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마지막 이야기
삼중음성 유방암 (not bad)
결혼 전 20대에는 기자를 했고 육아와 함께 시작된 교육열은 나의 전공인 수학을 다시 쓸 수 있게 해주었다. 수학 강사로서 학원과 대학에서 학부모들을 줄지어 서게 하면서도 어쩐지 내 마음속에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가 있었다. 애초에 교사로 살아가는 언니들과 같지 않으려 교대를 피하고 교직 과정을 이수하지 않은 건, 한 공간에 머무는 꾸준함이 나와 맞지 않기도 해서였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흥미로운 이야기들에 매료되는 직업이 나와 맞았다. 마흔 세 살의 나는 직업을 유지한 채 한국어교육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이수하고 자격증을 취득했다. 거기에 큰 마음을 먹고 시작한 영어학원에서 20대 대학생들과 영어권에 충분히 노출되어 있는 비지니스맨들 사이에서 1년의 과정을 마치고 고급 영어 레벨에 접어들었다. 이제 남은 건 AL과 부가적인 자격증들을 조금 더 취득한 후 직업을 전향하는 일이었다. “나이 먹어서 직업을 바꾸어 신입으로 시작하는 게 쉬운 줄 아느냐, 몸 고생 마음 고생한다”는 주변의 만류가 있었지만 해보고 힘들면 본연의 직업으로 돌아오면 그뿐이었다. 내 인생의 오랜 버킷리스트였던 영어 공부가 1년 6개월을 넘기면서 영어 독서 모임도 함께 시작했다. 아직은 서툰 나를 알기에 한글판을 먼저 읽고 영문을 읽으니 읽는 재미가 생기고 속도가 붙었다. 38도의 무더위를 지나고 한여름의 더위에 시원한 바람이 한 줄기씩 얹어져 이제 좀 살만하다고 느껴질 때 즈음, 연초부터 불편했던 가슴 중앙의 멍울인지 뼈인지 알 수 없는 동그란 돌기 하나가 마음이 쓰였다.
“얘들아 엄마 여기 좀 만져봐”
“엄마 뭐하는 거야? 왜 병원 안 가? 그럼 나도 감기 걸려도 병원 안 갈래”
아이들의 성화에 못 이겨 병원을 예약하고도 괜히 아무것도 아닌 걸 가지고 병원까지 가야 할까 하는 생각에 두 번이나 예약을 미루다가 결국 여름을 넘기고 9월을 맞았다.
“조직검사를 빨리해야 할 것 같네요”
“네? 뼈 아닌가요, 선생님?”
“뼈가 아닙니다. 멍울 사이즈도 큰 편이고 검사를 해봐야 정확하게 알겠지만, 유방암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아닐 수도 있구요”
어리벙벙한 내가 안쓰러우셨는지 다음날 초음파 일정을 잡아주셨고 그로부터 며칠 후 나는 내 인생의 그래프에서 한 번도 예상하지 못했던 무거운 말을 들어야 했다.
“초음파로 보았을 때 멍울의 모양이 좋지 않습니다. 이런 경우 거의 대부분 암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마음을 단단히 잡으시고 조직검사를 진행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협력병원인 유방외과에 제출할 의뢰서와 초음파 CD를 받으며 내 마음은 의외로 덤덤했다.
‘아 이런 거구나. 이렇게 암이 발견되는 거구나’
그 정도 생각일 뿐이었다. 아직 감정의 너울은 출렁거리지 않았다.
무엇이든 알아야 마음이 놓이고, 아는 만큼 잘 받아들이는 성격 탓에 그날부터 블로그와 유투브 그리고 서점에서 대표적인 유방암 관련 책들을 구매해서 읽었다. 그리고 며칠 후 조직검사. 국소마취를 하고 총알을 6번 쏘았다. ‘아프다. 그런데 만약 암이라면 이 정도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겠지. 주님, 살려주세요. 제발 암이 아니게 해주세요.’
일주일 후에 찾아간 병원에서 앞의 환자와 친정엄마로 보이는 보호자가 함께 나오며 눈물을 흘렸다. “오늘부터 산정 특례 적용 되구요~” 친절한 간호사의 안내가, 국가에서 준다는 혜택이 그리 반갑지 않은 건 아마 처음이었을 것이다. 내 차례다. 아닐거라고 생각했기에 마음이 덤덤한 상태였지만, 서론이 긴 선생님의 1분 말씀이 직감을 흔들었다.
“안타깝게도 암입니다. 최소 2기 이상 예상되구요. 유방암은 기수보다 유형이 더 중요해서 검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며칠 내로 전화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그렇구나. 이제 드디어 내가 암이구나. 함께 간 남편은 눈시울이 붉어졌다. 적잖이 감정이 흔들리는 것 같았다. 나는 그런 남편을 소파에서 쉬게 하고, 왼쪽 가슴과 림프에서 의심되는 두 개의 혹을 확인하기 위해서 추가 조직검사를 두 번 더 해야 했다. 역시 아프다. 그래도 이건 아무것도 아니다. 이제 내 삶에 고통과 아픔이 점점 더 커질 것이다. 마음을 잘 잡아야 한다. 울먹임도 요동함도 없는 내가 남편도 의사 선생님도 의아하고 신기한 것 같았지만 나의 평정심은 힘든 터널을 잘 지나가기 위해 스스로 닦고 달래는 연마작업 같은 것이었다. 힘들 때일수록 나의 그런 기질은 항상 발휘되어왔다.
오후 5시 진료라고 했던 엄마가 밤 9시까지 들어오지 않자, 아이들은 뭔가 좋지 않은 예감이 들었나 보다. 남편이 아이들을 불러서 우리 네 가족이 오랜만에 둥글게 둥글게 앉았다.
“얘들아, 아빠 말 잘 들어봐. 엄마가 몸이 안 좋데. 암이래. 그래서 앞으로 잘 치료 해야 한데”
큰딸은 자기가 사춘기 내내 애먹여서 엄마 아픈 거 아니냐며 울었고, 둘째는 미안하다며 울었다. 나는 그런 거 아니라며 아이들을 토닥이고 엄마가 잘 이겨내겠다며 웃었다. 그날 밤 나는, 토요일마다 있는 대학 강의를 준비하고 잠이 들었다. 다음날 수업을 잘 마치고 교수님들과 잠시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치료 잘 받고 건강해져서 빨리 돌아오세요” 그들의 한결같은 응원과 나 대신 울어주는 슬픈 표정에서 큰 위로를 받았다.
집에 돌아왔다. 이제 나는 완벽한 암환자로서의 내 삶을 받아들이고, 앞으로 진행될 과정을 잘 준비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내 힘으로 지혜롭게 해결할 수 있는 것도 있을 것이고 내 정신력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또 다른 난제들도 만날 것이다. 그리고 그 또한 결국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진아, 그동안 잘 살아왔어. 어린 나이에 시작한 서울살이와 결혼 그리고 온전히 혼자 힘으로 잘 해낸 두 딸 육아, 또 늦었다고 할 때 다시 기세를 펼치고 당당했던 10여년의 수학 강사로서의 생활과 한국어와 영어 공부까지. 참 열심히 살았고 재밌게 살았음에 감사하다. 앞으로의 삶이 내가 꿈꾸고 준비했던 오십(50)과 많이 다를 수도 있겠지만, 무엇이든 잘 받아들이는 유연한 어른이 되고 싶었던 성품 훈련만큼은 앞으로 2-3년간 잘해나갈 수 있지 않을까. 힘든 터널을 통과하고 나면 나는 다시 잘 달릴 수 있는 기력과 함께 터널 끝에서 다시 눈부실 오십을 맞을 수 있을 거야. 잘 받아들이자. 그리고 잘 지나가자. 난 스스로 널 믿어♡ 사랑해 고마워. 꼭 행복하길 바래!
슬픔이 배가 되었던 소식은 내 유방암 타입이 삼중음성이고 ki67 지수가 높다는 것, 그 가운데 내 마음에 감사와 용기를 주었던 소식은 추가 조직검사에서 림프절 전이가 없었고 브라카 유전 검사는 이상 무, 나에겐 유전적인 요인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그래 not bad! 할 수 있다. 이제부터 내 이야기는 잘 먹고 잘 자고 잘 걸으며 나를 돌보는 것이다. 슬픔만큼 기쁨도 가득했던 지난날에 감사하며 준비운동 후에 다시 뛸 수 있을 그 날을 준비할 것이다. 누구보다 밝은 미소로 환할 나의 50 다이어리는 그때 다시 구입할 것이다. 그리고 예쁘고 정성스러운 하루하루를 써 내려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