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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binsoon Oct 20. 2017

쓸데없는 말이 고프다

쓸데없는 이야기가 하고 싶다

 영화관 매니저로 재취업한 후 이어진 느닷 없는 지방 발령으로 연고 하나 없는 도시에 혼자 덩그라니 왔다. 직장이 10분 밖에 안 걸리는 아파트 방 한 켠을 빌려 매일 회사랑 집이랑 왔다갔다 한다. 그런 생활을 반복하며 2개월, 그 동안 단 한 개의 글도 써내지 못 했다.


 교육에다 평가에다 직장 선배들 눈치보랴 못 쓰는 핑계거리야 많지만 이런 건 스스로를 납득시킬 수 없는 이유다. 왜 글을 못 쓰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밤 10시 넘어서 퇴근하고 티비를 보며 멍 때리다가 세수하고 발도 씻고 하면서.


 그러고 보니 요근래 쓸데 없는 말을 하지 않았다. 같이 발령 받은 동기와는 친근하지만 선배눈치나, 평가나, 교육일정 같은 얘기만 하고, 직장 선배와는 무슨 말을 할 때 마다 내가 어떻게 보일지 신경쓰여 입에서 나오는 말이 단조로워진다. 사람은 그렇게 쉽게 재미없어진다. 영화관에는 그토록 재미있는 영화가 잔뜩있음에도 거기에 속한 나는 눅눅한 팝콘 같이 어정쩡하다.


쓸데 없는 말이 하고 싶다


 오랜만에 사 먹은 냉동피자가 여전히 맛 없다든지, 필라테스를 하고 싶은데 어디서 뭘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든지, 내일 모레 서른인데 정말 감흥이 없다든지. 맥락도 없고 논거도 없고 기승전결도 없는 아무말이 하고 싶다.


 길 가다 모르는 사람 붙잡고 해봤자 미친 사람 취급받기 십상이고, 퇴근 길에 마주하는 엘리베이터 문짝에다 하면 그냥 미친 사람이다. 선배한테 하면 '애가 일이 없어서 한가하나 보네' 라는 생각을 할테고, 알바한테 말 걸면 잠자코 들어주겠지만 그건 뭐 교장 선생님 극장판일테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쓸데 없는 말이 하고 싶다. 나는 신경 안 쓰고 그냥 말하고, 너는 별 감흥없이 끄덕이고, 말하는 게 지친 내가 네가 오늘 먹은 점심밥이 더럽게 맛이 없다는 말을 듣으며 무성의하게 응응 거리는 그런 시간.


정말이지 쓸데 없는 말이 절실하다


 저번 주까지 반팔티를 종종 본 것 같은데 어느새 겨울코트가 보이기 시작하는 10월 말.


 말로 꺼낼 수 없는 쓸데없는 생각을 글로 주절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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