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평적 수직
최근에, 안 하던 등산을 했다.
남 부러울 것 없는 회사를 퇴사한 뒤였다.
함께 일했던 사람만 대략 백 명,
스쳐 지나간 사람까지 합치면 몇백 명은 될 것이다.
로스팅 파트에서 시작해
운영팀을 거쳐 브랜드 디렉터까지 갔다.
운이 좋았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쯤에서 번아웃이 왔다.
그래서 그냥, 퇴사해버렸다.
왜 번아웃이 왔을까 생각해보면
희미한 점들만 모으면서,
나는 늘 뾰족한 무언가를 찾고 있었던 것 같다.
등산을 하면
높이 올라갈수록 모든 것이 점으로 보인다.
그렇게 크던 건물도 손톱 하나로 가려진다.
아둥바둥 높은 곳으로 올라 능선을 넘으며 살다 보니
세상은 전부 점이 되었고, 그 점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시간만 빠르게 지나갔다.
내 인생이 스킵되는 느낌이었다.
문득 생각했다.
다른 산은 없을까.
인터넷을 뒤적이다
히말라야를 보게 됐다.
당연히 오를 실력은 없지만
올라가는 ‘루트’가 있다는 사실이 눈에 들어왔다.
그 순간,
우리의 인생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두가 같은 길로, 가장 효율적인 길로,
세상의 시간표에 맞춰 출발해
정상이라는 하나의 꼭지를 향해
차례를 기다리며 올라간다.
왜 다른 길로 갈 생각은 못 했을까.
정상은 이미 정해져 있고,
누군가 가장 쉬운 길을 먼저 증명해두었기 때문이 아닐까.
그때 마침
무동력 요트로 세계일주를 한 사람의 기사를 읽었다.
이상하게 심장이 뛰었다.
아, 저건 나랑 다른 삶이구나.
산이 끝을 보고 오는 여정이라면
바다는 다름을 보고 오는 여정 아닐까.
산이 세상과 점점 멀어지는 것이라면
바다는 세상과 점점 가까워지는 것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다 보니
산은 수직적인 도전이고
바다는 수평적인 탐험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그래서 이번에 ROASTHAUS를 하면서는
누군가 만들어둔 ‘커피업계에서 성공하는 공식’을 따르기보다
내가 직접 만들어가는 탐험을 해보자고 마음먹었다.
산에서 내려오니 점으로 보이던 것들에
이름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무, 돌, 흙.
다르게 생겼고
각자의 역할과 각자의 삶이 있어 보였다.
희미한 점으로 살지 말자.
뚜렷하게, 나로 살아보자.
그래서 남들과는 다르게 원두 패키지를 가로로 디자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