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뒤죽박죽 세번째 이야기
우연한 용기
동아리방 기도 모임에는 계속해서 K선배의 N차 시험 합격을 위한 기도 제목이 올라왔다. 당시 나는 졸업이나 취업 심지어 사학년이라는 의식도 없을 때였는지 모임에 참가하면서도 처음 듣는 외계어를 흘려보내기에 바빴다. 4년을 매일 자리 맡기 출퇴근을 했던 도서관 오른쪽에 공고문을 붙이는 게시판이 존재했다는 것을 처음 의식한 그날 거기에도 K선배의 ‘*성 □회차 합격을 축하합니다’라는 □회차만큼 네모반듯한 A4지가 붙어 있었다. 오늘 낮, 오랜만에 들른 동아리방에서 흘려들었던 외계어가 다시 귓바퀴로 들어와 읽히는 순간이었다. ‘좋겠네.’
아마 뭐라도 진작 시작해야 했던 사학년이었다. 절친했던 선배와 친구들은 갑자기 이리저리 분주히 움직였다. “너 지금이라도 동아리 들어와라. 같이 통계학 공부하고 공무원 시험 치자.”
몇 달 전 쌍쌍바 친구(우린 4년을 붙어 다녔다. 둘을 쪼개면 항상 뚱뚱하게 홀로서는 쪽은 나) 은정이도 동아리에 합류하면서 나는 혼자만의 시간이 더 늘었다. 아니 정확히는 점심시간을 쪼개어 학교 근처 병원에 입원해 계신 외할머니를 뵈러 다니느라 내 사학년의 봄·여름이 지나고 어느새 가을, 꽤 무르익은 가을이 된 것이다.
1학년 때부터 나를 좋아했던 영민 선배가 밥을 먹자고 했다. 나에게 직접 고백한 적은 없지만 동아리 모임 때 “나 진이 좋아해. 근데 걔가 날 좋아하진 않을 것 같아”라고 대놓고 발표를 했다며 학교 게시판에까지 이름이 걸려 총학생회의 관심을 받는 그 K선배가 헐레벌떡 내게 달려온 날이 있었다. 자기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나보고 어떡하라고. 어쨌든.
지금은 그 영민 선배가 데이트 신청을 해왔다. 나 대신 지고지순의 목걸이를 걸고 있는 선배의 단심이 고마워서 그날은 단숨에 오케이를 했다. 시내 한복판, 파스텔톤의 예쁜 카우치들 사이로 선배가 날 안내하고는 먼저 고르라며 하얀 메뉴판을 건넸다. 파스타가 나오기를 기다리면서 유리창 너머를 보는 듯 어색하게 나를 응시하면서도 목소리에는 힘을 실은 영민 선배가 물었다.
“너 졸업하고 뭐 할거야 뭐하고 싶어?”
음. 그러고 보니 한동안 잊었었다. 내가 하고 싶은 것도, 좀 더 고급스럽게는 내 꿈을. 아빠가 원하는 공대에 들어온 것이 애석할 만큼 후회만 남긴 건 아니었다. 공대 여신이라는 말이 존재하는 이유는 공대에 여자가 귀하기 때문이었는데 IMF로 인해 장학금을 받고 지방에 머물러야 하는 가정이 나만큼 많아진 건지 1998년은 이례적인 여학생 입학률을 기록했고 시대를 앞서갔던 AI 공대남들은 그제서야 치마를 입고 캠퍼스 잔디밭에 앉은 여학생들을 동화책 가상 현실이 아닌 현생에서 볼 수 있었다고 선배들은 전했다. 어쨌든 나도 공대에 온 이상 공대 여신으로 생활할 수 있었고 내가 원하던 인문 사회관에서는 받을 수 없을 만큼의 사랑을 아마도 받았을 것이다. 졸업을 앞둔 나는 사랑받은 자신감과 안정감 그리고 꽤 중성적인 대화력까지 갖춘 사학년이 되어있었다.
“음, 꿈이 있긴 했는데 너무 옛날 얘기라서요. 고등학교 때까지는 방송반을 하면서 신문 기자가 되고 싶다, 백지연 같은 아나운서가 되고 싶다가 꿈이었지만 공대 입학하면서 다 지웠어요. 지금은 하고 싶은 게 없구요.” 그게 지난 4년에 대한 내 단념이고 내가 미처 용기 내지 못한 미래였다. “뭐 어때 지금이라도 해봐. 내 생각에 기회는 올 거고 넌 할 수 있을 거야.” 피식하려던 참에 로맨틱한 하얀 접시에 플레이팅 파스타와 빵, 스프가 나오면서 우리의 대화는 그렇게 끊겼다. 고마운 선배, 고맙다. 공대 여신으로서의 나의 자존감은 한껏 높아져서 데이트 신청마다 일침을 놓는 깍쟁이가 된 나였다. 영민 선배에 대한 나의 예의는 적당한 거리를 지키며 일심을 다해 준 것과 지나친 느끼함을 들려주지 않았음에 대한 보답이었다. 그런데 졸업을 앞두고 내 앞에서 마지막 고백을 용기 낼 수 있었던 그날, 선배는 고백 대신 나의 인생에도 좌표판이 있음을 알려주었다. 손 대신 말로 툭. 고백 대신 조언 툭. 피식.
일주일쯤 후 K선배의 □회차 합격 공고문을 다시 발견하고 돌아서려던 참에 나의 고개를 다시 돌리게 만든 바람 같은 하얀 종이가 있었다. 00저널 기자 구함. 대졸 이상. 000-000-0000
지금의 거침없는 나의 성격은 아마도 2021년 가을부터 불었는지도 모른다. 때로는 계획을 세우고 움직일 때도 있지만 선 움직임 후 계획 잡기도 가능한 나는, 그날도 역시 그랬다.
“여보세요, 공고문 보고 전화드렸는데요” 목소리가 좋다는 칭찬이 진실이었는지 이번에도 통했다. “오실 수 있으면 오늘 바로 면접 가능합니다” 그렇게 나의 첫 직장 생활은 공고문에 붙여진 대기업 N차 합격자를 기다리던 수재들보다 족히 한 달은 빨리 시작되었다. 동아리방에 다시 감사 기도 제목이 올라왔다. 진이 선배 취업을 감사합니다. “축하해요 선배, 선배랑 기자 생활이 너무 잘 어울려요.” 컴공 용어로 이야기하자면 내 삶은 다시 초기화 된 것 같았다. 버그 제거 후 리셋, 아니 클라우드 저장 후 리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