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 다이어리

20' 뒤죽박죽

by 코스모스처럼

하필 IMF

수능을 잘 친 건 아니었다. 본디 무엇이든 노는 것 외엔 쉬엄쉬엄이 편했다. 그래도 꿈이 없는 건 아니었다. 고등학교 1학년, 입시 시험을 치르고 당당히 입성한 명문 학교에서 첫 기수 방송반으로 나는 매주 월요일 교장 선생님의 훈화를 대신했다. 한 주 전에 다음 주 훈화 제목이 주어지면 하루 이틀 안에 초고를 써서 방송반 선생님 앞에서 짜임새 있는 글을 낭독한다. 오케이 사인이 떨어지면 휴. 나의 자존심을 건드리기 싫으셨는지 다행히 한 번도 리턴이 없었고 그렇게 나는 매주 월요일 아침 8시, 3학년 선배님들까지 책상과 의자의 모양을 90도로 각 잡아 앉히고선 교장 선생님의 대행을 맡은 훈화 방송에 힘을 실었다. 어디 그뿐인가. 학교에서 진행되는 외부 수련회에서 방송 장비를 도맡아 만지며 애국가 지휘는 물론 친구들로부터 인기를 독차지하는 장기자랑에서 노래와 춤 정도의 끼를 발산해주는 것은 기본이었다. 그런데. IMF다. 하필 IMF.


공부를 꽤나 잘했던 언니들은 서울이 무서워 그 좋은 서울대 상경도 허락하지 않았지만 너는 막내니 비싼 등록금 감당하고서라도 연세대도 이화여대도 보내주겠다며 내 손을 두어번씩이나 잡고 선 애착인지 집착인지 모를 잔소리를 건네던 아버지셨다. (아빠 미안, 나..나..공부 못해. 근데 꿈은 있어..) 마음으로만 큰 소리로 반항했지 겉으론 썩소와 함께 고개를 두어번 끄덕였던 고3은 이제 수능조차 끝났다. 서기 일지를 가지러 간다는 핑계로 아침부터 저녁까지 문이 닳도록 드나들며 선생님들 간식을 야금야금 먹던 따뜻한 교실이 그날만큼은 청송교도소 아니 안기부 심문실이다. 차디찬 냉기가 도는 그곳에서 난생처음 따뜻한 놀이터였던 학교에서 냉랭한 공기를 맡았다. 그래도 나는 쓰고 싶다. 신문방송학과! 공부 대신 놀면서 충분한 이력을 쌓았고 타고난 음색과 작문 능력은 늘 성적표에 그나마 좋은 문장들을 채워주었으며 또 나름 3학년 때는 머리 싸매고 달렸다. 끌어 올렸다 내 성적. 쑤욱. 어느 정도까지는. 흠.

역시 담임 선생님은 미래의 내 남편의 이름을 차용할 자격이 있었다. 1학년 방송반 테스트 낭독때부터 쭉 나를 예뻐했던 운명적 만남의 정생수 선생님. 방긋 웃으며 그 찬 공기를 따뜻하게 데워준다. “그래 어디 쓰고 싶어?” “진짜 여기 쓸거야?” “음..성적은 한참 못 미치는 거 알지?”

네, 그래도 자신 있어요. 쓸래요.

역시 놀아본 애들은 배포가 크다. 한다면 한다. 나는 여기서 끝. 그런데 에라?

“응, 오케이 좋아 그 자신감. 그럼 부모님 동의가 필요하니까 아버님께 전화 드린다”

아뿔싸 이건 아니지. 우리 아빠는 고이 감춘 내 정성 덕에 한참 낮은 내 성적도 모르시는걸요. 게다가 나는 한 번도 아버지를 아빠로 편하게 불러본 적이 없는 급 존대, 극 예의를 따지는 보수 집안의 대화체가 싫어서 수학여행을 가서도 잘 도착했다는 전화를 걸어 아버지가 받으면 그냥 끊어버리는 사춘기 딸이었다. 그땐 그게 자존심이 상하고 부끄럽고 그냥 싫었다.

따르릉. 딸깍.

“네, 안녕하세요 아버님. 저 진이 고3 담임 정생수입니다”

아빠 아니 아버지와 내 12년 동안의 초중고 담임으로서의 첫 콜이 성사되는 현장이었다.

“아 네, 그럼 진이 바꿔 드릴께요”

엥? 눈이 휘둥그레진 나를 멋쩍게 바라보시는 선생님의 눈동자가 언제부터 그레이 빛이었을까.

“네, 아빠..아 아니 아버지”

내 학교 인생 12년 중 처음으로 학교에서 마주한 아빠의 수화기 너머에서는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지는 아버지의 목소리가 정확하게 들려왔다. 한 받침의 오차도 없이.

“국어 국문학과는 무슨 국어 국문학과. 이 IMF에 거기 나와서 뭐하고 먹고 살래. 아무말 말고 너네 선생님한테 말해놨다. 집 앞에 00공대나 가라. 알겠제?”

“네에” 뚝. 또르륵. 핑. 고개 푹 인사. 툭툭 “힘내” 애썬 말 한마디. 그래도 감사합니다.

한껏 뜨거워진 뺨에서 물줄기가 흐른다. 겨울 눈물은 차가워야 정상이지 않은가. 근데 너무 뜨겁다. 시린 바람에 한껏 메마른 붉은 뺨을 타고 콧등으로 입술로 함께 흐르는 콧물이 섞여서 아린다. 그래, 내 주제에 무슨 신문방송학과. 무슨. 그래도 담임 선생님의 유난한 예쁨을 받으며 국어국문학과까지 장학금은 받겠다는 안도감으로 완성한 초고를 들고 두 주먹 불끈 쥔 통화였다. 그렇게 끝났다 내 고3은. 그리도 청명하게 맑았던 나의 10대는. 그레이 빛을 가득 안고선 1막 끝. “에이c” 왜 하필 1997년 겨울. 왜 하필 IMF. 왜 왜 왜 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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