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의 치디를 찾아서

에디터 콜리

by 로버스앤러버스

‘엥 나랑 너무 다른데?!’ 나와 같은 정체성을 가진 사람을 미디어에서 표현한 모습을 볼 때 흔히 하는 생각이다. 너무 다르게 묘사된 모습에 때로는 열 받기까지 한다. <굿 플레이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어떨까. 진짜 굿플레이스에 가지 못 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내 정체성을 투영하기에 썩 좋은 대상은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꾸 나를 비추어 보게 되는 인물이 있다면? <굿 플레이스>의 주인공 중에서도 유독 치디에게 눈길이 간다는, 철학을 전공한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현실의 철학 전공자도 치디처럼 우유부단하면서도 매력적일까?




현실의 철학이란

어쩌다가 철학과에 진학을 하게 되셨나요.

고등학교 3학년이 되기 전 겨울방학 <생활과 윤리>라는 과목을 본격적으로 공부하게 되었어요. 처음에는 수능 과목으로 선택해서 시험 볼 과목이라 의무감에 공부했는데, 한 학자, 한 학자를 배워나갈수록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지?’ 계속해서 신기함과 깨달음 비슷한 걸 느꼈던 것 같아요. 평소 어떤 주제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하는 편이 아니기도 하고, 그 때는 주어진 대로 현실을 살아가는 고3 시기였어서 그나마 생각이란 걸 할 수 있게 해 준 윤리가 최애 과목이 되었습니다.
윤리라는 과목과 대학교 학과 중 철학과가 가장 맞닿아 있었고, 인문계열 진학을 희망하는 저에게 철학과가 잘 맞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진학을 결정하게 되었어요. 학교 동기 중에는 니체의 ‘차라투스투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읽고 감명을 받아서 철학과에 진학했다는 멋있는 이유를 가진 친구도 있더라고요!


좋아하는 철학과 밈이나 짤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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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은 끊임없이 질문하는 학문이에요. 자기 자신에게,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질문하는 것으로부터 새롭고 관습을 뒤엎는 생각이 생겨나요. 그렇다 보니 교수님들도 실제로 학생들에게 질문을 많이 하십니다. 위 사진은 그런 질문에 대답해야 하는 사람들 또는 힘들어하는 철학과 학생들을 표현한 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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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은 웃던 얼굴도 무표정으로 만드는 매력이 있다는... 그런 짤? 계속 생각하고,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어려운 내용을 배우다 보니 그렇게 되는 것 같네요.


직접 경험한 철학과는 어떤가요? 수업의 특성이 있는지 궁금해요.

철학과 수업의 특징은 다른 수업들에 비해 교수님과 학생과의 문답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자유롭고, 오히려 장려된다는 점이에요. 수업 중간중간에 갑자기 질문을 하시는 교수님도 계시고, 아예 학생들한테 문답 시간을 주셔서 학생들이 자유롭게 질문하고 자신의 생각을 발표하는 경우도 있어요. 수업이 역동적이어서 지루하지 않고 제가 생각하지 못한 다양한 의견들을 들을 수 있어서 좋습니다.


좋아하는 철학자 있으세요?

저는 실존주의 철학자들을 좋아해요. 실존주의는 기존 서구의 철학은 본질을 탐구하는 합리주의 철학을 반대하고, 본질에 앞서 현실적인 인간으로서 개개인의 실존에 주목한 철학 사상이에요. ‘한계상황’을 이야기한 야스퍼스,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라는 유명한 말을 한 샤르트르가 그 대표적인 학자이고요. 실존주의 철학자들은 기존의 철학자들이 인간 사이의 공통된 속성으로서 본질, 예를 들어 이성을 강조하던 것과 다르게 각각의 인간마다 각자의 실존이 있다는 것, 각자 불안과 절망을 겪으며 자신만의 삶을 스스로 만들어 나가는 주체적인 존재라는 것을 이야기해줘요. 실존주의를 배우면서 저의 삶을 되돌아보고 완벽한 삶보다 지금의 불안정함을 이겨내는 데 집중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굿 플레이스>와 철학

<굿 플레이스> 속 치디의 모습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사실 저는 저를 철학자라고 생각하진 않고요, 제가 본 철학자는 철학과 교수님들이신데요. 철학자라고 해서 치디처럼 이렇게 결정을 못하시지는 않는 것 같아요. 물론 철학자가 많은 상황들을 고려하면서 생각을 많이 하기는 하겠지만, 제가 본 철학과 교수님들은 당신만의 주관이 뚜렷이 있다고 느껴졌거든요. 학생들의 생각들을 존중해주시면서도 교수님만의 의견이 확실히 있으십니다. 그래서 철학자가 치디와 같진 않다고 생각해요! 그치만 <굿 플레이스>를 볼 때는 치디가 좀 신경이 쓰이긴 하더라고요.


그럼 교수님 말고, 본인은 치디처럼 일상적으로 윤리적인 측면에서 고민을 할 때가 있나요?

사실 저도 한 우유부단합니다. 치디처럼 결정을 못하는 편에 속하기는 해요. 그런데 저는 식사 메뉴를 고른다거나 하는 일상적인 상황에서의 결정이 어렵지 오히려 윤리적인 상황에서 더 판단이 쉬운 것 같아요. 물론 지금껏 제가 만난 윤리적인 상황에 국한해서이고, 트롤리 딜레마 같은 상황은 어려운 상황에서는 판단이 힘들겠지만요. 저는 윤리적인 상황에서는 직관적으로 ‘A는 아니지!’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마도 말로 표현할 수는 없지만 제 머릿속에 나름의 판단 기준이 있는 듯 해요. 그래서 누군가 그 선을 넘었다고 생각되면 비판하고, 동시에 저는 제가 비판하는 사람이 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철학 공부를 많이 하면 천국 가기에 유리할까요?

천국이 ‘잘’ 사는 사람이 갈 수 있는 곳이고 실제로 있는 곳이라면, 철학 공부를 많이 하면 유리할 것 같은데요? 철학은 일단 생각하게 만드는 학문이고요. 특히 철학의 4가지 큰 줄기인 인식론, 형이상학, 논리학, 윤리학 중 하나인 윤리학은 인간으로 하여금 도덕적인 주제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고 우리 스스로 도덕적인 사람인지, 도덕적인 삶을 살고 있는지 되돌아보게 하는 분야예요. 철학 공부를 하면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인지를 계속 고민하게 될 거고, 그러니 천국에 가기에 더 좋을 것 같기도?


사후세계에 대해 말한 철학자가 있나요? 그 사람이 보기에 굿플레이스는 어떨까요?

서양 고대 철학자인 플라톤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플라톤은 현상세계와 이데아 세계를 구분하고 우리가 살고있는 현상세계는 궁극적인 완전함과 아름다움으로서의 이데아를 모방한 허구의 세계라고 봅니다. 인간은 죽어서 영혼불멸하는 이데아 세계로 가게 된다고 보았어요. 굿 플레이스도 모든 것이 평화롭고 완벽한 세계라는 점에서 이데아 세계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네요. 하지만 굿 플레이스는 가짜든 진짜든 누군가에 의해서 설계된 세계인 반면에, 플라톤의 이데아 세계는 그 자체로 존재하는 완벽한 세계이고 오히려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현상세계를 모방된 세계이자 허구의 세계로 봅니다. 그래서 플라톤이 살아있다면, 굿 플레이스에 대해 긍정하는 부분도 있을 것이고, 부정하는 부분도 있을 것 같아요. 재밌네요!




당신의 윤리 의식은? 두둥

<굿 플레이스>에도 등장하듯이 대표적인 윤리 문제인 트롤리 딜레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어려운 결정이지만, 저는 핸들을 돌려 열차가 인부 1명을 향하도록 할 것 같습니다. 너무 단호한가요? 물론 핸들을 돌리는 것에 제 의지가 들어갈 수밖에 없지만, 열차 운전사로서 자신이 직접 모는 열차로 인해 사람이 죽게 된다면 가능한 한 더 많은 사람을 살리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핸들을 돌릴 것 같아요. 하지만, 그 한 명이 저의 가족이거나 친한 친구라면.... 아마 끝까지 고민하다가 결국 시간을 놓쳐 그대로 인부 5명에게 향하게 될 것 같습니다. 흑.


또 다른 윤리 딜레마들이 있나요? 저 밸런스 게임 좋아합니다, 던져주세요.

하인츠 딜레마라는 게 있는데요. 유명한 도덕심리학자 콜버그가 만든 딜레마로, 어떤 선택을 어떤 이유로 하느냐에 따라 6단계로 사람들이 해당하는 도덕적 사고 단계를 구분하는 데 사용된 딜레마입니다. 다음 글을 읽고 입장과 근거를 정해 보세요.

하인츠는 암에 걸린 아내를 치료하기 위해 약을 구하러 나선다. 어느 약사가 개발한 새로운 약만이 아내를 살릴 수가 있는데, 이 약의 원가는 200달러였다. 그런데 약사는 하인츠에게 2,000달러를 요구했다. 하인츠는 집과 재산을 팔고 주변 사람들에게 돈을 구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겨우 1,000달러밖에 마련하지 못했다. 하인츠는 약사에게 애원했으나 약사는 약을 싸게 팔수도, 외상을 줄 수도 없다며 거부했다. 절망에 빠진 하인츠는 결국 약국의 창고에 몰래 들어가 약을 훔친다.

콜버그는 위와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졌다.
‘남편은 약을 훔쳤기 때문에 벌을 받아야 하는가?’ ‘약사는 비싼 약값을 요구할 권리가 있는가?’ ‘약사 때문에 아내가 죽게 되었다고 비난하는 것은 정당한가?’ '만약 비난이 정당하다면 그리고 아내가 사회적으로 중요한 인물이었다면 약사를 더 무겁게 처벌해야 할까?'

만약 처벌을 이유로 하인츠의 행동을 판단했다면 콜버그의 기준으로 도덕성의 단계가 낮은 거예요. 생명에 대한 존중을 우선시 하면서 약을 훔치는 게 옳다고 생각했다면 가장 높은 수준의 도덕성을 가진 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콜버그는 이런 식으로 높고 낮은 6단계의 도덕적 사고를 구분합니다. 다만 가장 높은 도덕성 단계인 6단계는 아주 이상적인 수준으로, 철학자들도 6단계의 답변을 하는 경우는 드물다고 하네요.


마지막으로, 철학 입문자에게 추천할 책이 있나요?

동양은 김선희의 <동양철학 스케치>라는 책 추천드려요. 동양 철학자와 그 사상에 대해서 어렵지 않게 설명되어 있어서 입문자에게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조금 더 본격적인 책으로는 <중국철학사>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이것도 공자, 맹자, 순자, 주희, 양명 등 다양한 중국 철학자들의 사상이 모두 나와 있어요. 한국 철학자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조금 어려울 수도 있지만 이영경의 <한국 사상과 마음의 윤리학>도 좋습니다!

서양은 플라톤의 <대화편> 추천드려요. 플라톤 대화편은 에우튀프론, 소크라테스의 변론, 크리톤, 파이돈, 향연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대화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어 읽기도 수월하고 얻어가는 문장도 많습니다. 본격적인 서양철학사를 훑어보고 싶으시다면 에링턴의 <서양철학사>도 괜찮습니다. 좀 어려울 수도 있긴 해요.

정치철학 쪽으로는 너무나 유명한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이나 <공정하다는 착각>도 추천드립니다. 두 번째 책은 현대사회 전반에 퍼져 있는 ‘능력주의’라는 생각이 과연 공정한 것인지, 우리 사회의 모습을 되돌아볼 수 있도록 하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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