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 다이어리

30' 갓 생 세번째 이야기

by 코스모스처럼

순간순간 최선이었어


신종 플루-말 그대로 느닷없이 찾아와서 이례 없는 기록을 남기며 아픔을 준 신종 감기가 전 세계와 대한민국을 덮쳤다. 펜데믹. 마스크, 격리, 출입 금지, CLOSE 간판이 즐비한 가을이었다.

둘째를 기다리며 사두었던 청록색 아름드리 태아 앨범은 잠시 옆으로 재쳐 두고 병원에 계신 시할머니를 보살펴드리기 위해 일주일에 몇 번씩 중점 치료 병원을 드나들었다. 집에서 걸어서 내 걸음으로 10분 거리지만, 이제 겨우 네 살 먹은 아이를 오른손에 잡고 미적지근한 병원 밥에 감칠맛을 더해줄 반찬을 왼손에 들고서는 족히 3-4배 이상의 시간이 걸려서 찾아가는 걸음이었다. 대한민국에 하나밖에 없는(만약 효 대회에 출전을 하셨다면 당연 1등을 거머쥐셨을) 시아버지가 간호를 전담하시면서 저녁 숙식은 우리 집에서 해결하시고 출퇴근으로 할머니를 애달프게 살피셨다. 할머니라는 존재는 나에게 익숙하고도 그리운 냄새여서, 태어나서 2년간 10번의 폐렴을 겪은 아이 손을 잡고도 담대하게 간호할 수 있었던 것은 지나고 보니 그리운 품에 대한 힘이었을 것이다. 밤마다 무서운 기침을 하시면서 “며늘아, 물 좀 끓여다오”에 맞춰 자기 전 10시, 자는 도중 새벽 3시마다 반복해서 보리차를 끓여서 머무시는 동안 내어드린 큰 방 침대 머리맡에 가져다드리는 며느리의 극기적인 효도가 두 달여 만에 끝나갈 무렵, 할머니의 퇴원 날에 맞춰 상경하신 어머님이 퇴원비로 아버님과 투닥 거리시고는 다시 한 달 가량을 묵고 가셨다. 아 이 극기적인 삶, 아 이 태릉 같은 장손 며느리 인생 소집 훈련. 그 훈련의 지긋지긋한 끝자락에서 다행히 보답 같은 둘째가 찾아왔다. 참 오래 인내하며 기다린 생명, 반갑다는 마음이 앞선 만큼 입덧도 빨랐다. 첫째와 달리 화장실에서 두 줄을 발견하자마자 찾은 병원에서 만난 아기는 동그란 주머니, 이제는 많이 지워서 기억이 흐릿하지만 내 기억 속 첫 만남은 동그란 아기 주머니였다.

“나 여기서 이제 자랄 거예요. 의식주-사람이라면 자랄 집이 있어야지요”라고 말해 주는 듯 했다.

그 주머니 안에 분명 태초의 신비가 있었는지 그 주부터 정확히 입덧이 찾아왔다. 맑은 물을 한 컵 비워내기도 전에 노란색, 갈색 물까지 다시 되뱉어지는 입덧. 그 입덧을 장장 5개월을 버티고서야 평온한 임산부의 시간이 찾아왔다. ‘이놈의 버티는 인생, 그래도 찾아와줘서 고맙다.’

기다린 시간만큼 마음껏 태아 핑계를 대며 먹고 또 먹고, 배를 내밀고 더 내밀고, D라인 임부복에 내 몸매를 과감히 맡기던 시간을 꽉 채우고도- 한 주 그리고 25시간이 지나서야 신비로운 생명을 마주했다. 까만 머리카락과 큰 눈, 높이 솟은 코를 가진 예쁜 얼굴의 아이 ‘반갑다.’

허리와 배를 동시에 틀면서 하루를 꼬박 넘기고서야 만난 덕에 나는 오롯이 충분한 휴식의 밤을 보내고 새날이 밝아서야 신생아실을 찾았다. “아이가 예쁘게 생겼네요. 눈 코 입이 정말 시원시원해요. 그런데 울음소리가 너무 커서 한번 울면 신생아실 아기들을 다 깨워버려서...” 자기를 험담하는 듯한 간호사 선생님의 말을 듣고는 엄마 품에 안긴 아기는 또 한바탕 울음을 터트렸다. “흐흐 마음껏 울어라 아가. 네 감정대로. 조금 미안한 상황을 마주하더라도. 내 감정이 지금 그래요 라고 마음껏 표현하거라 아가야” 내 마음은 그랬다 솔직하게. 내게 찾아온 소중한 두 번째 생명을 대하며. 미안했지만 신생아실 옆 모자실에서. 내 예쁜 아가를 향한 세상의 첫 평가를 들으며 나는 언제나 그래야 하듯 당당하게 내 아이의 편에 서는 엄마의 첫 마음을 떼는 아침을 맞았다.


여름의 끝자락 8월 마지막 주에 태어난 첫째가 백일이 될 무렵, 겨울바람에 한 방을 맞고 칩거를 하면서 7개월이 되어서야 우리는 첫 여행 외출을 할 수 있었다. 그래서 둘째는 늦겨울이나 초봄에 만나고 싶었다. 야속하게도 꼭 그렇게 하길 원할 땐 바램 같지 않은 응답을 주신다. 그래 둘째는 한여름이다. 추석이 지나 무더위가 완전히 지나고 백일을 맞을 때까지 거실 한쪽에 자리한 벽걸이 에어컨에 산후조리를 맡긴 덕에 힘들게 출산한 몸에 바람이 들었다. 오뉴얼에 서리치듯 오한이 찾아오면 30도가 넘는 무더위에 오리털을 꽁꽁 싸매고도 입술을 파르르 떨면서 한 두 시간을 견뎌야 하는 산후통이 다행히도 모두가 잠든 밤 주로 새벽에 찾아왔다. 되돌아볼수록 가슴 저리게 미안할 만큼 순했던 큰아이는 두 눈 가득 눈물을 머금고 목구멍으로 엄마에게 할 말을 삼키며 분리불안으로 자신의 힘듦을 표현해왔다. ‘미안해 아가’라는 마음의 소리를 전하는 내 음성이 어찌나 매섭고 서리치던지, 한 아이를 키워내기 위해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보내주신 천사가 엄마라는 게 도무지 믿기지 않는 날카로움이 고스란히 큰아이에게 전해졌던 겨울이었다. 산후조리도 산후도움도 없는 겨울. 두 아이 전담 육아. 다행히 큰아이가 아팠던 기억을 안고 삼칠일이 지나 기적적으로 짧은 시간 안에 따낸 운전면허증으로 나는 수월하게 병원을 다니고 친구 집으로 외출을 하면서 둘째는 되도록 내가 좀 더 밝을 수 있는 시간과 장소를 찾아서 드라이브를 일삼았다. 집에서는 품에서 내리면 곧잘 깨어서는 큰 소리로 울어대는 소리 여장군이셨지만 카시트에 앉혀서 밝은 햇살을 보여주면 이내 감상에 젖어 눈을 끔뻑거리다가 소리나라로 여행을 떠나는 둘째였다. 잘 땄다 면허증, 후유.

큰아이 눈에 아빠를 그리는 눈물이 고이는 날엔 아빠 회사 앞으로, 친구와 놀고 싶은 날엔 친구 집으로 키즈카페로 우리는 보다 자유로운 육아를 서로 돕고 도우면서 그토록 소중한 시간을 최선을 다해 흘려보냈다.

큰아이의 분리불안은 초등학교 입학을 두 달여 앞두고서야 뜻하지 않은 방법으로 멈출 수 있었다. 바로 태권도. 내가 여장부 두 명을 낳았나 보다. 움직임 여장부와 소리 여장군. 흰 도복에 빨간 띠를 동여매고 “태 권 태 권”을 또박또박, 두 주먹을 엎치락뒤치락 움찔움찔. 그렇게 큰 아이는 좀처럼 안아주지 못한 마음을 자신 스스로 껴안으면서 ‘몸이 건강하면 마음도 건강해질 거야’라는 기세로 태권태권 최선을 다해서 성장해주었다.

그때 알았다. 아이들은 자유롭게 뛰어놀아야 한다는 것을. 특히 한 아이의 정서를 뒷받침해 줄 여건이 되지 않는다면 그저 자유롭게 소리 지르고 울고 뛰어다니면서 몸으로라도 말하게 해야 한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된 느린 엄마에게 보란 듯이 아이는 초등학교 6학년이 될 때까지 그 시간을 즐겨주었다.

'태권 태권 괜찮아 괜찮아, 태권 태권 괜찮아 괜찮아'라고.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7개월이 지난 삼월에 민낯에 감지도 못한 머리를 한껏 똥 치켜올리고는 가장 포근하고 예쁜 노오란 봄옷을 꺼내 입힌 아기를 안고선 찾은 우리 가족의 첫 외출은 코엑스 (지금은 사라져서 그리운) 반디앤루니스 서점이었다. 차분한 밤에 노오란 작은 별이 빼곡한 하늘을 올려다보는 아빠 곰과 엄마 곰이 불러주는 자장가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너를 위해 산 첫 책에는 분명 그 메아리처럼 되풀이되는 사랑스러운 말이 가득했는데. 그 예쁘고 따뜻한 말을 제법 큰 두께로 담아내고는 “이 가격이 백 배로 천 배로 아깝지 않게 아이 마음에 파고들도록 계속해서 말해 주세요”라고 알 수 없는 표식의 바코드 아래 가격을 새겨 두신 듯 했는데. 빛바랜 너의 첫 책을 애달픈 마음에 버리지 못하고 바라만 보면서 그렇게 엄마는 새 번역으로 네게 자주 들려주었지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온몸이 털로 가득한 엄마 곰돌이는 분명히 폭닥폭닥한 촉감 가득 최선을 다해 달려오는 아기를 따뜻하게 안고는 입꼬리를 하늘로 가득 올려줄 것만 같이 생겼었는데 분명.

미안해 엄마는 그러질 못했어. 한껏 치켜올렸던 내 얼굴 어딘가가 눈꼬리여서 미안해. 그래도 우리 순간순간 최선이었어, 그치? 네가 함께 애써주었기에, 또박또박 구령에 맞춰 앞으로 나가고 장벽을 찌르고 애써주었기에, 엄마도 순간순간은 엄마일 수 있었어 아가야. 미안해 고마워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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