬란하고 아름다웠던 것 같다. 내 남편을 만나고 나서 비로소 내 인생이 완성되지 않은 것처럼. 이미 내 인생을 지탱해줄 수많은 아름다운 것들 잔재했고 남편과의 결혼은 케이크 위에 얹어진 딸기처럼 수많은 추억 중 유독 찬란하게 더 반짝이는 추억의 조각 중 하나라 생각한다. 조금 더 특별하고, 조금 더 소중한.


며칠 내내 멜로디만 흥얼거리다가, 노래에 얹어진 20대의 추억에 다시 한번 30대의 추억을 얹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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