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마지막 이야기
작은 변화들
30대에 육아를 끝내야 하는 열 가지 이유라도 찾듯이 나의 삼십 대는 쫓긴 듯 달리는 육아의 레이스였다. 까맣게 그을리는 게 싫어서(그리고 배고픈 게 싫어서) 하루치 양을 실컷 먹고 숟가락을 놓고서야 나가는 산책길에 자주 러닝 크루를 만난다. 한강이며 공원이며 시청역 청계천이며-대로가 잘 놓인 곳이라면 어디서든 자주 스치는 크루들이 이제 서울의 문화가 되었다. 그들은 문화를 이끌고 마케팅을 끌어내고 무엇보다 삶의 의욕과 바램을 준다. ‘내가 아직 어린 몸뚱아리였다면 저기서 같이 뛰었을 텐데’ 나이를 핑계 삼은 넋두리에는 부러움과 그리움이 담겨있다.
그들의 젊음도 아름답지만 함께 하는 그들의 발맞춤이 부럽다. 내 인생은 무언가 급한 듯 항상 남들보다 조금씩 빨랐다. 거짓말을 일삼는다는 ‘엄마’의 증언에 의하면 돌이 지나고 요강에 앉힌 아기가 그로밋처럼 인상을 한껏 구기더니 응가를 했다고 한다. 그 뒤로는 “쉬~”하면 쉬를 하고 미간을 찌푸리면 요강에 앉히면 되니 천 기저귀로 키워내야 했던 그 시절에 나는 시작부터 효녀였다. 조금 느려도 충분히 기다려주었을 막내였는데 무엇이 그리 빠르고 싶었던 건지. 그 뒤로 네 살에 구구단을 노래로 떼고 초등학교에 가서 맞춤법으로 시험 점수를 잃고 오지는 않았다고 하니 엄마가 보기엔 막내가 수재로 보이셨을 테다. 계속 이어지던 ‘수’가 명문고 진학 후에 ‘우ㄹㄹ~’ 하락했지만 그래도 남들보단 빠른 것도 여럿 있었는데 그중에 가장 큰 것은 적응 능력이었다. 후천적으로 길러진 막내 근성이었겠지만 어쨌든 적응, 다른 말로 습득이 빠르다는 건 대학에 가서도 내게 좋은 평가가 이어지게 해주었다. 남들의 평가에 예민한 막내는 당근과 채찍을 쓰기에 가장 좋은 대상이지 않은가. 3학년이 되어야 보통 맡길 수 있는 동아리 전체 여회장을 2학년에 맡게 되면서 한 살 차이밖에 나지 않는 후배들을 챙기고 하늘 같은 선배님들도 끌어가야 하는 대업이 내게 주어졌을 때부터 딱 그때부터 나는 깨달았다. ‘빠르다는 것은 고단하다는 것이구나.’
남들처럼 응석도 부리고 밥도 실컷 얻어먹으며 자유롭게 뛰놀다가 제재도 당해봐야 할 나이에, 비빌 곳을 찾지 못하고 내 끼니 하나 챙기지 못할 만큼 주위 사람들을 돌아보며 크루의 안정을 위해 제재를 실현해내야 하는 리더가 너무 일찍 된 것이다. 일 년이 뭐 그리 빠르고 아까운 학년이냐고 묻겠지만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고작 사 년, 그중에 일 년이라면 말이 달라진다. 그래서 나에게 풋풋한 대학생 시절은 고작 일 년 남짓이었다. 남들은 아무런 직책도 맡지 않고 사 년을 보내기도 하는 동아리에서 나는 이리 뛰고 저리 뛰는 크루의 리더를 삼 년을 감당하고는 ‘일등 신붓감’이라는 칭호를 받았다. 그 속기 좋은 아니 속아 넘어가서는 안 될 말을 머리에 얹고 4학년 2학기에 시작한 직장 생활에서도 좋은 평가와 같은 칭호를 받아 가면서 참 열심히 달렸다.
참 잘한다. 차암 잘한다. 그놈의 ‘참참참’이라는 구호는 어릴 때부터 내게 참 쓰기 좋은 당근과 채찍이었다. 마치 “달려 달려 달려야 돼”라고 들려 오는 말. 나는 바람이 스치고 곁 나무에서 떼 지어 들려주는 듯한 그 새소리에 속아 열심히 달렸다. 스물다섯 살에 서른 살 내외의 팀원들을 이끄는 최연소 팀장이 되고, 모양은 조금씩 달라도 달려간 구간마다 마케팅력과 순수익 그래프를 올려주는 핵심 멤버가 되었으니 ‘나 참 뭐가 좋자고 그리 빨랐단 말인가.’
남들이 뛸 때 함께 뛰고 걸어서 쉴 때 뭐라고 좀 쪼개 먹고 하면서 같이 뛰어야 제맛이었을 텐데. 그래서 나는 땅거미 진 저녁 그들이 발맞춘 구보가 자주 부럽고 때때로 서글펐나 보다.
최근에 나온 ‘하마터면 시리즈’가 나는 완전 꿀 만족이다. 그중에서도 단연 1등은 초록색 표지 안에 바닥에 덩그러니 누운 한 사내가 대~애~충 한 겹을 걸쳐 입고 누워 덩그러니 팔베개를 하고선 본인 만의 여가를 즐기는 듯한 책인데 서점에 가서 볼 때마다 MZ들이 투자하는 재미있는 스티커 문구를 발견한 듯 50의 반란을 보여주는 듯한 내 남편을 닮은 사내의 모습에서 자주 웃음이 터진다. ‘그래, 저렇게 살아야지. 근데 너 참 좋겠다.’ 미안하지만 ‘너’라는 표현은 내 남편으로 보일 때만 툭 뱉어지는 속마음이다. 어쨌든. 그 책의 부제는 ‘나만의 속도로 살아갈 결심’ 목차는 온통 더 말고 덜! 그리고 맞추지 말고 ‘쌈, 마이웨이’이다. 그렇게 살아보지 못한 나로서는 속 시원하기도 하고 걱정되기도 하는 낯선 길. 참참참으로 속도를 올리며 살아온 내 인생을 향해 다른 당근과 채찍을 보내는 표지를 볼 때마다 넘겨볼지 애초에 다가가지 말지를 늘 고민하게 만든다.
남들보다 빨라서 좋았던 게 있다면 아이 입장에서는 엄마가 참 젊은 엄마였다는 것이다. 첫 딸만 키울 때는 이모냐는 소리를 당연한 듯 들어야 했고, 둘째를 키우면서도 초등학교 학부모 모임에서 수저 놓기와 물컵 따르기는 항상 내 담당이었으니 젊은 엄마, 거기서도 내 순번은 막내였다. 왕언니보다는 손이 빠르고 눈치가 빨라야 하는 막내. 뒤돌아보면 그런 눈치들을 살피느라 내 아이의 원함을 조금 더 살피지 못한 건 아닌지 내심 미안한 마음이 가득한 초등 육아였지만 어쨌든 나는 최선을 다했고 나의 30’ 싱글 프라임 기호를 떼기 전에 웬만한 육아가 끝이 났다. 큰딸은 초등학교 명찰을 중딩으로 갈았고 둘째는 나만큼 빠른 속도로 참참참 빨리 독립해주었다. 큰딸의 응석이 제법 길었기에 둘째의 독립이 애달프게 고마웠고 지금도 좀 더 오래 곁에 머물러 주지 못했음에 코끝이 시려온다. 그래도 두 딸을 초등학교 시절 동안 남들처럼 영수학원으로 돌리지 않았고 더욱이 큰 딸은 하고 싶은 예체능마다 뒤 따라다니며 도전을 즐기고 무대를 즐기게 해주었으니 어릴 적 엄마가 한껏 치켜올렸던 눈을 딸 아이가 가져가는 중학교 입학 무렵까지는 최선을 다해서 길러 준 엄마였다.
‘차라리 빨리 가자. 차라리 빨리 가라’
힘듦이 닥치면 자연스럽고 익숙한 뇌새김을 하면서 빨리 빨리를 외치곤 했다. 육아 전담자들이 자주 하는 말, “내가 늙더라도 애들이 빨리 컸으면.” 언제나 그것은 두 아이 육아를 온전히 떠맡았던 내 나이 삼십 대의 싱글 프라임 기호를 떼어낼 때까지 자주 내뱉고 소망하던 불안의 소리였다. 뭐가 그리 급해서. 남들은 돈으로 시간을 사고 싶다는데. ‘흘러가라. 빨리 가라. 참참참 잘해라.’ 나는 어릴 때부터 유난스럽게 빠른 채찍에 익숙한 채 달려왔을까.
적게 먹으면 뛰다가 쓰러지지는 않을지, 조금 일하면 남들보다 뒤처지지 않을지를 걱정한다면 당신은 꼰대가 되는 시대를 맞았다. 지나가는 러닝 크루가 부러웠던 점 중 하나는 늘어진 뱃살이 없다는 점이었고, 적당히 일하고 뛰고 나서 또 적당히 일할 그들의 삶의 패턴이 그려져서인지도 모르겠다. 열심히 뛰는 듯 보이지만 적당함을 유지할 줄 알고 서로를 이끌고 맞춰주는 그들에게는 쌈 마이웨이의 속도가 있다. 운전대에 앉아 붉은색 푸른색 그사이 3초 그 짧은 시간에 목메다 보면 주위에 새로 생긴 작은 점포가 있다거나 자주 가는 카페에 도전해볼 만한 신메뉴가 생겼다는 것 정도를 인식하기에는 시간이 짧다. 그래서 바쁜 인생을 사는 사람들은 늘 부족하댄다. 돈이 부족하고 시간이 부족하고 그래서 친구가 부족하댄다. 술술 넘어가듯 술술 스친 사람 중에는 분명 내 오랜 친구가 되어줄 인연도 있었을 텐데. 초록색 표지에 자기 속도를 즐기는 아저씨가 알려주는 표제어 중에 이게 참 마음에 든다. 힘 빼고 그리기, 꿩 대신 치킨, (그래서 지켜지는) 딱 좋을 만큼의 자존감. 앞으로 내가 되새겨야 할 말은 참참참이 아니라 덜덜덜. 시골 경운기가 속도를 줄이고 벼 베는 이웃에게 말을 걸듯 그렇게 나에게 말을 걸며 걸어야 할 속도이다. 어차피 이제 빨리 걷기도 힘들다. 남들보다 빨라지면 후덜덜, 내 속도에 맞추기 위해서도 겨우 덜덜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