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드디어 내 인생 세번째 이야기
용서가 안 되는 이해 (부제: 메아리처럼)
어젯밤 우리 가족을 태운 기차는 늦은 밤이 되어서야 용산역에 도착했다. 여행의 즐거움은 항상 출발 전이다. 다이어리에 표시된 형광펜 밑줄 쫙. 설레는 마음에 자가 어디 있는지 찾을 새가 없었는지 돌이켜보면 내가 그은 밑줄은 늘 삐뚤삐뚤 비틀비틀 걸음이다. 출발 전의 내 마음이 그랬다. 술에 취한 글씨처럼 그들을 다시 품고 사랑하겠다는 큰 결심으로 또다시 하행선을 타러 가는 들뜬 마음 음음음. 내가 탄 기차는 다시 나를 제자리로 돌려놓을 테고 나는 그 시간이 꿈이었는지도 모른다며 또 잊을 요량일 것이다. 인간의 행복은 망각이라지만 잊으려 애쓰는 마음은 고통일 뿐이다.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파란 양동이 가득 검은 물에서 올라오는 시큼한 쾌쾌함을 실어나르는 청소부 아주머니에게도 “감사합니다”를 잊지 않는 나였다. I mean, 세상에 귀천은 없으며 모든 사람은 인격적으로 존중받고 마땅한 감사가 들려지도록 마음을 표현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적어도 나는 그런 환경에서 배우며 자라왔다. 그래서 우리 아빠는 대학원을 두 번이나 다니셨고 그들은 중고등학교 졸업이라는 차별적 언어로 양가를 비교하는 것이 얼마나 비열한 것인지를 알고도 적고 있음이다. 적어도 그들보다 더 나은 가정에서 인격적으로 사랑받으며 배우고 자란 나에게 그들의 언어와 비언어는 내 지난 시간 어디에서도 마주한 적 없는 폭력이었다. 이제 큰 딸이 스무 살이 되었고 그들의 비열함을 내 딸이 보고 있다는 것은, 그간 꾹 참아온 자괴감을 충분히 깨우고도 남을 새벽을 선물한다. “나는 엄마처럼 안 살 거야. 그렇게 살기 싫다고!”라고 이 순간만큼은 나의 어린 그녀들이 속으로 외치며 말해 주길. 가슴 깊이 바라며 쓰라린 내 마음을 어루만질 뿐이다. 낫는다 낫는다 낫낫not. 그들을 향한 나의 희생도 낫, 사랑을 걸고 희망을 품으며 또다시 나섰던 지난 여행도 여전히 현재 진행 중인 상처만 들추어낸 여정이었다.
“우리 예쁜 손녀, 아이고 귀여운 내 손녀, 우리 멋지고 자랑스러운 아들 잘 지내라” 이이이~
그들의 배웅과 돌이켜 보는 마중에는 등장인물은 늘 세 명이었다. 지나가는 아낙네라든지 서울 여자1 같은 엑스트라는 있겠지-기대하며 눈을 비빈다는 게 엉덩이를 비빈 건지 그들과 밤을 새워 찍은 나의 독립 영화 ‘메아리’는 늘 End credits에 내 이름 아니 등장 1도 언급하는 일 따윈 없었다. 방학식을 마친 두 딸을 부추겨 그들을 위한 여름 방문을 계획하고 도착하자마자 소매를 걷고 시작되는 나의 일과가 자정 취침과 새벽 불침번으로 이어져 다섯 손가락의 거칠거칠함이 지난 내 결혼 인생의 촉감임을 느끼게 하는 귀경길에는 내가 탄 기차가 KTX인데도 나의 승차감은 덜덜덜 경운기. 내가 좋아했던 경운기는 할아버지의 온정 가득한 추억이고만 싶은데 그들이 내게 남겨주는 덜덜함은 KTX 창문 난간에서부터 올라오는 냉기에 저절로 감싸 안게 되는 애달픈 내 몸과 마음의 감기로 스며든다. 여전히 새 살이 돋지 않은 딱지 앉은 상처들을 긁적긁적 극극극 극구 긁어 부스럼이 되는 그 딱지를 다시 긁어낸다. 시큼한 냄새. 하얗게 드러난 자리에 붉은 동그라미 하나가 아프게 남아있다.
우리 엄마 아빠가 나를 길러주실 때 나는, 한여름 모기 바늘마다 호호 입김을 불며 둥글둥글 둥글게 자라라는 듯 부모님이 발라주시는 물파스의 시원한 호사를 누렸었다. 내 위로 쭉쭉쭉 뻗어 줄지은 큰 언니들은 나의 호호호 호위무사. 아프지도 않은 모기 상처에 지나가며 한 번씩 언니인 척 엄마처럼 호호호 입김을 불고, 그 모습에 까르르 호호호 드러나던 애굣살이 곧 나의 새살이 되던 시간이었다. “애비 잘 챙겨 먹이라이. 애비 얼굴이 왜 저렇노. 애들 건강 잘 챙겨라이. 애들 옷도 좀 예쁜 원피스로 입히고” 고고고. 이이이. 노노NO! 더 이상의 메아리는 싫다고 말해야 하는데 외쳐야 하는데 몸부림쳐야 하는데. 스무 해를 넘기며 익숙해진 할아버지 할머니와의 작별은 내 두 딸의 입도 봉하게 했을 것이다. 마지막은 해피엔딩이라니까. 엄마의 긴 무명 같은 blank credits은 두 눈 꼭 감으면 그뿐이라는 것을 나를 잘 아는 우리 딸들이 모를 리가 없지만 그들의 마지막 인사를 미소로 회피하는 것이 항상 내겐 낯설지만 익숙해져야 하는 아픔이다. 용서해야 하는 이해, 용서가 안 되는 이해.
온전한 힘을 다한 온정으로 살아온 지난 시간. 그들의 현관 앞에 벗어진-무심코 밟고 지나간 내 운동화를 또다시 마음 아파하며 모양 잡게 한다. ‘걸어보자 살아보자 다시 와보자’ 자자자 그냥 자.
겨우 두 시간 눈을 붙인 내 단잠을 깨우는 그들의 비열함이 갈비뼈 아래 어딘가의 통증을 매만지게 하며 새벽을 깨운다. 그렇게 깬 새벽은 동이 터 갈수록 더 선명하게 지나 한, 한 맺힌 상처들을 극극극 긁어내 시큼한 냄새를 들추게 할 걸 알면서도 통증을 매만지며 깨운 내 단잠은 ‘끝끝끝 끝인사 그 한마디가 뭐라고’에서 멈추어 졸음을 싹싹 긁어 날려버리게 만든다.
아파트 문을 나서며 만나는 청소부 아주머니, 아파트 입구 경비실 아저씨 그리고 이름 모르게 비켜 가는 사람들에게도 다정한 곁눈질과 인사를 건네라고 배웠건만. 자신들이 그토록 아끼는 손녀들과 오십의 허들을 닿을 듯 말 듯 넘고 있는 아들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는 그들의 손에서만큼은 온 마음을 담은 온기가 있었으리라. 그 온기가 내가 사랑하는 나의 세 식구에게 전해져 세상의 핏줄에 의지하며 따뜻한 마음으로 살아갈 용기가 전해졌다면 나의 이박삼일의 상하행선의 부푼 기대와 여정은 또 그렇게 토닥토닥 닥닥닥 닦달을 해가며 달래는 새벽을 지나면 그뿐이다. 나는 몇 달이 못 되어 그들을 또다시 마주하기 위해 캐리어를 꺼내고 짐을 꾸리고 또 냉기가 스멀스멀 올라오는 KTX에 몸을 실을 것이다. 그때를 위해 내가 떼어낸 딱지는 다시 덮어두어야 한다. 새 살이 돋을 것이라는 희망과 못 고칠 병은 없다던 부모님의 사랑을 그리워하며. 그러나 단 한 가지-적어도 내 딸들이 그들의 눈에 담기는 엄마의 무명 생활이 당연하다거나 두렵다거나 시큼하다고 느끼지 못하도록 “세상의 모든 시댁이 그런 건 아니야. 너희가 느끼는 할아버지 할머니의 지금 온정 그대로 대하며 사랑하는 것이 대부분의 부모이며 시부모이며 가족이란다. 너희에겐 반드시 돌아오는 이름의 End credits가 있을 거야”라고 이제는 다 큰 나의 딸들에게 여행의 설렘을 빌어 말해 준다. 만약 결혼이라는 것을 꼭 하고 싶다면 절대 엄마처럼 살지 마. 나 지금 너무 아파. 힘들단 말이야. 근데 엄마가 배운 상식으로 엄마는 그렇게 믿을 거야. 그들이 내뱉은 메아리가 다시 그들에게 언젠가는 들려지길. 그들이 만든 인위적인 무표정과 비언어적인 싸늘함이 그들의 노년의 거울에 비추어지길. 때가 너무 늦지 않을 즈음엔 내 손 한번은 은은은 은젠가 잡아줄 수 있는 용기가 있길. “미안했다 고마웠다 애썼다” -적어도 지금 그들이 마주한 팔십의 세월 동안 한 번도 내뱉어 본 적 없는 온정의 언어일지라도 그 소리 한번 꺼내어 말해 주며 내게도 그들을 위한 세월에 이름이 있었음을, 적어도 그들이 밟고 지나간 현관 앞자리에 내 운동화 한 켤레가 포함된 네 켤레가 나란히 정돈되어 그날을 기다렸음을 깨우쳐주길. 그들을 위한 기도로 흑흑흑 흙더미가 된 내 마음의 공사를 다듬어 아침을 새로이 맞는다. 오늘은 또 오늘의 도로를 내어주어야 하니까. 아직 톡톡톡 다져주지 못한 상처는 살포시 메꿔두고 또 오늘의 해를 반가이 맞을 뿐이다. 용서가 안 되는 이해로 내 부모님의 따뜻했던 이름 석 자를 내 이름 앞에 되새기면 내 심장의 두 방에 온기가 가득 모여 다시 사랑을 품는 어리석고 건강한 내가 되면 그만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