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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버스앤러버스 Dec 20. 2022

이보다 더 사랑할 순 없어, <윤희에게>

에디터 먼지

  겨울이 되면 보고 싶어지는 영화들이 있다. 따뜻한 가족, 운명적 사랑을 다룬 동화 같은 이야기들 가운데 겨울을 참 닮은 영화가 하나 있다. 흔한 애정신 하나 나오지 않지만 그 어떤 영화보다 깊은 사랑을 이야기하는 영화, <윤희에게>다.

  이번 호에서도 역시 <윤희에게>를 깊이 사랑하는 인터뷰이를 만났다. 윤희에게를 수식하는 여러 단어 가운데 절대 빠질 수 없는 것은 역시 ‘퀴어’인 만큼, 윤희에게 헤비 덕후이면서 퀴어 당사자이기도 한 레몬을 만나 영화의 매력에 대해 물었다.




안녕하세요,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레몬. 대학생이고, 연하의 여자친구와 1년 정도 열애 중입니다.


<윤희에게>, 언제 처음 봤나요?

2019년 개봉했을 때 처음 봤어요. 그러다 얼마 전에 독립영화 상영하는 영화관에서 또 해주길래 또 봤습니다.


영화의 매력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마음껏 자랑해주세요.

일단 정말 잘 만든 영화라고 생각해요. 장면 각각도 뛰어나고, 윤희 역을 맡은 김희애 배우도 정말 연기를 잘했거든요. 영화 배경이 일본 오타루잖아요, 거기 배경도 한몫했다고 생각해요. 윤희와 쥰이 거기서 재회하는 것도 너무 낭만적이죠.

사실 이 영화는 중년의 퀴어 여성 이야기잖아요. 중년, 퀴어, 여성. 여성 서사 자체도 많지 않은데, 거기에 중년의 사랑, 퀴어의 사랑이라니. 정말 흔하지 않은, 주류가 아닌 것들의 집합체죠. 그런데 그것을 자연스럽게 녹여낸 게 너무 좋았어요.


가장 좋아하는 인물이 있나요?

가장 좋아하는 인물은 아무래도 윤희예요. 윤희가 굉장히 주저하고 망설이는 순간도 많지만 그래도 되게 욕망에 충실한 인물이라 생각하거든요. 편지를 부칠 용기가 나지 않았다고 했지만 어쨌든 오타루에 갔잖아요. 계기가 어떻든 쥰이 오타루에 살고 있다는 걸 알면서 말이에요. 오타루에 가기 위해서 급식 노동을 그만뒀고, 오타루에 갔고, 그래서 결국 준을 만났잖아요. 새봄이 덕분에 만났다고 하더라도 그 순간 도망칠 수도 있었는데 그러지 않았죠. 전 그래서 윤희가 좋아요.


윤희가 욕망에 충실하다는 생각은 못해봤어요, 색다른 해석으로 느껴지면서도 정말 그렇다는 생각이 드네요.

맞아요.


혹시 특별히 기억에 남는 장면이나 대사는 없었나요?

제가 좋아하는 대사는 쥰의 고모인 마사코가 말하는 “눈이 언제쯤 그치려나” 예요. 오타루에는 눈이 계속 계속 오잖아요. 이 눈이 겨울이 되면 절대 그치지 않는다는 걸 아는데도 ‘언제쯤 그치려나’라고 말하는 거죠.

저는 그 대사가 영화 속에서 윤희나 쥰, 그리고 다른 인물들이 가지고 있는 마음을 보여준다고 생각해요. 마사코 고모가 영화 맨 처음에도 ‘눈은 언제쯤 그치려나'라고 말하는데, 쥰이 왜 그렇게 말하냐는 식으로 이야기하거든요? 그런데 나중에는 쥰도 함께 눈은 언제쯤 그치려나,라고 말해요. 저는 그렇게 말하는 게 ‘이런 내 마음이 언제쯤 그칠까?’라고 말하는 것 같았어요. 윤희가 쥰을, 쥰이 윤희를 생각하는 마음도 쌓인 눈처럼 절대 사라지지 않을 걸 알면서도, 언제쯤 그칠까, 스스로 묻는 거죠.



혹시 레몬님에게도 윤희같은, 쥰 같은 존재가 있었나요?

구체적으로 생각나지 않는데 떠올려보라면요. 그 영화를 볼 즈음에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어요. 이제 와서 뭘 해보겠다는 건 아닌데, 윤희에게를 봤을 때의 그 감각이 생생해서 생각나긴 하네요. 딱 그 정도. 이거 여자친구가 보면 안되는데… (웃음)


이번엔 인물을 조금 바꿔서, 내가 새봄이었다면, 엄마의 편지를 부칠 수 있었을까요?

부쳤을 것 같아요. 엄마의 행복을 바라기 때문이에요.

영화관에서 윤희에게를 두 번 봤는데, 그 두 번이 느낌이 참 달랐어요. 중간에 윤희와 윤희 전남편 이야기가 나오잖아요. 지금 저희 부모님이 이혼 소송 중이거든요. 그래서 이번에 볼 때 새봄이에게 엄청 많이 감정이입이 됐어요. 새봄이가 굉장히 무던한 것처럼 행동하지만 사실은 분명 어딘가 결핍이 있었던 것 같거든요. 부모님은 서로가 있어서 행복하지 않았다, 엄마가 더 외로워보였다 이런 말을 하잖아요. 그런 이야기를 아는 새봄이도 엄마의 행복을 바라기 때문에 편지를 부쳤다고 생각하고요. 저 역시 마찬가지예요.


그렇다면 <윤희에게> 속 쥰의 편지처럼, 남이 몰래 부쳐줬으면 하는 편지는 없나요?

, 있어요. 사실 아빠한테 편지를 쓰고 싶거든요. 연락을 하고 있지는 않지만요. 살면서 다시 연락하는 순간이 올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먼저 연락하기 싫다고 생각하지만 여전히 하고 싶은 말은 많아요. 가끔씩 아빠 사무실로 편지를 보내볼까 하는데, 용기는 나지 않죠. 하지만 하고 싶은 말이 많으니까, 그렇다고 하고 싶은 말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니까.  대신 누가 부쳐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드네요.






이제 레몬님의 ‘덕력’을 보여줄 수 있는 이야기를 해볼게요. 윤희에게를 보고, 오타루에 다녀오셨다고요.

맞아요. 윤희에게 영화는 혼자 봤는데, 비슷한 시기에 본 친구랑 이야기하다가 오타루에 가게 됐어요. 순전히 <윤희에게> 때문에 간 거죠. 말 그대로 윤희에게 컨셉여행이었어요. 오타루에서 윤희에게 촬영했던 장소를 전부 찾아다녔거든요. 우체통이나, 윤희와 쥰이 만난 장소, 귀걸이 가게, 마사코 고모가 운영하던 카페까지요. 영화 속 장면을 인화해 가져 가서 촬영 장소에서 인화한 영화 장면과 함께 사진을 찍었어요.


영화 속 마사코 고모가 운영하던 카페

헉, 사진 너무 예쁜데요.

그쵸, 덕질을 할 거면 제대로 해야 해요. (웃음) 윤희가 귀걸이를 샀던 소품샵에 방문했을 때 에피소드가 있었어요. 그곳은 유리공예 작품이 유명한 가게였는데, 구경하다 사장님이랑 대화를 나누게 되었어요. 알고 보니 사장님의 오빠가 일본 현지 스텝이어서 자기 가게를 빌려줬었다고 하더라고요. 영화 촬영 당시 김희애 배우가 고른 귀걸이가 너무 예뻐서 사장님이 선물로 드렸대요. 영화에 나오는 연두색 귀걸이 있잖아요. 그래서 저도 그 귀걸이랑 똑같은 귀걸이를 사 왔어요.

윤희가 들렀던 소품샵, 그리고 윤희와 같은 귀걸이

오타루에는 영화에서 처럼 눈이 정말 많이 쌓여있더라고요.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 첫 문장이 생각났어요.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설국이었다". 그게 떠오를 정도로 눈밖에 없었어요. 겨울 오타루 꼭 가보셔야 해요, 윤희에게 봤다면요.


재미있는 이야기 많이 해주셔서 감사해요. 윤희에게의 덕후로써, 어떤 사람이 <윤희에게>를 보면 좋아할까요?

한 마디만 하자면 저는 이 영화가 사랑을 해본 모든 사람이 봐야 하는 영화라고 생각해요.


짧지만 강력한 한마디네요. 그럼 이제 레몬님께, <윤희에게>는 어떤 의미인지도 묻고 싶은데요.

제게 <윤희에게>는 눈 같은 영화라고 생각해요. <윤희에게>를 생각하는 이 마음이 언제쯤 그칠까,라고 생각하지만 영원히 그치지 않으니까요.


거의 명언 제조기신데요. (웃음) 저희가 이번 호에는 <윤희에게> 속 취향을 주제로 글을 쓰고 있어요. 편지, 필름 카메라, 머플러, 그리고 고양이 특별편이 있거든요. 글 쓰는 저희 에디터들에게 조언 한마디 해주세요.

필름카메라가 가장 기대되면서도 궁금한데요. 새봄이가 윤희가 쓰던 카메라를 물려받았잖아요. 저는 그게 갖는 의미가 크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그걸 짚어 주셨으면 좋겠어요.


저희 로버스앤러버스의 공식적인 마지막 질문이에요. 영화 안에서, 그리고 그 밖에서 손민수하고 싶은 취향이 있나요?

새봄이 남자친구가 장갑을 리폼해서 쓰잖아요. 지속가능성 측면에서 본받을 점이라고 생각해요. (웃음) 버리지 않는다는 점에서요.




  사랑한다면 누구나 봐야할 영화, <윤희에게>. 올 겨울 한번쯤은 따뜻한 차와 함께 윤희의 이야기를 감사하시면 좋겠다. 눈 오는 날이라면 더 좋겠고.



출처

<윤희에게> 속 장면:
IMDB www.imdb.com/title/tt113119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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