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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binsoon Jan 08. 2021

상대방이 쓰는 언어의 이면을 읽을 수 있다는 건

<가을의 마티네>, 니시타니 히로시


 언어라는 건 국가가 아닌 개인의 영역에서도 통역이 필요할 때가 있다.


 예를 들어 '저는 저녁을 늦게 먹어요.'라고 할 때 누군가는 그걸 오후 8시쯤으로 이해할 수도 있고 또 다른 누군가는 밤 10시 이후로 해석할 수도 있다. '늦다'라는 말 속에서 각자가 느끼는 시간대가 다르기 때문이다.


 영화 속에서 주인공인 마키노와 요코가 끌리는 순간을 표현하는 게 이 지점인 건 흥미롭다. 둘은 만난 지 몇 시간이 안 되었음에도 상대방의 말의 이면을 바로 이해할 수 있었다. 요코가 얼마 전 있었던 할머니의 장례식 얘기와 돌아가신 원인이 된 부딪힌 돌 이야기를 하면서 어렸을 적에 그 돌을 테이블 삼아 소꿉놀이를 했다는 말을 할 때 어떤 반응을 해야 할지 모르는 제 3자와 달리 듣고 있던 마키노가 이런 의도로 말했다라고 해석해주는 부분은 짧은 순간이지만 둘이 깊은 교감을 이룬 장면이다. 마키노가 식사시간에 말했던 경험담에서 요코가 꾸며낸 부분을 맞추었을 때 둘은 서로의 말 속에서 숨겨진 의미를 찾아냈다.


 처음 봤을 때도 이상하게 코드가 잘 맞는, 특히나 몇 시간 내내 얘기해도 대화가 어색함 없이 흘러가는 그런 상대를 만나본 경험이 있다면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다. 열에 아홉은 어리둥절하지만 한 명만이 웃는 농담을 했을 때, 특별해질 수 있는 계기가 아닐까.


 중반부 스토리 전환을 위한 뻔한 전개는 보기 힘들었지만 사랑에 빠지는 순간을 상대방의 언어를 정확히 읽어내는 장면으로 보여준 것이 흥미로웠다. 감정의 농도가 짙은 멜로, <열정과 냉정 사이>나 <러브 레터>를 좋게 봤던 관객이라면 재밌게 볼 수 있을 것이다. 클래식 기타 연주가 돋보인 연출 덕분에 극장이나 음향이 좋은 공간에서 보길 추천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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