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 먼지
영화 속 루시엔, 앨런, 잭은 뉴 비전을 통해 기존의 문학을 죽이고 새로운 시대의 문학을 열겠다고 말한다. 뉴비전, 이들은 뭘 그렇게 깨부수고 싶었을까? 영화 속 인물들이 깨고자 했던 금기는 무엇인지, 우리가 깨고 싶은 금기는 무엇인지. 금기에 대한 대화를 나눴다.
영화 속 인물들은 무엇을 그렇게 깨고 싶었던 것 같아요?
먼지 사실 영화를 보면서 양가적인 감정이 들었던 것 같아요. 도서관에서는 조용히 해야 한다던지, 교수의 권위에 순응한다던지. 영화 속에서 이런 사회적인 규범을 깨고자 하잖아요. 여기에서 벗어나 행동하는 게 긍정적이고 낭만적으로 그려지고요. 솔직히 멋지긴 했죠. 그렇지만 제가 살면서 절대 하지 않겠다고 하는 게 마약이거든요. 그런 것들도 낭만적으로 그려지는 것은 그닥 긍정적으로 느껴지진 않았어요. 왜냐면 마약은 한번 시작하면 거기에 종속이 되잖아요. 금기를 깬다고 함은 나를 억압하는 것들에서 벗어나는 건데, 또다시 다른 것에 종속이 된다면... 그건 좀 위험하지 않을까요?
일영 저도 영화 속에서 꼽자면, 루시엔과 앨런 둘이 새로 태어나려면 먼저 죽어야 한다, 그런 문학의 구절을 따라 한답시고 지들 목을 매달면서 낭만적으로 하하하 웃는 장면이 있거든요. 사실 굉장히 위험한 행위잖아요. 영화 속 청춘스런, 낭만적인 느낌에 감탄하면서도 나만 너무 도덕책 같은가? 하는 느낌이 섞여있었던 것 같아요.
콜리 저도 하지 말라는 것들을 안 하고 살아온 사람으로서, 나를 고지식하게 여기면서 금기된 것들로 이끄는 친구가 과연 좋게만 보일까 이런 생각을 했었어요. (웃음).
하레 마약이나 술, 담배 같은 것들이 꼭 대표적인 해방의 상징처럼 많이 등장하잖아요. 그런 향정신성 의약품들이 말이죠. 그런 게 해방의 의미로 자주 쓰이는 게, 단순히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깨고자 하는 것인지 궁금해요. 그냥 단순히 금지되어있다고 해서 그런 것들을 할 때 해방감을 느끼면... 과연 그런 말랑말랑한 정신머리로 해방을 논할 수 있나 하는 생각도 들고요. (웃음) 한편으로는 만약 지금 우리 사회가 바람직하다고 여기는 것, 예를 들어 열심히 사는 것 같은 것 있잖아요. 이런 들이 금지된 사회가 되었을 때 사람들이 과연 열심히 사는 것을 저항이라고 느낄지도 긍금해요.
먼지 저는 그럴 것 같아요. '1984'나 '핸드메이즈테일'을 보면요. 단순히 일기 쓰는 것이나 책을 읽는 것 같은 지적인 활동이 엄청난 일탈이거든요.
콜리 공감해요. 뉴비전이라고 하면서 기성세대의 문학에서 벗어나고자 했지만, 결국 이들도 기성세대가 되고도 한참이나 시간이 흘렀잖아요. 뉴비전의 문학이 주류가 되었을 땐 또 이 문학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시도가 있었겠죠. 결국 금지된 것을 깨는 것 자체도 해방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시대가 변할수록 무엇이 금지되는지가 달라지잖아요.
자연스럽게 다음 이야기로 넘어가자면, 삶을 살아오면서 내가 깨고 싶은 게 있었는지도 궁금해요. 깨보지 않았지만 요즘 사회가 강요하는 금기들, 시대론적인 이야기도 좋고요.
콜리 저는 '온실 속 화초'라는 이미지를 평생 탈피하고 싶었어요. 어느 정도였냐면 성인이 되고 첫 알바를 지원할 때, 평생 온실 속 화초로 살아서 사회경험해보고 싶어서 지원했다 할 정도였거든요. 물론 그런 이미지가 좋고 나쁘다는 것을 떠나서, 너무 오랫동안 그런 이미지로 받아들여졌던 것 같아 깨부수고 싶어요.
일영 저는 여성의 몸에 대한 보수적인 관념들을 깨고 싶어요. 한국에서는 브라탑은 입지도 못하고, 탑은 커녕 민소매 같은 것도 야하다는 식으로 취급되잖아요. 그런 것 너무 싫어요. 노브라도 같은 맥락이죠. 몸이 드러나는 것은 곧 야하거나 섹시하다? 이런 인식을 정말 깨고 싶네요. 싫어요!
하레 저도 비슷한데, 저는 정상가족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고 싶어요. 저는 스스로가 비혼주의자라고 생각하거든요. 평생을 혼자 살고 싶고 로맨스 자체가 싫다는 게 아니라, 꼭 새로운 가족을 이루기 위한 방법이 혼인은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말이에요. 어떤 사람과 일대일의 관계를 맺고 공식적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는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그치만 혼인이라는 것 이외에, 가족이라는 관계를 정의하는 새로운 방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꼭 결혼해야만 가족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잖아요.
먼지 공감해요. 한국 사회에서 결혼은, 반려자를 만나 함께 산다는 그 본질 자체를 흐리는 것들이 많은 것 같아요. 여러 전통들이 그렇죠. 저도 깨고 싶은 것 중에 하나예요.
저는 제가 가진 수많은 도덕적 당위를 깨고 싶어요. 저는 수많은 당위들을 가지고 살거든요. 이렇게 해야 해, 저렇게 해야 해 같은. 그중엔 도덕적 당위도 있죠. 저는 그래서 법이나 규범을 어기는 것을 그렇게 즐기는 타입은 아니에요. 그치만 이런 당위에서 벗어나고 싶기도 해요. 나한테 이렇게 이렇게 해야 해!라고 말하는 것들이 나를 갉아먹을 때가 많거든요. 한편으로는 깬 이후의 제 모습이 궁금하기도 하고요.
하레 당위 이야기를 해서... 저는 완벽주의가 되게 심한 사람이거든요. 계획을 엄청 빡빡하게 세워요. 문제는 계획 중 하나라도 무너지면 웬만하면 다 무너질 때가 많거든요. 8시부터 일어나야지, 했는데 10시 반에 일어나면 그냥 자버리는 거예요. 하루를 다 망쳐버리고 싶은 마음이 들어요. 그럴 때 묘한 쾌감까지 느껴지고요. 배덕감이라고 하잖아요? 뭔가 그 배덕감을 크게 느끼는 사람들이 기존의 질서를 흐트러뜨리고 이런 것에 쾌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아닐까 싶기도 해요. 잘 풀리면 혁명이고 운동이지만, 안 풀리면 인생을 망치는 것이고요. (웃음).
먼지 단기적으로는 그냥 나를 깨보겠다! 하는 것도 유의미하겠지만, 좀 더 그걸 건강하고 지속가능하면서 나에게 해롭지 않게 그걸 끌고 가려면 내가 하고 싶은 게 있어야 할 것 같아요. 콜리의 인터뷰가 생각나는데요. 단순히 배덕감을 평생 가져갈 순 없잖아요. 그것도 하다가 하지 않을 때 느끼는 감정이니까요.
콜리 공감해요. 깨부수고 싶은 것 너머 내가 갖고 싶은 것이나 원하는 사회의 모습이 있는 거잖아요. 그게 있어야 깨부수는 것에 의미가 있지 않을까요? 사실은 뭔갈 원하고 있는 거죠.
먼지 결국 저항하기 위해서 뭔갈 깨부순다고 하더라도, 그것 자체에 종속되지 않는 선에서 저항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그렇다면 그냥 규칙을 깨보는 것 자체도 유의미할 것 같아요. 그 너머에 하고 싶은 것들이 있어야 더 유의미해지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