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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binsoon Jul 26. 2019

가족은 지옥이다

<누구나 아는 비밀>, 아쉬가르 파르디


※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목가적인 풍경의 스페인 시골 마을에서 벌어지는 납치극을 다루는 이 영화는 스릴러 장르의 긴장감보다는 묵직한 메시지가 이야기를 관통한다. '가족'이라는 소재를 다루는 묵직함 때문일까, 영화가 끝난 뒤에도 관객은 영화가 표현하고자 하는 게 뭐였는지 고민에 빠질 수밖에 다.


 스페인의 한 시골 마을에서 결혼식이 열린다. 라우라(페넬로페 크루즈)는 동생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오랜만에 고향으로 돌아온다. 규모가 큰 포도 농장을 경영하는 파코(하비에르 바르뎀)는 라우라 동생의 결혼식이 있던 날에도 일을 하지만 늦지 않게 참석한다. 성당에서 식을 마친 후 춤과 함께 어우러지는 피로연 행사 중 잠시 정전이 일어났다. 해프닝 정도로 생각하고 파티를 즐기던 사람들은 여전히 아랑곳 앉고 흥에서 깨지 않은 채 작은 전등에 의지하면서 계속 춤을 춘다. 전기가 돌아왔을 때, 라우라는 자기 딸이 납치되었음을 알게 된다.


 파코(하비에르 바르뎀)가 라우라의 가족에게 바치는 헌신은 쉽게 이해하기 힘들다. 그는 한 때 라우라의 연인이었고 파코의 아버지는 지역유지였을 그녀의 가문에 소속된 하인이었다. 시간이 지나 그녀의 가문은 쇠퇴했고 파코는 황무지였던 땅을 매입해 7년 동안 노력한 끝에 어느새 꽤 큰 규모를 가진 포도 농장의 주인이 되었다. 그럼에도 파코는 여전히 그들의 가족이었고 라우라의 딸은 그의 딸이나 마찬가지였다. 유괴범이 30만 유로를 요구할 때까지 말이다.


 우리나라 돈으로 약 4억 정도인 그 돈을 라우라의 가족 누구도 지불할 능력이 없었다, 파코를 제외하고는. 유괴범은 왜인지 파코의 아내인 베아(바바라 레니)에게도 돈을 요구하는 문자를 보낸다. 파코는 땅을 파는 척하면서 돈을 마련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왜일까, 범인은 그들이 아는 누구 중에 있을 것 같다.



 영화는 납치극이 시작되기 전까지의 평화로운 스페인 시골 마을의 풍경을 묘사하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라틴문화에 문외한인 한국 사람이 보기엔 지겨울 정도로 아름답기만 한 그 모습에 왜 그렇게 많은 시간을 쏟아붓는지는 영화가 끝난 뒤에 알 수 있다.


 자기 딸이니까 라우라는 딸을 구하기 위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지만 파코는 사실 그럴 필요까지는 없다. 하지만 누구나 아는 그 비밀이 밝혀진 순간, 파코에게 갑자기 부여되는 의무감은 다양한 표현이 떠오르지만 마지막에 떠오른 건 잔인하다는 말이다.



 영화는 스릴러적인 긴장감보다 라우라의 가족과 파코 사이의 긴장감에 더 주목한다. 처음에는 가족과 같이 대하던 라우라와 그녀의 가족은 파코를 점점 그들의 하인이었던 그의 아버지와 같이 대한다. 노예에게 의무는 있지만 권리는 없듯이 말이다. 파코에게 그녀의 가족을 위한 의무는 없지만 그는 그 의무감에 벗어나질 못 한다. 거기에 영화 후반부에 밝혀진 비밀은 그에게 새로운 의무를 지운다.



 실제 부부이기도 한 하비에르 바르뎀과 페넬로페 크루즈는 훌륭한 연기를 보여준다. 어쩌면 이 영화는 그것만으로 볼 만한 가치가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란 출생의 감독이 그려낸 스페인 시골 마을의 비극은 감독으로서의 역량을 숨기지 않고 드러낸다. 한없이 이기적일 수밖에 없는 라우라와 그녀의 가족까지도 이해할 수 있게끔 섬세한 심리묘사를 카메라는 놓치지 않는다.

 

 가족과 가족같은 관계를 이렇게까지 잔인하게 구분하는 영화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영화는 잔인하다. <기생충>이 가족과 가족 사이의 관계를 그렸다면 <누구나 아는 비밀>은 가족 내부를 다층적으로 분석한다. 아빠, 엄마, 아들, 딸을 넘어 삼촌, 고모부, 사촌 누나까지 포함한 전통적인 대가족의 비극은 가족이 과연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안식처 일지 고민하게 한다. 그래서 이 영화를 보고 난 뒤의 결론은 '서글프다'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그 또한 진리에 가까운 걸. 사실 모두 알고 있다. 가족이 가 족같을 수 있다는 건 '누구나 아는 비밀'이다.


가족이 가 족같을 수 있다는 건 '누구나 아는 비밀'이다.


※ <브런치무비패스>로 관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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