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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버스앤러버스 Dec 20. 2022

낭만은 기차를 타고 : 기차여행 인터뷰

에디터 일영

 무궁화호 4인석에 가족들과 옹기종기 모여앉아 바나나우유와 구운 계란을 먹던 기억이 난다. 조그만 간식카트가 돌아다녔던 정감 넘치는 기차는 십 년이 넘는 시간을 통과하며 많은 부분이 달라졌다. 한국은 점차 ‘빨리빨리 나라’로서의 정체성이 강해졌고, 한국의 기차는 이제 이동수단으로의 의미밖에 갖지 못하게 되었다. 추쿵추쿵 기차 굴러가는 소리, 창밖으로 느리게 스쳐 지나가는 풍경 같은 기차의 낭만은 이제 쌩쌩거리는 KTX 소리와 자느라 바빠 놓쳐버리는 풍경으로 대체되었다. 

 <윤희에게> 속 일본의 기차는 어떨까. 객관적인 특징들과는 무관하게 쥰을 만나러 가는 윤희에게 이입되어 설렘이 느껴지기도 하고, 아기자기한 나라 일본의 기차인 만큼 내가 모르는 낭만이 있지 않을까 기대하게 된다. 각종 영화에 등장하는 기차의 이미지를 외국에서는 실현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막연한 기대감으로 여러 기차에 몸을 실어 본 뉴냐님을 모셨다. 



간단히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디자인으로 먹고 살고 있는 뉴냐라고 합니다.


뉴냐님, 인터뷰에 참여해주셔서 감사해요. 혹시 영화 <윤희에게>도 보셨나요? 

네, <윤희에게>를 처음 봤을 때 어떤 이유에서인지 시내에 있는 영화관에서는 상영을 안 했었어요. 그래서 구시가지에 있는 영화관에서 고등학교 친구와 봤거든요. 보고 나서 여운이 많이 남아서 “오늘 저녁에는 스프카레 먹어야겠다”, “여기가 바로 오타루네!”하면서 함께 들떴던 기억이 나요. 

@lluna.lee


기차여행을 많이 해보셨다고 들었는데요, 어느 계절에 어떤 기차를 타 보셨나요?

<윤희에게> 때문에 갔던 삿포로, 오타루 여행은 겨울에 갔어요. 유럽은 겨울에 갔다가 여름에 돌아왔고, 시베리아 횡단열차는 한여름에 갔어요. 팁으로 겨울 나라는 겨울에 가는 게 좋은 것 같아서, 러시아도 이왕이면 겨울에 가는 걸 추천드려요. 


기차여행을 하게 되신 계기가 궁금해요. <윤희에게>도 그렇지만, <이터널 선샤인>, 비포 시리즈 같은 영화들이 많이 떠오르는데요. 뉴냐님도 영화에 영향을 받으신 걸까요?

기차여행을 계획했다기보다는 오타루로 여행을 가게 된 계기가 확실해요. 유럽 여행에서 만났던 친구와 서울에서 오랜만에 만나 이야기를 하다가 둘 다 최근에 봤던 <윤희에게> 얘기를 하게 됐어요. 제가 “그거 보니까 오타루 너무 가고 싶더라” 하니까 친구가 “갈래?”하면서 갑자기 여행을 가게 된 거예요. 사실 여행을 너무 오래 했던 때여서 앞으로 3년은 가지 말아야지 생각했었는데, 굉장히 즉흥적이었죠. 지금은 큰 비용을 들였던 유럽 여행보다도 더 기억에 남는 여행이에요. 


그 이야기가 더 영화 같은데요. 가기 전 기차여행에 갖고 계신 낭만이 있으셨나요?

아무래도 바깥에 보이는 풍경이죠. 삿포로에서 오타루로 가는 열차를 탔었는데, 영화에 나오는 장면이 창밖에 그대로 나오는 거예요. 그게 정말 신기했어요. 또 기차여행은 가는 것 자체가 여행이 되는 거잖아요. 기차를 타고 가면서 여행의 설렘이 증폭되었던 것 같아요. 

여담으로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탔을 때는 오히려 낭만이 깨졌어요. 처음에는 정말 좋았어요. 헬싱키에서 출발했는데 자작나무가 옆으로 계속 지나갔거든요. 그런데 일주일 내내 자작나무만 보이니까 감흥이 많이 떨어지더라고요. (웃음)

뉴냐님께서 직접 촬영하신 <윤희에게> 속 빨간 우체통 (@lluna.lee)


KTX, 무궁화호, 새마을호 같은 한국의 기차는 흔히 떠올리는 ‘낭만적인 기차여행’과는 거리가 먼 것 같아요. 뉴냐님이 타 보신 기차는 한국의 기차와 어떤 점이 달랐나요?

엄청 사소한 게 떠올랐어요. 일본 기차는 기차표를 의자 위에 꽂아 놓더라고요. 그런 디테일이 신기했어요. 
또 한 가지는 기차가 다르기보다 제 마음이 달랐던 것 같아요. 저는 본가에 갈 때 KTX를 자주 타는데, 3-40분 정도 걸려요. 그래서 기차를 짧은 시간 동안 이동수단처럼 타게 됐었다면, 오타루에서나 횡단열차를 탔을 때는 창밖을 보는 것 자체가 여행이 되었어요. 한국에서는 핸드폰하기 바쁘고, 잠 자기 바빠서 밖을 절대 안 보는데 외국에서는 한 순간이라도 눈 안에 담으려고 하는 것. 그 점이 가장 다른 것 같아요.


기차여행에는 누구와 함께하셨나요? 기차를 타는 오랜 시간 동안 함께하려면 편한 상대가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삿포로에서 오타루로 가는 열차는 2시간 정도 밖에 안 타기도 했고, 친구가 피곤해서 내내 잤어요. (웃음) 시베리아 횡단열차 탔을 때를 떠올려보면, 시작은 혼자 하고 친구가 모스크바에서 합류하는 일정이었어요. 사실 시베리아 횡단열차는 상상 이상으로 지루해요. 아무것도 못 하고, 누워만 있어야 하거든요. 드라마도 많이 보고 이야기도 많이 했어요.

어떤 이야기를 나누셨는지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 기억에 남는 이야깃거리도 좋고요.

사실 잘 생각이 안 나요. 왜냐하면 기차 안이라서 그런지 바깥 세상하고 시간이 다르게 흐르는 느낌이었거든요. 시베리아는 더 그런 것이, 실제로도 기차가 시차선을 넘어가요. 그래서 한참 자다 일어났는데 아직도 낮인 경우도 발생하고요. 시간이 흐르는 것도 모르고 친구랑 잠자다 일어나서 밥먹고 대화했던 것 같아요. 꿈 속에서 옹알옹알하고 일어나고 나면 다 까먹는 것 같은 기분 아시죠? 그거랑 비슷했어요. 

@lluna.lee


시베리아 횡단열차하면 낯선 사람과의 교류도 있지 않을까 예상되는데요. 옆자리 분들과도 대화를 나누셨나요?

우선 매체에서 그려지는 것처럼 모두가 낯선 사람에게 말을 많이 거는 분위기는 아니에요. 그래도 맞은편 사람이랑은 3일 내내 같이 가니까 친해지는 편이죠. 저는 어떤 할머니들과 친해졌는데요, 러시아 음식이라고 하면서 알 수 없는 음식을 나눠주시기도 했어요. 할머니들이 먼저 내리셔서 같이 사진도 찍었고요. 

저는 외향적인 편이라 사람들이랑 친해지고 싶기도 하고, 기차 안에서 할 게 너무 없어서 주변 사람들 그림을 그려서 선물해 드렸어요. 너무 좋아하시면서 먹을 것도 주시더라고요.


듣기만 해도 정말 따뜻하고 귀엽네요. 그림 그릴 도구를 직접 가져가신 건가요?

네, 제가 디자인과다보니 스케치북에 연필 같은 것들 가지고 다니면서 그려드렸어요. 


@lluna.lee


일본 기차에서는 도시락을 팔거나 매점이 있는 것처럼, 나라마다 기차에서 파는 간식이 있을 것 같은데요. 시베리아 기차여행 중에 드신 간식이 있으신가요?

시베리아에서는 계속 아이스크림을 먹었어요. 시베리아는 우유가 유명하거든요. 배부르니까 양감이 있는 걸 먹기는 싫고, 또 여행을 왔으니 러시아스러운 걸 먹어야겠다 싶더라고요. 기차역마다 작은 슈퍼가 있는 역들이 있어요. 편의점은 아니고, 창문에 음식 사진들을 붙여놔요. 저희는 무슨 음식인지 모르니까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그분들도 영어를 못하셔서 손바닥에 돈을 드리면 알아서 거슬러가고 하셨어요. 



소중한 경험을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잡지의 마지막 공식 질문인데요, 영화 안이나 밖에서 손민수하고 싶은 취향이 있다면?

윤희 남자친구가 만들어줬던 리폼한 장갑을 손민수하고 싶어요. 직접 만들어보고 싶다기보다는, 받아보고 싶네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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