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 하레
<킬 유어 달링>은 대공황과 전쟁 이후, 끊임없이 기존의 틀로부터 벗어나려고 노력했던 비트세대의 삶을 그려내고 있다. 시대적으로도, 공간적으로도 전혀 관련 없는 현대를 사는 우리지만, 여전히 매력적인 영화라고 느끼는 것은 결국 어느 시기든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은 없기 때문일까. 우리 모두는 어쩌면 단단하고 아름다운 꽃을 피우기 위해 어느 정도의 흔들림을 필요로 하는지도 모른다. 흔들리는 청춘의 시기를 거치면서 <킬 유어 달링>을 사랑하고, 또 그만큼 질투하고 싶어하는 또 다른 ‘손민수’를 만나 봤다.
안녕하세요, 간단히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퇴폐와 거리가 먼 생활을 하고 있는 덴댠입니다. 그렇다고 바른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은 아니지만요. 하하.
이번 로버스앤러버스의 주제가 <킬 유어 달링>으로 정해졌는데요, 덴댠님이 특히 이 영화를 좋아하신다고 들었어요. 혹시 어떤 계기로 보게 되었는지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사실 청불 영화이긴 하지만, 저는 중학생 때 처음 봤어요. 그때 한창 남들과는 다른 취향을 갖고 싶어 했던 질풍노도의 시기여서 그랬던 것 같아요. 그때 제 주변에서는 다들 남자 아이돌을 좋아하고 있었는데, 저는 부러 미드, 영드, 해외배우들을 좋아했어요.
무엇보다도 제가 좋아하는 데인 드한과 다니엘 래드클리프가 함께 나오는 영화라니! 이건 당연히 봐야겠다고 생각했었죠. 그런데 막상 보고 난 감상은 ‘뭐야? 별로 재미없다.’였던 것 같아요. 뭔 내용인지도 잘 모르겠고, 그냥 잘생긴 얼굴만 주구장창 봤었네요… 그러다 대학생이 되어서 어쩌다 다시 보게 되었는데, 처음 봤을 때와는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더라고요.
맞아요. 같은 콘텐츠를 접하더라도 어느 시점인지에 따라 감상 포인트가 달라지기도 하죠. 그렇다면 덴댠님이 느끼는 킬유달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원래는 배우들이 좋아서 본 영화였지만 요즘에는 그 안에 담긴 사회적 배경을 읽게 돼요. 혼란의 시대에 그 청춘들은 얼마나 흔들렸을까요. 기존 사회를 더 이상 보호와 안전이 아니라 억압과 굴레로 느끼게 되면서, 그것을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치고 그 기록을 남기는 열정이 멋있어 보이면서 조금 질투도 나는 것 같아요. 특히 순응보다 저항을 택하는 모습을 보면서, 현실과 타협하는 저와 비교해 부러움과 동경을 느끼게 돼요. 또한 미친 것처럼 보이는 일도 함께할 수 있는 동료들이 있다는 것도요.
어쩌면 이렇게 사회적 배경을 먼저 생각하게 되는 건 대학에 오면서 얻은 학과적 특성일지도 모르지만… (웃음) 저도 모르게 시대적 분위기를 오롯이 느낄 수 있게 해 주는 작품을 계속해서 찾게 되는 것 같네요.
킬유달 안에서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를 꼽자면?
예전부터 꾸준히 데인 드한이 연기한 루시엔 카를 좋아하긴 해요. 배우와 캐릭터 모두 제 취향이거든요. 루시엔 카의 어디에도 묶이고 싶어하지 않는 자유에 대한 갈망과 동시에 보이는, 그걸 이미 가진 듯한 여유로움이 매력적이어서요. 그런 여유를 저도 갖고 싶다는 생각을 늘 했거든요. 데인 드한 특유의 퇴폐미와 소년미가 공존하는 분위기도 한몫하죠. 근데 최근에는 벤 포스터가 연기한 윌리엄 버로우즈가 눈에 들어오네요. 묘하게 한 발짝 떨어져 무관심한 것 같으면서도 관망하는 듯한 위치와 눈빛이 기억에 남아요.
줄거리 대부분이 루시엔 카를 중심으로 흘러가지만, 주변 인물들 모두 특징이 뚜렷하고 그것이 작품에서 은은하게 계속해서 드러난다는 점이 매력적이죠.
맞아요. 앞에서 퇴폐, 저항과는 거리가 멀다고 스스로를 소개했듯이, 저는 좋은 게 좋은 거지~ 하는 타입이거든요. 본인을 억압하는 것을 인지하고, 그것을 깨고 싶다고 생각하면서 같은 뜻을 가진 사람들과 뭉쳐 무언가를 이루어 낸다는 것, 그 자체가 저는 가장 큰 매력이면서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킬 유어 달링>을 추천하고 싶은 사람들이 있으신가요? 아니면 아직 안 본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영업용 멘트가 있다면 여기서 풀어 주세요.
하하… 사실 비주얼! 그들의 비주얼만으로도 충분히 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저처럼 인간의 행위와 사회적 배경을 연관 지어 생각하는 사람들이라면 한 번쯤 보면 좋겠어요. 비트 세대는 ‘상실의 세대’라고 불린다고들 하잖아요. 대공황과 전쟁을 지나 심화된 물질주의의 영향력은 사실 현대 한국 사회에서도 유효하다고 보거든요. 제발 한 번 보시고 저와 오래오래 함께 얘기해 주시길…
혹시 <킬 유어 달링>이라는 영화와 관련해서 더 하고 싶은 말씀은 없으신가요?
사실, 루시엔 카를 매력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무래도 감독이 영화에서 루시엔이라는 캐릭터를 그렇게 그려냈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해요. 실제 역사와는 조금 다른 내용들도 많다는 점이 꾸준히 비판되어 왔고요. 개인적으로 저는 영화 속 루시엔 캐릭터를 너무나도 사랑하지만, 실제 인물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을 생각했을 때 그를 그저 ‘매력적인 X놈’처럼 묘사한 것도 문제라고 보긴 해요. ‘뮤즈’라는 이름 안에 실제 인물을 너무 구겨 넣은 것 같다는 생각을 할 때면 마음이 불편해지기도 하고요.
그러한 비판을 고려해서, 에디터들도 이번 호에서 ‘뮤즈’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려고 해요. 혹시 덴댠님이 생각하시는 뮤즈란 무엇인가요?
어려운 질문이네요! ‘뮤즈’란 어쩌면 허상의 존재라고 생각해요. 아무리 한 개인이 누군가를 뮤즈로 상정하고 어떤 창조적 행동을 한다고 하더라도, 그가 생각하는 뮤즈가 과연 그 누군가를 오롯이 담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요? 냉혹히 말하자면 철저한 대상화, 특히 본인의 창의성을 위한 대상화로밖에는 받아들여지지 않아요.
날카로운 지적이네요. 덴댠님은 영화에 대한 애정과 사회적 비판을 명확히 구분하시는 분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혹시 <킬 유어 달링> 속에서 따라 해 보고 싶은 취향이 있다면?
음, 취향은 잘 모르겠고 나룻배를 타면서 시를 읽는 장면이 기억에 남아서, 뭔가 호숫가나 강가에서 나룻배의 노를 저으며 감상적인 일을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은 드네요. 시를 읽는다던가, 노래를 부른다던가, 악기를 연주하는 그런 일들이요. 평소 주변에서 이성적이라는 평을 많이 듣는데, 오히려 저는 감성적인 제 자신을 사랑하거든요.
재미있는 포인트네요. 다음은 저희 로버스앤러버스의 공통 질문입니다. 영화를 떠나서, 본인이 ‘손민수’하고 싶은 취향이 있나요?
스스로 본인의 한계와 역량을 아는 능력이요. 저는 늘 2시간짜리 일을 계획하고 3시간 넘게 걸리는 사람이거든요. 본인의 능력을 객관화할 수 있고, 이걸 다시 수치화해서 본인의 계획으로 삼아 실천하는 능력 자체가 어쩌면 타고난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요.
앗, 근데 이건 취향이 아닐지도 모르겠네요. 그럼 본인의 옷 입는 스타일이 확고한 것이요! 유행에 맞춰 입든 또는 오히려 아예 신경쓰지 않든, 얼굴을 가려도 옷만 보고도 누군지 안다는 아이덴티티가 확고한 사람들이 요새는 조금 부러워요.
혹시 정말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사실 저는 자유와 탈피를 갈망하는 사람들을 부러워하는 동시에 질투하는 것 같아요. 때로는 그런 마음이 저를 또다시 힘들게 하기도 하고요. 대학생이 되어 <킬 유어 달링>을 다시 보면서 그런 걸 참 많이 느꼈어요. 하지만 우리 모두 가끔 최소한의 일탈은 즐겨 보면서 재미를 느끼는 삶을 사시길 바라겠습니다. 단, 법에 저촉되지 않는 선에서요.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