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4 산미있는 커피

신맛 안나는 커피 주세요.

by ROASTHAUS

더하기를 배우고
빼기를 배우고
그다음 나누기와 곱하기를 배웠다.


초등학생 수준이었던 내 커피 경험은
어느덧 대학원생 정도까지 온 것 같다.


하지만 고객은 아직
초등학생 정도의 경험을 하고 있다.


커피를 하며
나는 계속해서 다음 단계를 배워왔다.

국가, 도시, 마을, 농장, 농부, 생두, 가공 방식, 품질까지.


메뉴판에는
발음하기도 어려운 단어들이 빽빽하게 적혔다.

그게 과연 고객에게 전달되고 있을까.

한때는 그런 나열이 멋있어 보였던 적도 분명 있었다.


커피를 하는 사람들은
대개 작은 충격에서 시작한다.

“와, 커피에서 이런 맛이 난다고?”


나 역시 그랬다.
에티오피아 아리차 내추럴.

복숭아 맛이 났다.
그 순간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하지만 커피를 소비하는 사람에게
그건 그냥
신맛 나는 검은 물일 뿐이다.


내가 좋아하는 걸
내가 느낀 걸
강요하고 있는 건 아닐까.


그 질문을 품은 채
유전자에 대한 책을 읽다
하나의 답에 닿았다.


왜 사람은 신맛을 싫어할까? 오렌지는 좋아하면서.

사실 싫어하는 건 ‘신맛’이 아니라 ‘시큼함’이다.

대부분의 시큼한 맛은 음식이 상했을 때 생긴다.

단백질의 부패, 지방의 산패.

그건 생존의 문제다.

그런 DNA를 가진 인간이 신맛을 좋아하게 되는 건
차곡차곡 쌓인 경험 때문이다.


쓴맛도 마찬가지다.
대부분의 독은 쓰다.

태어날 때부터
우리는 그 맛을 경계한다.

아이에게 쓴맛을 주면 바로 뱉는다.

레몬을 줘도 찡그리며 침을 흘리고 뱉는다.

하지만 사탕은 다르다.

사탕이 뭔지도 모르는 아기는 아주 자연스럽게 잘 먹는다.

당분은 우리가 필요하다고 느끼는 영양분이기 때문이다.

그때 생각했다.


아,
나는 달달한 커피를 만들어야겠구나.

가장 인간적인 방향이겠구나.

무언가 굽는 냄새가 나도 좋겠다고.


부엌에서 삼겹살을 구우면
“와, 맛있는 냄새 난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수육을 삶으면서
“와, 수육 삶는 맛있는 냄새”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인간은 굽는 냄새를 좋아한다.

그 이유도 DNA 어딘가에 있지 않을까.


그래서 나는내가 좋아하는 산미 있는 커피를
강요하는 대신, 조금 더 인간적인 커피를 전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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