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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버스앤러버스 Dec 20. 2022

첫사랑은 왜 첫사랑일까에 대한 수다

에디터 콜리

 윤희와 쥰의 사랑에 서사를 부여하는 중요한 요소는 첫사랑으로 기억된다는 점이다. 살면서 할 많은 사랑들을 일일이 두 번째 사랑, 세 번째 사랑이라고 부르지는 않으면서 굳이 첫 번째 사랑만은 첫사랑이라는 특별한 칭호를 붙여 간직한다. 첫사랑을 둘러싼 애틋하고 과장된 요소들에 대한 에디터들의 대화다. 원래 연애 얘기가 제일 재미있는 법이니, 우리의 가벼운 수다에 즐겁게 동참해주시길 바란다.




가벼운 질문 먼저 던져 볼게요. 첫사랑, 하면 생각나는 단어들이 있나요?

일영: 순수함, 아련함이요.

먼지: 이유는 잘 모르겠는데 첫사랑하면 이상하게 기억 조작이 떠올라요. 에프엑스의 ‘첫사랑니’ 노래도 생각나고요.

하레: 저는… 풋풋함?

콜리: 저는 애틋함과 서투름을 생각했어요.

일영: 눈물도 추가할게요.


첫사랑이 대체 뭘까요? 방금 얘기한 키워드 중심으로 생각해봐도 좋아요. 보통 사람들은 첫사랑에 굉장히 열광하잖아요. 다른 사랑과 구분되는 첫사랑만의 매력이란?

일영: 내가 한 사랑이 첫사랑인지는 지나고 나서 확실히 알게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나 그때 진심이었구나’라는 생각이 들면 그게 첫사랑에 가깝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근데 저는 첫사랑에 의미 부여하는 걸 안 좋아하는 편입니다. 왜 중요한지 모르겠어요, 첫사랑은 그냥 추억일 뿐이고 저는 ‘끝사랑이 더 중요하다’파예요.

먼지: 갑자기 궁금한 게 있어요. 짝사랑도 첫사랑에 껴줄 수 있을까요? 아니면 쌍방 연애를 했을 때만 첫사랑일까요?

하레: 일영이 말한, 지나 봐야 첫사랑인지를 안다는 것과 비슷한 얘기 같기도 하네요. 굳이 그 사람과 이어지는 게 아니더라도 내가 진짜 진심이었다는 생각이 들면 그게 첫사랑이냐 아니냐를 결정하는 거죠.

콜리: 진심이었다는 건 어떻게 판단할 수 있나요?

먼지: 당연히 매사에 진심으로 사랑을 하겠지만, 첫사랑은 처음 사랑을 느껴본 거잖아요. 그래서 꼭 필요한 조건 중 하나는 그때의 사랑을 지금 다시 하라고 하면 못할 것 같은 거? 경험의 부족과 무지에서 오는 삐걱거림일 수도 있고, 서툰 모습일 수도 있고, 혹은 너무너무 나를 불사르면서 사랑을 하는 바람에 다시는 그렇게 못하겠다 그런 걸 수도 있고요.

일영: 지금은 그렇게 못하겠다고 생각해야 한다는 거 좋네요.

콜리: 불사르면서 사랑한다는 거에, 인터넷에서 봤던 첫사랑에 대한 멘트를 덧붙이고 싶은데요. 다른 사랑들에는 모두 사랑과 이별이 있는데 첫사랑은 이별이 없고 사랑만 있대요. 저는 이별을 극복하고 새로운 사랑을 찾은 적이 있는지의 경험이 되게 크다고 생각하거든요. 첫사랑은 그런 이별을 해본 적이 한 번도 없는 상태에서만 가능하니까, 다른 사랑보다 이별을 두려워하지 않고 더 불사를지도요. 

하레: 많은 사람들이 첫사랑에 집착하는 게, 첫사랑의 대상을 향한 게 아니라 그 사람을 좋아했던 나 자신의 과거의 모습을 자꾸 상기시키려고 하는 것 같기도 해요. 풋풋하고 어리고 서투른, 뭘 몰랐던 자신의 모습을 첫사랑이라는 특정한 대상을 매개체로 두고 계속 기억하려는 거 같아요.


흥미롭네요. 여러분은 첫사랑에 대한 환상이 있나요? 직접 경험해본 뒤에 이건 첫사랑에 대한 오해였구나, 생각한 적이 있는지도 궁금해요.

먼지: 드라마나 소설을 많이 보다 보니 ‘치즈인더트랩’의 보라와 은택이의 연애 같은 귀여운 느낌의 첫사랑을 상상했었죠. 아니면 에프엑스와 디오가 함께 부른 ‘Goodbye Summer’ 노래를 들으면서 같은 반에서 하는 연애요.

하레: 저도 그런 이미지긴 해요, 학창 시절. 교복 입고 학교 다닐 때. 근데 저는 여중을 나왔거든요. 고등학교 때 사귀었던 애는 있는데 저는 걔가 첫사랑이라고는 생각 안 해요. 아까 얘기했던 첫사랑의 정의, ‘나 얘한테 진심이었나’를 생각했을 때 나 그렇게까지 얘한테 진심이었나 이런 생각도 들어요.

일영: 가짜 사랑이네요. 저는 최근에 책을 읽다가, 사람이 사람을 사랑할 때 그 사람한테서 나한테 있는 단점을 발견하지 않기를 바라고, 나한테 없는 완벽한 면을 발견하고 싶어 한다는 내용을 봤거든요. 내 생각에 빠져서 거의 신적인 존재로 만드는 거죠. 내 환상을 깨는 주변의 이야기 같은 걸 들어도 그걸 다 무시한다거나 합리화하는 경향이 첫사랑은 더 강한 것 같아요.

먼지: 처음 사랑할 땐 이 사람만큼 좋아할 사람이 또 나타날지를 몰라서 그렇죠. 연애박사 친구가 늘 하는 말처럼, 분명 이 사람은 내 전부가 아니고 이 사람만큼 멋지고 좋아할 만한 사람이 분명히 있는데 그걸 모르니까.

일영: 맞아요, 완벽하고 유일한 사람일 것 같은.


첫사랑의 기억이 내 삶에 미친 영향이 있다면요?

일영: 이상형을 구체화시킬 수 있는 것 같아요. 내가 이런 면을 좋아하는 군! 이런 걸 확실하게 알 수 있는 느낌? 그 후로 진짜 그런 사람에게 끌린다는 걸 발견했어요.

하레: 저는 연애를 암살처럼 하게 됐어요. 저는 좋아해도 티 내지 않아요. 절대로. 사랑이었던 애를 좋아하는 걸 들켰다가 결과가 그렇게 좋진 않았거든요. 그 뒤로 연애는 암살이라고 생각해요.

먼지: 그때 제가 느꼈던 감정들이 지금의 저를 구성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첫사랑을 너무 좋아해서 걔를 생각하면서 시를 쓰고 그랬거든요. 그때의 제가 느꼈던 중2 감성 같은 게 지금 생각해보면 남처럼 느껴질 정도로 낯설지만, 사실은 그 감정들이 절 구성하는 거죠.

콜리: 첫사랑이 남긴 흔적들을 긍정적으로 생각하시나요?

일영, 먼지: 네.

하레: 전 아니긴 한데. 연애는 암살처럼 하면 안 되니까요.

먼지: 내가 누군가를 이렇게 좋아할 수 있는 사람이구나를 알게 된다는 점에서 좋은 것 같아요.


<윤희에게> 얘기를 좀 해볼게요. 윤희에게 첫사랑 쥰은 어떤 존재라고 생각하시나요? 여러분의 해석이 궁금해요.

먼지: 내가 오롯이 나일 수 있었던 유일한 존재. 쥰과 윤희의 사랑이 좌절되면서 윤희도 쥰도 나의 존재나 정체성을 스스로 부정하려고 하잖아요. 윤희는 자기를 벌주면서 살아온 것 같다고 말하기도 하고요. 그런 윤희에게 쥰은 내 첫사랑이자 솔직할 수 있었던 상대죠. 그래서 저는 윤희가 쥰과 다시 잘해보려는 게 아니라 오타루에서 만나고 끝나는 게 좋았어요. 다시 한번 내가 나일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주는 물꼬처럼 느껴져서요.

일영: 저는 오히려 마음의 짐이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여성 대 여성의 사랑이고, 첫사랑을 하던 그때는 더더욱 서로 솔직하게 얘기하지 못했을 것 같아서요. 그때 내가 솔직하지 못해서 결국은 다른 사람 만나서 살게 됐잖아요. 내가 그 감정들을 그대로 인정하지 못했다는 이 미묘한 느낌. 쥰을 사랑했다고 인정하게 되는 데에도 시간이 걸렸을 거라고 생각해요. 언젠가는 그걸 좀 해소하고 싶지 않았을까요?

하레: 음… 윤희의 인생에서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닻 같다고 해야 할까. 윤희가 과거를 기억할 때 매개가 되는 사람으로 볼 수도 있고요. 쥰과 헤어지고 가족에 의해서 결혼을 억지로 했다는 얘기도 있었어서, 본인의 인생을 본인의 의지로만 살지 못하게 된 기점이 되는 사람이요. 그리고 닻 같은 쥰에 걸려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던 윤희가, 쥰을 다시 마주하면서 마음의 짐을 좀 내려놓았을 것 같아요.


즐거운 대화였어요. 첫사랑 수다를 마무리 짓는 마지막 질문입니다. 첫사랑이 아직 꿈에 나오나요?

일영: 전 안 나와요.

하레: 고등학교 때 좋아했던 애는 가끔 나와요.

콜리: 저는 첫사랑이 얼마 전에 끝난 사람으로서, 재회하는 꿈을 꾼 적이 있어요. 시기가 시기라서 그런 것 같네요.

먼지: 저 진짜 오랫동안 안 나왔거든요. 근데 며칠 전에 나왔어요. 그래도 이제는 그때의 기억으로 그냥 남겨두는 게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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