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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binsoon May 22. 2019

검정 롱코트

내 일부가 되어버린 물건

 입으면 무릎까지 내려오는 길이. 짙은 검은색의 겉감은 캐시미어가 섞여있어 부드럽다. 명동 에이랜드 빈티지 코너에서 8만원에 샀다. 안감에는 '후지무라'라는 글씨가 박혀 있었다. 일본에서 수입한 것 같았다. 그때의 나는 자기한테 맞는 옷을 고를 줄도 몰랐기에 어깨는 지나치게 넓었고 소매는 손목에서 검지 손가락 길이만큼 올라왔다. 입으면 마치 아버지 옷을 빌려 입은 것처럼 어색했다. 생각해 보니 아버지가 롱코트를 입은 모습은 본 적이 없었다. 지금 안 계신 아버지의 모습은 검은색에 하얀 물방울 남방(셔츠가 아니라 남방)이 연상된다.


 수선을 했다. 어깨를 줄이고 소매를 늘렸다. 옷값과 같은 8만원을 줬다. 트렌디하게 허리를 줄일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5년이 지난 지금 생각하면 줄이지 않은 건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수선을 마친 뒤 입었을 때 그 옷은 내 몸에 딱 맞았다.


 정장에도 입고 캐주얼에도 입는다. 막 입지는 않고 특별히 아껴 입지도 않는다. 처음 살 때는 생각도 못 할 정도로 많은 겨울을 나와 함께 했다. 후지무라라는 사람이 입었던 이 코트는 어느새 많은 사진에서 나와 함께 찍혔으며 그 시간은 5년이 넘었다. 코트를 입고 거울 앞에 섰을 때 마치 내 몸의 일부 같았다.


 나이를 먹어도 나다움이라는 말이 와닿지 않는다. 여전히 불안정하고 변덕스럽게 느껴진다. 그래서 눈에 보이는 것에서부터 흔적을 찾는다. 아무데나 놓다보니 바닥이 헤진 가방, 연필로 그은 밑줄이 잔뜩 있는 책들, 기스가 남아 있는 시계. 오랫동안 나와 함께한 물건에는 내 모습이 담겨 있다.


코트를 입을 정도로 적당히 추운 겨울 날, 외출하기 전 거울 앞에 서서 그런 생각을 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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