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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binsoon Sep 14. 2017

이 나라에서 원칙을 지키고 나이들며 함께 살아가는 것

<아이 캔 스피크>, 김현석


※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기대치 않았던 결실이 많은 영화였다. 진지한 주제를 무게 잡지 않고 풀어가는 점이 좋았다. 가볍게 터지는 웃음은 이야기 중간중간에 배치되어 진지한 주제를 받아들이는 관객의 어깨에 들어간 힘을 자연스럽게 뺐다. 이야기 말미에 위안부라는 소재를 본격적으로 다루면서 이전까지의 전개와 조금 삐걱대는 신파 감성은 조금 아쉬웠다. 이 영화에서 주요한 소재지만 좀 더 차분한 방식이 있었지 않았을까 싶다. 그럼에도 스릴러나 액션을 제외하고는 수작을 발견하기 힘든 한국 영화계에서 간만에 발견한 좋은 영화다.


# 이 나라에서 원칙을 지키며 살아간다는 것


 '유도리 있게' 말이 일상적으로 쓰이고 '좋은 게 좋은 걸' 지향하는 이 나라에서 원칙만을 준수하는 건 갑갑하게 느껴진다. 절차에 따라 진행하는 건 지인 찬스를 발휘할 능력도 없고 인맥의 궁핍함을 드러내는 것과 같다. 유래를 알 수 없는 무원칙의 세상은 원칙주의자를 쉽게 무시한다.



 하지만 이런 세상에서도 원칙에 따라 움직이지 않고는 못 견디는 사람들이 있다. 유도리가 없어 주위에서 '참 피곤하게 산다'라는 말을 늘상 들어도 못 들은 척 하고 지켜온 삶의 방식을 고수하는 사람들. 구청의 종합민원 업무를 맡는 박민재(이제훈)는 그런 사람이다. 그런 사람 앞에 번호표도 안 뽑고 나타나는 사람이 나타나면 어떨까?


# 이 나라에서 나이 든다는 것


 25세부터 더 이상 뇌세포는 늘어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남은 50여 년 동안 세상은 끊임없이 변하고 기억해야 할 규칙들은 버거울 정도로 많다. 그런 규칙들을 이해하지 못 하고, 반대 쪽으로 가는 에스컬레이터에서 조금 쉬면 뒤처질 뿐이다. 세상의 변화에 익숙해 그런 에스컬레이터에서도 달리듯 앞으로 나아가는 젊은 사람들은 그렇게 자신들을 경멸의 시선으로 바라 본다. 그 경멸의 시선에 익숙해지는 것, 이 나라에서 나이 든다는 건 그런 걸지도 모른다.



 그런 할머니는 구청에서도 번호표 기기라는 존재를 못 본척 하고 바로 창구로 달려들어도 못 이기는 척 민원을 들어주는 직원의 난처한 표정을 무시하면 된다. 그 난처한 표정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경멸의 표정으로 바뀐다는 걸 모른 척 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어렸을 적 밥 한 끼 먹는게 소원이었던 시절을 보낸 그대들은 밥을 제대로 못 챙겨먹는 모른 척 할 수 없다. 그리고 그런 애들 중에는 형이랑 둘이 사는 애가 있기 마련이고 그런 형들 중에는 구청 공무원이 있을 수도 있다. 바로 그 형이 오늘 만났던 원칙주의자 구청 공무원일 수도 있고. 마침 그 형은 영어를 잘 한다. 젊은이들 가득한 영어학원에서도 쫓겨나듯 학원료를 환불 받은 그 때 발견한 유창한 영어 실력의 구청 직원. 역시 요즘 스펙은 공무원이 최고다.


# 이 나라에서 함께 살아간다는 것

 

 가르치고 배우는 관계는 필요에 의한 관계지만 주고 받는 지식 속에는 간혹 자기네가 살아 온 인생이나 가치관 같은 게 담긴다. 그러다 보면 많이 다른 듯한 두 사람이 생각보다 공통점이 많다는 걸 느낀다. 예를 들면 둘만이 공유할 수 있는 썰렁한 개그 코드 같은 거. 견고해 보였던 세대라는 장벽은 생각보다 작은 부분에서 균열이 일어난다.

 


 <아이 캔 스피크>는 그냥 이런 이야기다. 젊은 원칙주의자 공무원과 구청의 진상 할머니가 관계를 쌓아가는 소소한 일상. 일상적인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보기 힘든 작은 기적. 주위를 둘러 보라. 주위에 넘쳐나는 절절한 연애담보다 70대 땡깡 할머니와 30대 원칙주의자의 인간적 교류가 어디 쉬운지. 그런 이야기를 거창하게 다루지 않고 그냥저냥 지나가듯 썰렁한 개그와 약간의 풍자와 자세히 보면 다 사연 있는 인간 군상들과 함께 버무려 보여준다.


 어려울 수 있는 이야기를 쉽게 표현하는 연출은 어느덧 관객에게 영화 속 캐릭터에 빠지게끔 유도한다. 그러니 말할 수 밖에, 좋은 영화라고.





 이 영화를 보게 되면 자연스럽게 <인턴>이라는 영화가 떠오른다. 고령화되는 사회에서 이루어지는 세대간 소통을 다루는 방식에서 유사한 점을 가진 두 영화는 동시에 각국이 가진 문화적 특수성을 고려했다. <인턴>이 자본주의의 첨단인 미국에서 사무실이라는 공적인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교류를 통해 세대간 소통을 보여줬다면 <아이 캔 스피크>에서는 집이라는 사적인 공간에서의 교류를 보여줬다. <인턴>의 '세련됨'은 <아이 캔 스피크>의 '정다움'으로 치환되었다. 그래도 두 영화가 동일한 건 서로 눈을 마주치며 마주 본다는 부분. 이 부분은 영화의 주제 의식을 위해 절대 바꿔선 안 되는 부분일 것이다. 


 영화와 사회는 맞물려있다. 사회상을 반영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나아갈 사회상을 제시하기도 한다. 적절한 예를 찾고 싶다면 이 영화를 보면 된다.


재밌을 뿐 아니라 좋기도 하다, 봐야할 이유로 이 이상 있을까?


※ <브런치무비패스>를 통해 관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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