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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binsoon Sep 24. 2019

생일을 선물했다

꿍꿍이의 생일

 꿍이는 생일이 없다.

 

생일 좀 줘라


 태어난 날은 있겠지만 옆에 있는 누군가가 기념해줄 만한 날이 없다. 완벽한 생물에 가까운 고양이의 단점 중 하나는 본인의 생일이 언제인지 모른다는 거, 혹은 기억해도 옆에 있는 사람에게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덕분에 지금 글을 쓰고 있는 내 무릎에 앉은 요 녀석의 생일을 알 길이 없었다.


 서로 얼굴을 자주 못 보는 사이에 축하한다는 말 하나만 건네주면 충분했던 날이 있었지만 근래에는 기프티콘이라는 게 있어서 축하한다는 말 한마디에 커피 쿠폰 하나를 얹어주어야 덜 아쉽다. 결혼식 축의금 같은 그것은 내가 주었던 사람이 안 주면 아쉽고 주지 못 했던 사람이 주면 미안한 마음이 든다.


 9월의 어느 날에 태어난 내 생일날 이런저런 카톡 알람이 깜빡거릴 때 문득 생각난 건 꿍꿍이였다. 생일 축하한다는 말 대신 언제나 그렇듯 내 옆에 골골대는 이 녀석의 생일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어떤 사람이든 옆에 앉아 골골대며 몸을 비비대며 친한 척하는 개냥이 꿍꿍이는 나와 함께 살기 전까지 꽤 많은 집을 거쳤다. 어떤 가정집에서 사람과 살기 시작한 녀석은 공장에서 키워진 적도 있었고 얼마 안 있어 그 공장 주인의 아들 댁에서 자라다가 그 댁에 새로 태어난 아기가 위험해질까 괜히 걱정한 부모가 같은 성당에 다니는 우리 어머니에게 떠넘겼다(우리 어머니는 이미 고양이를 그때 4마리나 키우고 있어서 그런 제안을 많이 받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양이 4마리쯤 키우는 집에서 5마리를 키워도 큰 문제가 되지 않으리라 생각하는 것 같다). 하지만 이미 자리를 잡고 있던 고양이들의 괴롭힘 때문에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캣타워 꼭대기에서 조용히 지내던 녀석은 어쩌다 어머니의 내놓은 자식인 나와 같이 살게 되었고 그렇게 3년 가까이 지났다.


 여러 집을 전전해서 그런 건지 샴고양이 특유의 개냥이스러움 때문인 건지 정말 손이 안 가는 녀석이었다. 사료를 먹어도 토하는 게 거의 없고 대소변 실수도 거의 없었다. 병치레도 거의 없고 좀 심한 장난을 쳐도 할퀴거나 하는 경우는 것의 없었다. 화가 난다 싶으면 스크래처 가서 조용히 혼자 긁고 온다. 그렇게 혼자 화를 풀고 오면  다시 곁에 다가와 조용히 옆에 앉는다. 여러 집을 전전해서 사랑받기 위해 노력하는 건지 아니면 그저 원래 성격이 사랑받기 쉬운 건지 몰라도 모난 게 많은 나는 그런 녀석이 신기하고 사랑스럽다.


 하지만 처음부터 같이 못 산 단점 하나가 있다면 녀석의 생일을 알 수 없는 점이었다. 어머니에게 시간 날 때마다 혹시 괜찮으면 생일이 언제인지 알아봐 달라고 했지만 너무 여러 집을 전전해서 그런 걸까, 결국 알아낼 수 없었다. 그렇게 3년이 지난 지금, 생일날 이런저런 친구들에게 선물을 받고 나서야 꿍꿍이에게 나도 무언가 주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3년이 지나서야 그런 생각이 든 눈치 없는 집사였다.


 그냥 태어난 것만으로 이런저런 선물을 받는 게 황송한 날에 나도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주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러면 그 대상은 꿍꿍이일 터였다. 생일을 그냥 받기만 하는 날이 아닌 무언가를 줄 수 있는 날로 하면 어떨까, 그런 생각의 발로였다.


 그런 생각을 한 서른 번째 생일날, 나는 꿍꿍이에게 생일을 선물해주기로 했다.


 Happy birthday to us


 물론 생일뿐 아니라 무언가를 선물할 생각이다.


 앞으로 매년, 우리의 생일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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