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군자 Mar 21. 2021

이효리가 시대를 앞서가는 아이콘인 이유

2013년 정신 검진을 대중에게 권한 그녀

"건강 검진받듯이 정신 검진을 받자."

2013년. 지금으로부터 8년 전 이효리는 SBS  '화신'이라는 공중파 프로그램에서 이런 화두를 던진다.


'6개월에 한 번, 일 년에 한 번 건강검진을 받잖아요.

그런데 정신적인 건 다들 그냥 지나치고 무시하고 사는 것 같아요.'


솔로로 한창 활동하던 때 이효리는 표절 시비로 악플에 시달리며 준비했던 활동도 빨리 끝내야 했다고 한다. 힘들어하다가 정신과 상담을 받은 그녀는 몰랐던 자신의 모습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중 하나는 엄했던 아버지에 대한 기억 때문에 권위나 윗사람에 대한 대한 무의식적 반발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다른 하나는 매번 칭찬보다는 ‘이것 밖에 못해? 더 잘할 수 있지 않아?’라는 독촉을 주변에서 들으며 점점 스스로를 미워하게 된 점이었다고 한다.


'상담을 받고 나서 저를 좀 이해하게 되었고 더 친해지려고 노력하게 되었어요.'

'저는 저 자신과 화해를 하게 된 것 같아요.'

(SBS <화신> 2013.07.02.)


당시 나는 방송을 보면서 ‘이효리는 저런 것도 하는구나. 연예인들은 저렇게 사는가 봐.’라고만 생각했다. 정신과 상담을 어디서 받는지도 몰랐고 내가 그런 상담을 하는 모습은 상상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녀가 대중에게 정신 검진을 권한 시점에서 어느새 8년이 지났다. 정신과의 문턱은 그때에 비하면 많이 낮아진 것 같다. 어려운 심리학 분야 책뿐 아니라 에세이 분야에도 정신과 의사가 낸 책이 여럿 보인다. 유튜브를 통해 활발히 활동하며 꽤나 얼굴과 이름을 알린 정신과 의사분들도 많다. 정신과와 심리 상담에 대한 콘텐츠가 일반적인 지금은 그때보다 정신과에 대한 거리감이 많이 줄어들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정신과 검진 혹은 심리 상담을 몸에 대한 건강검진처럼 의무적으로 생각하는 수준은 아니다. 나 역시 회사 프로젝트로 과로에 시달리고 회사 사람들에 대한 스트레스에 지쳐 번아웃이 오고도 알지 못하다가 신체적인 증상이 나타난 한참 뒤에서야 정신과를 찾았다.


재미있는 건 정신과에 방문했던 사람들, 혹은 상담과 치료를 해주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 중 하나가 “정작 치료를 받아야 하는 건 가해를 하는 사람들인데 항상 피해자들이 와서 치료를 받는다.”라는 것이다.


회사라는 일과 많은 사람이 있는 공간은 스트레스가 상주하는 곳이다. 건강하던 사람도 누구나 한 번쯤은 지치기 마련이다. 문제는 발견하지 못한 번아웃과 정신적 질병이 오래되면 자신뿐 아니라 주변도 병들게 할 수 있다는 점이다. 


Photo by Filip Kominik on Unsplash



건설적으로 일하고 타인과의 관계도 적당히 관리할 수 있는 건강한 사람만이 회사에 있는 게 아니다. 가족들에게 받지 못하는 애정과 관심을 부하직원에게 강요하는 상사.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로 한껏 예민해져 주변에 감정을 배출하는 동료. 반항 못하는 나이 어린 신입에게 폭언을 하며 부족한 자기 자존감을 채우는 사람 등... 정신적으로 점검이 필요한 상황의 여러 인간군상이 회사에 있다.


더욱이 염려되는 사람들은 구조적으로 가해자의 위치가 되기 쉬운 조직의 장을 맞고 있는 사람들이다. 의식하지 못한 채 곪고 있는 정신적 상흔을 조직의 윗사람이 가지고 있을 때. 썩은 고름은 아래로 퍼져나가 조직을 좀먹는다. 이들이 진작에 가벼운 상담을 통해 이런 정신적 피로를 해소할 수 있다면 어떨까? 그렇다면 이들이 정신적 질병을 사람에게 쏟아내고, 또 다른 정신적 피해자들을 양산해내지 않도록 예방할 수 있지 않을까?


이효리가 시대의 아이콘인 이유는 여기에 있다. 평범한 대중인 우리는 아직도 그녀를 따라가려면 한참 멀었다. 대기업들은 직원들의 심리 상담을 위한 회사 내 상담 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찾아가야 할 사람들이 가지 않는다면 상담센터의 존재가 무슨 소용일까. 반면 직원들의 몸에 대한 건강 검진은 매년 혹은 2년 정기적으로 주어지며 오래 회사를 다닌 윗 직급의 직원일수록 더 많은 항목을, 더 자주 검사한다. 회사를 오래 다닐수록 축나는 건 몸과 정신이 사실 똑같다. 회사를 운영하는 입장에서도 맑지 않은 윗물이 회사의 정신적 건강함을 해치지 않도록 더 적극적으로 직원들의 정신 건강을 검토하는 게 필요하다. 이런 점에서 트렌드를 이끄는 이효리는 정신에 대한 이해도 오늘날의 대중을 한참 앞서 있는 듯하다.

 


SBS 화신 20130702 / YoutubwSBS Entertainment 채널 / https://www.youtube.com/watch?v=WswshytpHvI




매거진의 이전글 파잔, 코끼리를 길들이는 성인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