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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binsoon May 19. 2020

지금 눈앞에 없는 당신을 만나기까지

<썸원 썸웨어>, 세드릭 지라르도



스포일러 정도 - ★★☆☆☆


 전개가 다소 평이한 영화다. 극장이 아닌 곳에서 본다면 한 호흡에 다 보기는 힘들 수 있다. 하지만 프랑스 영화 특유의 개인의 내면을 파고드는 연출과 도시의 외로움과 따뜻함을 동시에 표현하는 영상은 매력적이다. 무엇보다 영화에서 표현하려는 메시지가 가슴에 와 닿는다.


 결론부터 말하면 달달한 연애담은 아니다. 벽 하나를 사이에 둔 남녀지만 그들의 일상은 겹치지 않는다. 유일하게 겹치는 건 자주 이용하는 식료품 가게뿐이다. 그들은 각자 일상 생활에 지장을 줄 만큼의 내면의 문제가 있고 이를 해결하려 하는 점에서 닮았다. 집단해고가 발생한 직장에서 살아남은 남자는 우울증 증상이 나타났고 3년 사귄 애인과 헤어진 여자는 1년이 지나도 잊지 못한다. 남자는 불면증에 걸렸고 여자는 하루 13, 14시간 정도 잠에 빠진다. 일상생활이 힘들어진 그들은 상담을 받는다.


 클리셰 투성이의 게으른 이야기는 이쯤에서 둘이 분리수거장 같은 곳에서 마주치게 해 서로의 상처를 치유해 나간다, 라는 방향으로 나아갈지도 모르지만 이 영화는 야박하게도 그렇게 쉽게 흘러가게 하진 않는다. 그들은 남들과 공유할 수 없는 내면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각자 헤매면서 조금씩 나아간다.



 스토리의 진행은 병렬식이다. 남자, 여자의 이야기가 교차적으로 나오면서 마음이 아픈 그들이 각자의 담당의와 상담하는 장면이 나온다. 각자 직장과 집을 오가고 친구들을 만난다. 여자는 소개팅 어플로 사람을 만나기 시작하고 남자는 고향에 내려가 가족들과 만난다. 그러다 다시 자신들의 집으로 돌아오고 창가에 나온다. 그들의 창가에서는 지나가는 기차가 보인다. 창가에 나온 그들은 서로를 볼 수 없으며 지나가는 기차만을 바라본다. 도시의 쓸쓸한 분위기가 영화 전반에 깔려있다.


 그렇게 독립된 이야기인 듯 교차되는 듯한 그들의 모습을 카메라는 집요할 정도로 한 컷에 잡는다. 집 밖으로 나온 그들이 교차하는 장면을 보이고 창문 앞에 서 있는 모습을 비춘다. 바로 옆집이라 마주칠 것 같지만 또 묘한 장치인 게 사실 서로 다른 건물이 붙어있는 특이한 형태의 집이라 여자의 집이 좀 더 도로 쪽으로 튀어나와 있어 그들은 서로의 모습을 볼 수 없다. 그렇게 역 근처에 있는 그들의 집에서 열차가 지나가는 소리를 공유하고 말 많은 식료품 가게 아저씨는 잊을만하면 등장해 그들에게 말을 건다.



 둘이 직접적으로 마주하진 않지만 일상 속에서 아주 약간의 접점이 드러난다. 욕실에서 노래를 틀고 따라 부르던 여자의 노랫소리를 들은 남자는 핸드폰으로 음원을 따와 본인이 그 노래를 튼다. 다시 그 소리를 듣게 된 여자는 묘한 웃음을 짓는다. 남자가 키우던 고양이는 집 밖을 헤매다 바게트 빵을 사서 돌아오던 여자에게 발견되어 키워지게 된다. 이렇게 되면 슬슬 만나야지 않나 감질맛이 나지만 같은 시각에 집 밖에 동시에 나온 그들은 서로 다른 방향으로 향한다. 만나기만 하면 사귈 거 같은데, 영 만나질 못 한다. 둘 다 일에 치이고 사람들에 치인다. 도시에서 홀로 사는 그들은 외롭고 의지할 사람은 담당 삼당사뿐이다.


 만나지 못하는 그들은 천천히 각자의 공허한 부분을 스스로 메워간다. 이쯤에서 영화의 메시지는 점차 선명해진다. 영화는 개인이 가진 마음의 빈 공간을 어설프게 사랑으로 메우기보다 각자의 몫에 맡긴다. 넘어졌을 때 누군가의 손을 잡고 일어나는 것도 좋지만 스스로 일어나는 법을 알아야 한다고 영화는 말한다. 우리네 삶은 항상 손을 내어줄 누군가가 있는 건 아니니까. 그리고 그렇게 스스로 일어섰을 때 눈 앞에 선 상대를 정면으로 마주할 수 있다. 그렇게 시작되는 관계라야 서로에게 충실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영화는 메시지를 담담하게 전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여운은 점점 짙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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