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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버스앤러버스 Dec 20. 2022

엄마, 그리고 딸에 관한 이야기

에디터 하레

  한국에서 ‘엄마와 딸’이라는 관계는 묘한 구석이 있다. 다 아는 것 같다가도 “어떻게 이걸 몰라?” 하는 부분이 있고, 모를 것 같아도 자연스럽게 알고 있는 일이 있고. 괜한 일에 짜증을 내기도 하고, 상처를 받았다가도 다음날 아침밥에 사르르 가라앉기도 한다. 얼마 전 개봉한 영화 <에브리띵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만 보더라도 엄마와 딸의 그 묘한 관계는 어쩌면 아시아, 또는 전 세계적인 현상인지도 모르겠다. 모녀 관계 특유의 연인 같기도, 친구 같기도 한 바이브는 어디서 생기는 것일까.


  <윤희에게> 속 윤희와 새봄의 관계도 그렇다. 영화 초반 윤희와 새봄의 대화는 무심한 듯 단답으로 이어지며, 사춘기 딸과 엄마의 대화를 그대로 보여 주는 듯하다. 툭툭 던지는 듯한 단어와 날이 선 듯하면서 뭉툭한 말투들. 오타루 여행에서 윤희는 새봄의 흡연 사실과 남자친구의 존재, 쥰의 편지를 읽은 사실까지 속속들이 알고 있음을 드러낸다. 새봄은 윤희의 필름 카메라로 윤희를 찍고 “예쁘다.”라고 말하며 웃는다. 무심해 보이면서도 다 알고 있는 엄마와, 엄마의 행복한 시간을 되돌려 주고 싶은 딸의 관계는 어쩐지 성기면서도 끈끈해 보인다.



“엄마, 엄마 뭐 때문에 살아?”

“뭐 때문에 살아? 자식 때문에 살지.”

“근데 엄마 이제 나 때문에 안 살아도 돼. 나 서울로 대학 가면 여기 자주 안 올 거야.”

“너는 무슨 말을 그렇게 섭섭하게 해?”

“나 자꾸 신세 지게 만들지 마. 그거 다 빚이야.”


  아빠를 만나고 온 새봄이 설거지를 하는 윤희와 대화하는 장면이다. 그릇을 달그락거리는 윤희의 뒷모습과, 귤의 흰 부분을 모조리 떼어내면서 말하는 새봄의 모습이 긴장감을 준다. 무심한 듯이 윤희를 찔러보는 새봄을 보며 우리는 자신의 경험을 비춰 보게 된다. 엄마와 한 번쯤 싸워 봤다면, 윤희가 약간 화난 듯이 그릇을 내려놓는 소리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을 것이다. 


  새봄의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가 가는 순간이 있다. 엄마의 사랑과 관심이, 그 헌신이 나에게는 부담으로 다가오는 순간. 누군가는 “엄마가 나를 덜 사랑했으면 좋겠다”라고 하던데, 모든 관계가 그렇듯 엄마와 딸 사이도 적정한 거리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새봄의 말이 모질게 느껴지면서도 마음 한구석에서 연민이 느껴지는 것은 나 역시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아빠랑 엄마랑 이혼했을 때, 내가 왜 엄마랑 산다고 했게?

엄마가 아빠보다 더 외로워 보였어. 

근데 다 내 착각이었네. 난 엄마한테 그냥 짐이었던 것 같아.”


  이 장면을 보면서, 어쩔 수 없이 딸들은 늘 엄마에게 동질감과 부채감을 느끼게 되나 보다, 생각했다. 윤희가 자는 줄 알고 내뱉은 새봄의 진심은, 앞서 설거지하는 윤희에게 말하는 느낌과는 사뭇 다르다. 윤희를 향했던 것 같은 새봄의 가시 돋친 말은 사실 본인을 향해 있던 것인지도. 



“라이터 좀 줘봐. 너 담배 피우잖아.”

“어떻게 알았어?”

“나 네 엄마야.”


  윤희가 새봄에게 라이터를 빌려 담배를 피우는 장면은 왠지 어색하면서도 해방감이 느껴진다. 오타루로 향하는 기차와, 도착한 숙소 안에서도 묘하게 남아 있던 긴장감은 이 장면을 기점으로 해소되는 느낌이다. 엄마와 딸 사이, 보이지 않는 투명한 벽이 사라지는 느낌. 사실 이 대화의 포인트는 “엄마 미안. 근데 나 진짜 가끔 피워.”라며 귀엽게 넘기는 새봄의 대사이다. 이후 담배를 피우는 윤희를 찍으며 “이쁘다.”라고 하는 새봄과, 엄한 표정을 지으며 찍지 말라고 하다가 이내 피식 웃어 보이는 윤희의 모습은 모녀라기보다는 친구 관계 같다. 


  한편 사과나 위로 없이 일상적인 대화로도 본래의 관계로 되돌아가는 것은 또 모녀 관계만의 특징인 것 같기도 하다. 전날 싸우고 서로 냉랭하게 대하다가도 다음 날 아침이면 메뉴를 물어보며 다시 장난치는 사이가 되는 것. 흔히 말하는 ‘딥톡(깊은 대화)’이나 ‘진대(진실한 대화)’ 없이도 이상하게 서로를 환히 아는 것. 새삼 엄마와 딸이라는 관계는 재미있게 느껴진다.



“엄마는 아빠 만나기 전에 연애해본 적 있어?”

“있지.”

“어떤 사람이었어?”

“가까이 가면, 항상 좋은 냄새가 났어.” 


  바로 이어지는 온천에서의 대화는 몽글몽글하다. 엄마의 첫사랑을 묻는 새봄과 덤덤한 듯 말하는 윤희의 대화는 한국에서보다 한결 편해졌다. 둘 다 말투는 그대로인 것 같지만, 온천 때문인지 묘하게 나른하게 느껴지는 대화이다. 



“새봄, 너도 알다시피 여기 엄마 옛 친구가 살아.”

“그래? 나 몰랐는데?”


  새봄에게 남자친구 경수가 있다는 것과 새봄이 쥰의 존재를 알고 오타루로 왔다는 것까지 알고 있는 윤희와, 태연한 척하려 노력하는 새봄의 모습이 귀여운 장면이다. 그런 새봄에게 윤희가 먼저 눈을 뭉쳐 던지고, 새봄이 반격하여 시작된 눈싸움은 둘의 웃음소리, 멀리서 들리는 기차 소리와 겹쳐 오히려 따뜻한 느낌을 준다.





  한국으로 돌아온 둘은 새봄이 대학을 진학하면서 함께 이사를 가고, 윤희는 용기를 내어 새로운 일자리에 지원한다. 여전한 듯하면서 조금 더 편안해진 둘의 모습에, 영화의 결말이 어떤 것도 닫아주지 않음에도 관객 역시 편안함을 느끼게 된다. 엄마와 딸의 관계도 이 영화처럼, 어떤 것이든 결코 완전히 해결된 느낌을 주지는 않는 것이 특징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서로 모르던 것을 조금씩 알아가고, 알고 있다고 생각한 것도 다시 보게 되고, 수십 번씩 선을 넘나들면서 맞춰 나가는 것이 늘 희망을 갖게 하는 지점이다. 결국은 늘 같은 문제로 부딪히더라도 같은 길로 돌아오는 것이 엄마와 딸인 것이다.


  <윤희에게>는 윤희와 쥰의 이야기인 동시에 윤희와 새봄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딸인 내가 이 영화를 보면서 새봄에게 이입하고 공감하고 연민을 느끼는 것은 영화 속 윤희와 새봄의 관계에 엄마와 나를 겹쳐보기 때문일 것이다. 엄마를 사랑하면서도 가끔은 미워하고 싶은, 또 엄마가 미우면서도 다시금 사랑하고 싶은 한국의 모든 딸들에게 이 영화를 적극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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