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 일영
기묘하고 신비롭다. 색감이 밝아도 숨죽이게 된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스튜디오 지브리의 작품들 중 나를 가장 긴장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낯선 세계에서 신경이 바짝 곤두 선 치히로에게 몰입해서일까. 거대한 목욕탕의 물에 젖은 나무냄새, 맨발에 닿는 바닥의 감촉, 촉촉하고 뽀얀 수증기까지 생생하게 전해지는 것 같다. 새로운 환경에 이방인으로 덩그러니 놓인 기분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모두가 무심하게 지나치는 가장 이질적인 존재가 되었을 때 느껴지는 절절한 외로움이 있다. 그렇게 얼어있는 신입 일꾼 치히로에게 몸집이 5배는 족히 넘는 손님들이 찾아온다. 동그란 욕조에 들어가 가마할아범이 내린 약수에 몸을 푹 담그고 나면 진흙이 씻겨 내려가고 움직임도 느려진다. 그 손님들과 나는 종도 다르고 언어도 다르지만 몽롱한 노곤함만큼은 통한다.
사실 나는 대중목욕탕을 정말 싫어한다. 열심히 밀고 닦는 치히로에게는 미안하지만 위생도 의심되고,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에게 몸을 보이는 것이 불편하다. 어릴 때 어쩌다 찜질방에라도 가게 되면 땀을 흘리지 않으려고 얼음방만을 고집했다. 그렇게 20대가 되고 서울의 욕조 없는 방 한 칸에서 자취를 시작하면서 목욕과 나는 완전히 멀어졌다. 그러던 2020년, 다중이용시설인 대중목욕탕은 코로나19에 치명적인 타격을 받았고, 이때를 기점으로 목욕탕의 형태에도 변화가 일어나게 되었다. 대중목욕탕 대신 혼자서 오롯이 즐길 수 있는 1인 목욕시설들이 생겨난 것이다. 여럿이 물과 장소를 공유한다는 데에서 오는 단점들이 사라지면서 목욕탕은 이제 나에게도 가 볼 만한 장소가 되었다.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1인 목욕탕을 알릴 겸 뜨끈한 목욕물에서 이 신비로운 영화를 다시 한번 떠올려 보려 한다.
목욕이 그저 민간요법에 불과한 것이 아닌지에 대한 의심이 있었다. 실제로는 하나마나 큰 효과가 없고 오히려 악영향마저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이었다. 홀로 목욕을 즐기러 가기에 앞서 목욕의 효능을 알아보았다.
놀랍게도 우리가 예상했던 목욕의 효능이 많은 부분 진실이었다. 먼저, 잠자리에 들기 1~2시간 전에 따뜻한 물로 목욕을 하면 수면에 도움이 된다. 2019년 텍사스대학 연구진이 발표한 연구를 보면, 잠들기 1~2시간 전 40~42도의 물로 목욕을 하면 평균 10분 정도 빨리 잠에 들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따뜻한 물로 인해 신체의 혈액 순환이 천천히 증가하고, 이로 인해 체온이 조금 떨어져 잠에 빨리 들 수 있다고 한다. 우리 몸은 잠에 들 때 중심체온이 약 0.3도 정도 감소하는데, 목욕으로 중심체온을 조절하면 수면 주기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두 번째로 목욕은 스트레스를 개선하고 피로를 줄여준다. 일본의 고토 야스아키 연구진에 따르면, 목욕이 샤워보다 스트레스, 피로 해소 등에 더 효과적이다. 특히 뜨거운 물로 목욕하면 우리 몸의 대사가 원활해지며 피로물질인 젖산이 빨리 배출되어 피로 해소에 도움이 된다. 다만 너무 오래 있을 경우 오히려 에너지 소모가 커 피로해질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가장 낭설일 것 같았던 효능조차 과학적인 근거가 있는 것이라고 하니, 목욕탕에 가는 날을 앞당기고 싶어졌다.
널리 알려져 있듯이 일본은 한국보다 목욕 문화가 훨씬 발달한 국가다. 치히로가 일했던 목욕탕처럼 4층 높이의 거대 목욕탕은 없지만, 각자의 목적에 충실한 다양한 분류의 목욕탕을 찾아볼 수 있다. 한국의 대중목욕탕 같은 일본의 공중목욕탕은 ‘센토’이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온천’은 섭씨 25도 이상의 원천에서 끌어온 물을 사용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은 공중목욕탕으로, 물에 리튬과 수소 이온 같은 19가지의 성분 중 최소 한 가지는 함유하고 있다. 일본에서 공중목욕탕은 최근 ‘슈퍼 목욕탕’이나 ‘건강랜드’로 변주되었는데, 이곳에서는 일반적인 목욕탕보다 높은 요금을 내고 내부에 있는 호텔이나 레스토랑, 만화나 컴퓨터 같은 휴게시설을 이용할 수 있다. 목욕 문화가 발달하면서 일종의 복합문화시설로 발전하고 있는 듯하다. 이외에도 일본 료칸에 갖춰진 목욕탕은 ‘우치부로’, 숙소 안에 있는 넓은 공중목욕탕은 ‘대욕탕’이라고 부른다. '당일 온천'이라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호텔이나 민박에서는 따로 숙박을 하지 않아도 요금만 내면 이용할 수 있는데, 이것이 한국의 1인 목욕탕과 가장 유사한 형태로 보인다.
호텔에서 욕조가 있는 방을 예약하면 그 또한 1인 목욕탕이 될 수 있겠지만, 최소 10만 원 이상 지출해야 한다는 단점이 있다. 현대인들은 꽤 자주 피로하기 때문에 단순히 피로해소를 위해 찾기에는 약간 과하다. 일상에 지쳐 푹 삶아진 만두처럼 휴식을 취하고 싶었지만 마땅한 방법이 없었던 분들에게 1인 목욕탕이 좋은 대안이 될 것이다. 짧게 목욕만 할 수 있는 공간부터 호텔 못지않은 휴식 공간을 갖춘 곳까지, 다양한 유형 중 취향에 맞게 골라보자.
1. 진짜 목욕만 하고 오는 공간 : 위크엔더스바쓰
위크엔더스바쓰는 강릉 호스텔로 이름을 알린 웰니스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위크엔더스’가 성수동에 새롭게 선보인 프라이빗 입욕공간이다. 청소 및 정리를 위한 1시간을 포함해 최소 3시간부터 이용이 가능하고, 시간당 15,000원의 비용으로 웰컴 드링크 재스민 티, 비건 헤어/바디 어매니티, 프리미엄 타월이 함께 제공된다. 최소 예약시간이 짧다 보니 예약이 비교적 수월하다. 욕조와 화장실이 있는 간단한 구조이지만, 다양한 배쓰용품들로 아늑하게 꾸며져 있고 간단한 취식도 가능하다. 목욕 전후로 성수동 나들이를 하며 하루 동안 혼자만의 시간을 가진다면 아주 만족스러운 하루가 되지 않을까!
2. 세미호캉스형 목욕 공간: 후암별채 / 후암별채 이누스
두 번째 유형은 독채 에어비앤비처럼 숙소 같은 공간을 혼자서 이용할 수 있는 방식이다. 이 유형의 선두주자가 바로 후암별채인데, 휴식을 위한 공간인 ‘후암별채’와 히노끼 욕조가 마련된 ‘후암별채 이누스’가 있다. 하루 한 명, 6시간 동안 이용이 가능해서 취소표를 잡거나 최소 3주 전부터 목욕을 계획해야 한다. 위크엔더스바쓰보다 공간이 훨씬 넓어 목욕을 마치고도 충분히 휴식을 취할 수 있고 냉장고, 커트러리, 식기, 드리퍼, 블루투스 스피커, 작은 침대가 제공된다. 반신욕을 즐기는 동안 입고 온 옷을 보관할 수 있도록 무려 스타일러까지 준비되어 있어 그야말로 숙박 없는 호캉스라고 할 수 있다.
후암별채
평일(월-목) 59,000원
주말(금-일) 66,000원
후암별채 이누스
평일(월-목) 66,000원
주말(금-일) 75,000원
3. 여성전용 1:1 세신샵
목욕도 좋지만 때밀기도 포기할 수 없다면 추천하는 곳이 여성전용 1:1 세신샵이다. ‘1인 세신샵’ 또는 ‘여성전용 세신샵’을 검색하면 여러 지역에 있는 세신샵을 찾을 수 있다. 목욕 전 차 한 잔을 받고 기본 세신 코스 혹은 세신 + 아로마 코스 등으로 선택해 받는 방식이다. 1인 서비스인 만큼 가격대는 기본 세신 4-5만 원대, 세신+추가코스는 7-8만 원대이다. 반신욕으로 10-15분 정도 몸을 불리면 세신사 분께서 빠르고 시원하게 때를 밀어주신다. 한국식 스파의 종착지를 목격한 듯한 기분이다.
세 목욕탕의 후기들을 꼼꼼히 읽어본 후 고민 끝에 공간이 가장 넓고 아늑해 보이는 후암별채에 방문하기로 했다. 세신샵에 가면 몸이 아주 시원해지겠지만 세신사님과의 1:1 토크와 몸 공개를 아직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후암별채 이누스는 예약이 더 치열해 몇 달 뒤까지 자리가 없는 상태였고, 후암별채도 한 달 뒤 날짜로 예약할 수 있었다.
마침 자격증 준비와 시험 때문에 정신없는 한 주를 보낸 뒤여서 두 배로 설레는 마음으로 길을 나섰다. 버스에서 내려 남산타워를 바라보며 쭉 걸으면 후암별채가 위치한 골목에 도착한다. 맛있는 것들을 사 가는 게 원래 계획이었지만 아침을 든든히 먹는 바람에 시원한 커피 한 잔과 목욕 직후 필수로 섭취해야 하는 바나나우유를 사 가기로 했다. (후암별채 바로 맞은편에 있는 ‘후암동커피’의 라떼가 매우 맛있으니 드셔보시면 좋겠다.)
골목길을 기웃거리다 보면 나를 위한 아지트처럼 숨어 있는 후암별채 입간판을 발견할 수 있다. 막혀 있는 공간에 나만 입장할 수 있다니 후암동에 내 별장이 하나 생긴 기분이었다. 낡은 주택을 개조해서 만들었다고 하는데, 들어가자마자 입이 떡 벌어졌다. 아늑하고 편안한 분위기에 싱크대, 미니 냉장고, 커피잔, 커피 그라인더, 정갈한 화장실까지 공간 구석구석 신경 쓰지 않은 곳이 없었다. 미리 추가 결제한 목욕가운도 걸려 있었는데, 사전 결제를 하지 않았어도 현장에서 셀프 단말기로 결제가 가능하다.
욕실은 샤워 공간과 목욕 공간으로 나뉘어 있고, 모든 바닥에 미끄럼 방지 처리가 되어 있었다. 기본적인 세면용품들과 욕실용 슬리퍼, 미끄럼 방지 패드, 일회용 가글까지 세심하게 마련되어 있다. 목욕에 앞서 스타일러에 입고 온 옷을 걸어 놓고 간단히 샤워를 마친 후 욕조에 물을 받기 시작했다. 욕조 폭이 넓어 물 받는 시간이 꽤 걸리는 편인데, 그동안 침대나 안락의자에서 휴식을 취하면 된다. 나는 개인적으로 책을 챙겨 왔지만 책장에 독립서점에서 볼 법한 책들이 많이 비치되어 있으니 이 중 골라 보셔도 좋겠다.
드디어 목욕물이 다 차고 아이패드로 영화를 튼 후 한량처럼 욕조에 기대 보았다. 뜨끈한 기운이 퍼지며 물에 동동 뜨니 물속에 사는 생물이 된 느낌이었다. 동작이 느려지고 정신도 멍해져서 목욕이 피로해소에 도움이 된다는 말이 맞구나 하며 몽롱하게 누워 있었다. 인간이 매 순간 느끼는 중력과 자의식이 없어지니 괜히 자유로워지는 기분이었다. 수영도 못하는 나는 이렇게라도 가끔 물에 들어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속 병아리 요괴들처럼 얼굴만 빼고 몸을 다 담그니 얼굴에서 땀이 뻘뻘 났다. 병아리 요괴들이 머리에 수건을 살포시 얹어 놓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한 가지 불편한 점이 있다면 욕조에 목을 받치는 부분이 따로 없어 수건을 대고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목욕을 마친 후 준비해 둔 목욕가운을 입고 미리 틀어 둔 에어컨을 쐬며 바나나우유를 먹으니 천상의 콜라보가 완성되었다. 그러면 이용시간이 4-5시간 정도 남는데, 이 시간 동안 낮잠을 자거나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면 된다. 사실 나는 이 세 가지를 다 하고도 시간이 2시간 정도 남았다. 목욕가운을 입고 있으니 창문을 열기도 애매하고, 슬슬 밖에 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호텔 안에서 혼자서도 시간을 잘 보내는 분이라면 더욱 만족스럽게 이용할 수 있을 것 같다.
아이러니하게도 1인 목욕탕에 오니 사람들이 대중목욕탕에 가는 이유를 깨달았다. 혼자 목욕을 하는 것도 좋지만 여럿이 뜨끈한 물에 몸을 담그고 있으면 피로해소가 되는 상대방의 모습을 보며 거울효과처럼 나도 목욕이 더 즐거워지지 않을까. 또 한 가지의 깨달음은 역시 정신과 육체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평소에 경험하지 못하는 새로운 감각이 느껴지니 사람이 어떤 식으로든 환기가 되는 것 같다. 물론 물의 온도나 인체의 원리 등 과학적인 무언가도 작용하겠지만 말이다.
거대한 목욕탕의 거대한 욕조에 담긴 김 나는 약수는 어떨까. 쑥탕과 말린 지렁이탕 등 원하는 약재를 골라 쌉쌀한 향을 맡으면 온몸이 완전히 이완될 것만 같다. 이 영화가 그려내는 이질감은 여기에 있다. 가장 이완되는 장소에 온 손님들과 그 안에서 가장 위축되어 있는 치히로, 위압감이 들 정도로 방대한 공간과 가장 몸집이 작은 치히로의 대비가 만들어내는 위화감. 이 세계를 몇 번이고 다시 들여다보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출처
https://www.hidoc.co.kr/healthstory/news/C00007366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