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 플레이스, 갈 수 있을까

에디터 하레

by 로버스앤러버스

<굿 플레이스> 시즌 1의 기막힌 반전에 홀려서 끝까지 다 보고 나면, 재미도 재미지만 이런저런 생각이 든다. 지금의 나는 굿 플레이스에 갈 수 있을까? 부터 시작해서, 선한 행동의 기준은 무엇인지, 현실에서의 윤리적 문제는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 등등. 끊임없이 질문과 의심을 던지는 것이 이 드라마의 매력이다. 색감에 홀리고, 반전에 홀리고, 결말에 홀린 ‘굿 플레이스 덕후'를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눠 봤다.



안녕하세요,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꽂히면 한 놈만 팬다” 주의인 입니다. 요즘엔 베이글을 패고 있습니다.



<굿 플레이스>, 언제 어떤 계기로 보게 되었는지 기억나시나요?

저는 주로 OTT에서 소재나 색감, 구도 어떤 면에서든 새롭거나 특이한 작품을 찾게 되는 것 같아요. <굿 플레이스>는 <그랜드 부다페스트>, <러시안 인형처럼> 같이 색감이 특이해서 본 사례에요. 2019년에 처음 보고, 2020년에 시즌 4가 나왔을 때 다 봤어요. 그 후로 두 번 정도 더 정주행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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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시즌 1에서 ‘굿 플레이스’의 반전을 눈치채셨나요?

전혀 예상하지 못했어요. 대부분의 다른 드라마들은 이성 간의 사랑, 권선징악, 해피엔딩. 이런 주제가 대부분이잖아요. <굿 플레이스>는 일반적으로 결말로 받아들여지는 천국, 즉 죽음과 사후세계로부터 이야기가 시작한다는 점이 흥미로웠고, 천국이 배경이면 다 착한 사람들일 텐데 권선징악의 플롯이 어떻게 이루어질지, 앞으로의 이야기를 어떻게 전개할지에만 집중했었거든요. 그래서 흥미진진하게 보다가 반전을 생각 못해서 같이 소리 질렀던 기억이 있어요.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나 대사가 있다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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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가장 기억에 남는 대사는 “Folk!” 욕을 못 쓰는 설정이 웃겼어요. 천국이면 욕도 맘대로 못 쓰나,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기억에 남는 장면은 따로 없고, 보면서 궁금했던 것은 프로즌 요거트의 맛이에요. 모든 굿플레이스에 있다는데, 마이클이 묘사하기를 최고로 맛있는 것도 아니고 맛은 있는데 뭔가 부족하다고 하길래 대체 무슨 맛일까 궁금해졌거든요.



가장 좋아하는, 또는 공감되거나 이입되는 캐릭터가 있었나요?

사실 굿플레이스 내의 캐릭터들은 모두 완전히 좋아하기 어려워요. 다들 뭔가 성격적으로 하자가 있어서… 그래서 처음에는 모든 캐릭터가 다 별로였고, 특히 엘리너가 인생을 너무 막 살아서 싫었어요. 그런데 다른 캐릭터들은 자신의 결점을 빨리 인정하지 않는데, 엘리너는 자기의 결점까지 다 인정하고 바뀌려는 의지가 가장 먼저, 그리고 잘 보여서 마음이 갔어요. 물론 주인공이라 서사가 많이 나와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모습이 감정적으로 이입도 잘 되고 좋아지더라고요.

반대로 제일 싫어하는 캐릭터는 지안유에요. 저는 멍청한 사람이 그렇게 싫더라고요…



윤리에 관한 이야기가 잘 녹아든 작품인데, 이런 부분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이 궁금해요.

<굿 플레이스>는 생전의 모든 행동에 점수를 매겨서 총점으로 사후세계가 정해지는 세계관이잖아요. 그걸 처음 봤을 때도 그렇고, 다 볼 때까지도 계속 해결되지 않은 의문으로 남은 것이 ‘어떤 행동이든 좋음/나쁨으로 점수화해서 매겨질 수 없다’는 거였어요. 절대적으로 선한 행동도, 절대적으로 악한 행동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극 내용 중에서, 마약을 하면서 헛소리를 하던 도중 진짜 사후세계에 가장 근접한 설명을 한 ‘더그 포셋’ 이야기가 나와요. 나중에 그 사람의 집에 가보니까 자기를 괴롭히는 꼬맹이들 말을 다 들어주고, 뭐든 본인이 다 하려고 하면서 온갖 호구짓을 하고 사는 모습을 발견하죠. 굿 플레이스를 가려는 목적으로 본인의 행동에 마이너스를 만들지 않기 위해 자기 자신을 다 버리고 사는 모습인 거죠. 특정한 의도를 갖고 자신의 모습을 다 버리고 사는 것이 과연 선한 삶이며, 나아가 진짜 사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지 회의가 들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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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본인이 생각하는 ‘선함’은 무엇인가요?

처음에는 굿 플레이스에 가려는 의도로 선행을 한다면 그것은 선행이 아니라고 하잖아요. 저는 그럼에도 그러한 행동들은 선행이라고 생각해요. 사람은 100% 이타적일 수 없죠. 봉사활동 같은 선행의 의도나 목적도 본인의 만족감과 성취감 등이 포함되기도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선한 행위잖아요. 의도적이거나 선한 의지만으로 한 행위가 아니라고 해도, 의도가 다 결정하는 것은 아닌 거죠. ESG같은 경우에도 기업이 궁극적으로 이익을 추구하기 위한 목표에서 비롯된 것인데 그것을 악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하지 않는 것보다는 선한 것 아닌가요?



본인은 굿 플레이스에 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시나요?

앗… 시즌1 기준이면 못 갈 것 같네요. 그렇지만 나중에는 엘리너처럼 성장 가능성을 보고 굿 플레이스에 갈 수 있을지 선택하는데, 저도 충분히 갈 만하다고 생각해요^^ 좀 뻔뻔한가요?



실제로도 굿플레이스 같은 사후세계가 존재한다고 생각하시나요?

아뇨. 사후세계는 없다고 생각해요. 물론 사후세계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긴 해요. 가까운 사람이 죽었을 때, 어디선가 나를 지켜보고 있지 않을까 하는 것처럼요. 뭐, 반대로 인간말종 쓰레기가 너무 편하게 갔다 싶으면 지옥에 가서 숀에게 고통받길 바라거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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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 플레이스>의 엔딩은 어떻게 받아들이시나요?

엔딩이 정말 완벽하게 맘에 들어요. 나중에 진짜 굿 플레이스를 갔을 때도, 그 곳의 사람들은 좋아하는 것만 하는 사후의 삶에도 지겨움을 느끼고 흥미를 못 느끼잖아요. 모든 일에는 다 끝이 있고 아쉬우니까 지금이 재밌는 거라는 생각을 합니다. 끝이 있어야 지금이 소중한 거죠. 사후세계에 대한 생각이 딱히 없는 것도 마찬가지에요.



현실에서 윤리적 딜레마를 겪은 적이 있나요?

많죠. 막상 말하려니까 생각은 잘 안 나네요.



그렇다면 트롤리 딜레마 같은 문제에 대해 어떻게 반응하시나요?

음… 가장 기본적인 트롤리 딜레마에서는, 고민하다가 결국 선택을 안 할 것 같아요. 어떡해! 어떡해! 하다가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고 다섯 명을 치게 될 것 같네요. 저는 개인적으로 저에게 상황을 통제하거나 변경하는 권한이 주어지는 것 자체가 힘들어요. 물론 다섯 명이 저에게 소중한 사람들이라면 바꾸기야 하겠죠. 결국 모든 예외는 나와의 관계에서 비롯하는 거 아닐까요?



본인만의 철학적, 윤리적인 가치관이나 다짐이 있을까요?

혼자라도, 스스로 당당하지 않은 일은 하지 말자! 혼자 있을 때, 아무도 안 보고 있을 때 길바닥에 쓰레기를 버리고 싶어도 나 혼자 찔린다면 안 한다던가 하는 거죠. 초등학생 때는 도덕성에 대한 당위를 가르칠 때, 주로 길에 쓰레기를 버리면 안 된다던가, 거짓말을 하면 안 된다던가 하는 예시가 있잖아요. 그 때는 그럼 안 되는구나, 큰일나는구나 하는 절대적 원칙으로 받아들였던 것 같아요. 지금 생각하면 그런 것들은 사회를 잘 돌아가기 위해 만드는 규칙이잖아요. 물론 자라면서 정말 큰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에게 피해주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면 지키는 편이에요. 남에게 해가 되지 않는다고 해도, 나를 속이는 것 자체도 양심에 찔리고 힘들어서 못 할 것 같아요. 남에 나도 포함인 거죠.



특별히 <굿 플레이스>를 추천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생각을 한 쪽으로만 하는 사람이요. 보고 나면 조금 더 다양성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생각이 바뀌길 기대해요.



공통 질문인데요, 극 내에서든 현실에서든 손민수하고 싶은 취향이 있나요?

음, <프렌즈>에서 모니카의 스타일이나 <기묘한 이야기>의 시대적 색감과 분위기? 현실에서는 브이로그 유튜버 ‘딤디’에 한때 빠져서 손민수하고 싶었던 적이 있네요. 폴로 니트, 비싼 꾸안꾸 스타일, 건강하고 절제된, 혼자서도 잘 지내는 깔끔한 라이프스타일 등등. 친구가 다섯 명밖에 없다고 하는데 그걸 아무렇지 않아하는 태도까지도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제가 예전에 <굿 플레이스>를 보고 나서 다른 사람의 코멘트를 보고, 거기에 제 코멘트를 덧붙인 게 있는데 그걸 인용하고 싶어요.


“엔딩까지 완벽하다. 너무 좋아하는 드라마지만 그것도 끝이 있기에 애착이 가는 거겠지. 파도가 바다로 돌아가듯 우리의 삶도 그렇게 끝나겠지. 죽음을 알면서도 살아가는 우리들. 그래서 더 소중한 것들, 그래서 더 좋은 드라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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