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obinsoon Jun 03. 2017

우리는 무엇에 고마웠던 걸까

Hello, Stranger

 자전거로 통근을 시작한 지 이틀 째. 퇴근길에 묘한 광경을 보았다. 강변길따라 이어지는 자전거 도로 한가운데 고양이 한 마리가 헤매고 있었다. 눈에 제일 먼저 들어온 건 참혹한 행색이었다. 얼굴을 제외한 온몸의 털이 반쯤은 빠져 엉망이었고 걸음걸이는 시원치 않았다. 눈에는 초점이 없었다. 그리고 눈에 띈 건 그 옆을 걷는 남자.


 앞머리 숱이 듬성듬성한 중년의 남자로 푸른색의 바람막이를 입고 있었다. 그는 비틀비틀 겨우 걸어가는 고양이 옆에서 비슷한 속도로 걸어가고 있었다. 고양이는 목걸이를 차고 있었다. 학대의 가능성을 의심했고 자전거를 앞치에 세우고 그들에게 다가갔다. 


"혹시 주인이신가요?"

"아뇨, 저도 산책하다 발견했는데 걱정이 되어서 어쩔지 몰라 그냥 옆에서 걷고 있었어요."


 왜 그냥 걷고 있었던 걸까? 보통은 그냥 지나치거나 동물보호센터에 데려가지 않나? 여전히 의심은 가시지 않았다. 고양이가 걱정되어 그 자리를 떠날 수 없었다.


 "상태가 말이 아니네요?"

 "그러게요. 어떻게 해야 되는지 알아요?"

 "음, 잠깐만요."


 그러고는 다시 자전거를 탔다. 이 근처에서 제일 빨리 고양이 먹을거리를 살 수 있는 곳이 어딘가, 를 생각하며 페달을 밟았다. 일요일이었고 펫샵은 근처에 없었고 편의점과 마트를 네 번이나 들렀을 때 구석 한편에서 고양이 간식을 찾았다. 혹시 지나가다 고양이 먹이를 주고 싶으면 가까운 GS25를 찾는 게 제일 빠르다. 이 날 얻게 된 깨알 지식이었다. 생수 한 병을 같이 사면서 일회용 커피잔 뚜껑 2개만 달라고 했다. 10분쯤 지나서 다시 돌아왔을 때 그 남자는 고양이를 안은 채로 걷고 있었다.


 "저기... 간식과 물을 사 왔어요. 괜찮으면 좀 줘도 될까요?"

 "아, 아까 자전거 타시던 ? 다시 왔네요, 고마워요."


 그러고 보니 나도 그에게 별 말 않고 자전거를 타고 먹을 걸 찾으러 갔었다. 만일 그 남자의 시점으로 본다면 나는 자전거 타던 남자가 별말도 없이 갑자기 사라지더니 이내 다시 나타난 꼴이었다. 나도 분명 그에게 있어서는 이상한 사람이었을 게다. 우리는 서로에게 이상한 사람이었다. 남자는 고양이를 내려놓았고 나는 챙겨 온 커피 뚜껑에다 물과 간식을 담아 줬다. 먹을 기력도 없어 보이는 고양이가 알음앎음 먹는 동안 먹는 동안 우리는 짧은 얘기를 나눴다.


아무 상관 없는 길가의 고양이, 노래방 뮤직비디오


 "어쩔 줄 몰랐는데 고맙네요. 간식까지 사 오고."

 "아니에요, 저도 고양이를 키우고 있어서 이런 건 못 보고 지나치거든요."

 "목걸이에 전화번호가 적혀 있어서 지나가는 사람 폰을 빌려서 연락해봤는데 꺼져있더라고요."

 "그래요? 그럼 버린 건 아닐 텐데... 어떡하죠?"

 "일단 데려가서 씻기고 소방서나 경찰서에 맡기려고요."


 동물보호센터가 아닌 소방서나 경찰서라는 말을 하는 걸 보면 유기묘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는 것 같았다. 혹시 몰라서 내 폰으로 목걸이에 적힌 번호로 전화를 다시 걸어봤다. 여전히 폰은 꺼져 있는 상태였다. 일단 번호를 저장해 놓았다. 고양이는 간식을 조금 먹는 듯하더니 두어 개 먹고는 더 못 먹고 있었다. 생각보다 상태가 더 안 좋았다. 이 정도면 병원에 입원시킨 후 영양수액을 맞게 해야 할 정도였다.


 "전 산책길이라 핸드폰을 안 가져왔어요. 어떻게 하죠?"

 "그럼 일단 제 번호로 문자 보낼게요. 폰번호가 어떻게 되시죠?"

 "010-xxxx-xxxx"


 그의 폰번호를 저장해놨다. 짧은 시간 동안 이름도 모르는 사람 두 명의 번호를 저장하다니, 묘한 일이었다. 하나는 '고양이 주인' 다른 하나는 '고양이 보호인'으로 저장해 놓았다. 이 사이에 낀 나는 뭘까. '고양이 보호인 연락처 담당' 정도 되려나? 그는 다시 고양이를 안아 들었다. 고양이를 잘 안아본 적 없는 어색한 손길이었다. 그래도 표정은 애정이 담겨 있었다. 낯선 중년 남자는 동물을 싫어할 거라는 편견이 해제되는 순간이었다.


 "집에 데려가기 전에 좀 씻기고 들어가야 할 것 같아요. 이대로 데리고 들어가면 마누라한테 혼날 거거든요."


 쑥스럽게 그렇게 말한 아저씨는 순간 느낀 거지만 조금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맙소사, 머리가 벗겨지기 시작한 아저씨한테 사랑스러움을 느낄 줄이야.


 "그럼... 고맙습니다. 주인한테 연락 오면 부탁드릴게요."

 "네, 저도 고맙습니다. 잘 부탁드릴게요."


 처음 본 고양이를 사이에 둔 낯선 우리는 그렇게 서로에게 고맙다는 단어를 연신 내뱉었다. 문득 느낀 건 그 고마움이 누구한테 향한 걸까라는 의문이었다. 서로에게? 아니면 아직은 인간다움이 남아있는 이 세상에게?




 어머니는 자유방임적인 교육관이지만 낯선 이에 대한 경계에 있어서는 엄격한 편이었다. 본인이 오기 전엔 집에 낯선 사람을 절대 들이지 못하게 했다. 덕분에 서른이 다 되어가는 지금도 지나가다 낯선 이가 말을 걸면 경계에 찬 눈빛으로 바라본다. 심지어 낯선 여자가 번호를 물어봤을 때도 그랬다. '왜 나한테 말을 걸지? 설마 호의를 가장한 종교 권유인가? 난 바칠 돈도 없는데? 그게 아니면 이쁜 여자가 나한테 번호를 물어볼 리 없는데...'라는 식으로. 그 관념이 깨질 만한 계기가 여태껏 없었다.


 그런 내가 낯선 사람이 선할 수 있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모든 낯선 사람이 악의가 있는 건 아니다'라는 명제는 분명 참일 텐데 실감할 수 없었다. 가정교육의 폐해 일려나. 그러나 그 아저씨의 고양이를 보는 선한 눈빛, 또 다른 삶의 명제인 '동물에게 다정한 사람은 선하다'라는 경험을 떠 올렸다.  


 다음 날 고양이는 결국 죽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 남자는 그러면서 고양이 주인에게 연락을 전해준 나에게 고맙다는 말을 했다.


 짧은 순간이었던 이 경험은 분명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았다. 서로에게 낯선 우리는 고마운 존재였다.


 Hello, Stranger



매거진의 이전글 짧은 공감보다 긴 질문이 좋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